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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한위스키 03

Kai x D.o.


카디 독한위스키 03

W.율이



경수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생각했다. 개놈 새끼, 술 취하게 만들어서 억지 계약 성립시키질 않나 지원 끊는다고 협박이나 하질 않나. 이걸 신고해버릴 수도 없고... 하며.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종인의 욕을 하라면 꼬박 하루가 걸려도 다 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미팅 날 술에 취해 김종인에게 애교를 부린 걸 생각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애교라니, 살면서 부모님한테도 애교 한 번 부려 본 적 없는데 술 취했다고 혀 짧은 소릴 하면서 가방을 채로 고양이에게 넘겨? 고양이한테 생선 준 꼴이 되어버린 걸 생각하며 경수는 자신의 뺨을 툭툭 쳤다. 다 내 잘못이지, 그래. 하면서. 아니 근데 무슨 술을 먹였길래 얼마나 마셨다고 정신을 놓은 거야. 분명 메뉴판엔 도수가 그리 세지 않은 걸로 봤었는데... 경수는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졌다. 진행자 넘기면 지원 끊을 거라 했고 계속 그 새끼 보긴 싫은데 하면서도 딱히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래도 많아봤자 한 달에 한두 번 만나겠어 하며 애써 위안을 삼았다.





*





"계약은 성립시켰다고 들었다. 우리에게 유리한 조건 그대로 성립시켰더구나."

아버지의 전화였다. 웬일로 종인에게 먼저 전화하셨나 했더니 계약 때문이었다.

"아주 잘했다."

종인은 순간 울컥했다. 아버지께 처음 듣는 칭찬이다. 그냥 무뚝뚝하게 '예' 하고 대답은 했지만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도경수 군과 친해지려면 아직 더 있어야 하겠지. 그리고 내일은 출근하니까 회장실부터 들려라."

아버지를 출근해야 만날 수 있다니, 문득 종인은 자신이 안쓰러웠다. 이렇게도 가족 간에 교류가 없는 집이 또 있을까 하며. 딱히 종인 자신도 교류하려고 하진 않았지만.



출근 후 회장실에 들리니 긴 테이블 위에 서류 봉투 하나가 놓여있었다. 서류 내용은 경수의 신상 정보였는데 처음 준 프로필과 다르게 조금 더 세세한 내용까지 적혀있었다. 키 172, 몸무게 55. B고등학교 졸업 후 2년제 대학-호텔경영학과- 입학. 호텔경영? 하긴 D그룹은 호텔도 꽤 유명하니...

D그룹 외동아들이면 돈은 더럽게 많을 거고. 하지만 종인이 기억하기에 어제오늘 봤을 땐 시계며 옷이며 그렇게까지 고가의 브랜드는 없었다. 검소한 사람이네. 종인은 슬쩍 자신의 손목시계-엄청난 고가 브랜드였다-를 한 번 쳐다보고는 계속해서 경수의 프로필을 읽어내려갔다. 이 정도 정보면 꽤 괜찮은데? 하며, 이거 분명 아버지가 정보부 직원들 써먹으신 걸 거야 했다. 종인은 마케팅부 팀원들이 올린 시안 확인을 하면서도 간간이 경수의 프로필을 들여다보았다. -종인은 낙하산으로 KJ전자 마케팅부 팀장 자리를 얻었다.-


똑똑- 종인이 있던 팀장실의 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들어와요' 대답을 하고 문쪽을 쳐다보니 결재서류를 한 뭉치 들고 온 백현이었다. 백현은 종인이 맡은 마케팅부의 팀원이었는데 엄밀히 따지자면 나이도, 입사 시기도 종인보다 1년 빨랐다. 종인이 낙하산으로 팀장 자리에 앉는 바람에 종인의 후임이 되어버렸지만... 백현은 팀 내에서 일도 깔끔하게 잘 처리하는 편이었고 사교성도 좋아 팀의 분위기 메이커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 백현을 은근 종인도 잘 따랐고 자신이 이 팀장 자리를 떠나게 된다면 꼭 백현을 앉히고 싶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던 종인이다. 


"팀장님, 결재해 주실 시안들입니다."

예상한 대로 백현은 결재서류 한 뭉치를 종인에게 내밀었고 종인은 대충 훑어본 후 속으로 역시 변백현은 믿을만해 하며 쿨하게 통과 사인을 보냈다. 백현이 기분 좋은 특유의 강아지 미소로 꾸벅 인사를 하고 나가려다 무언가 생각난 듯 다시 종인을 향해 빙그르르 돌았다.

"팀장님 오늘 기분 좋아 보입니다아? 연애라도 하는 거 아닙니까?"

백현이 장난기 가득한 말투로 종인에게 아부를 떨었고 종인은 '연애는 무슨.. 그런데 내가 기분 좋아 보여요?' 하고 웃었다.


"오늘따라 계속 싱글벙글 웃고 계시잖아요."

오늘 한 거라곤 도경수 프로필 들여다보고 시안 확인한 것뿐인데 내가 웃고 있었던가 하며 종인은 백현을 따라 조용히 웃었다. 역시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는 힘이 있다니까- 하면서.

"오늘 둘이서 소주 한 잔 어떱니까? 맨날 말만 할 수는 없죠. 제가 삽니다."

회사 일하면서 상사임에도 불구하고 백현의 도움을 꽤 많이 받았던 종인은 전부터 백현에게 밥 한 끼나 술 한 잔 하자고 누누이 말해왔었는데 딱히 타이밍이 없어 날을 잡고 간 적은 없었다. 미루고 미루던 자리를 오늘은 기분도 좋겠다 하며 말을 꺼낸 종인이었다. 그에 백현은,

"야근만 없다면 콜입니다." 하고 두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두 개 만들어 보였다.





*





경수는 누군가가 시킨 건 아니었지만 남아서 야근을 했다. 한 번 시작한 일은 내일로 못 미룬다는 완벽주의가 있어서 경수는 자주 야근을 하곤 했다. 시안 하나를 다 완성하고 퇴근을 하니 벌써 9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정시 퇴근보다 거의 3시간을 더 작업한 것이다. 하지만 그리 오래 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밖으로 나오니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4월인데도 불구하고 날씨가 많이 더워져서 아침이나 저녁에도 그리 춥지 않은 날씨가 되자 경수는 괜스레 거리를 걷고 싶었다. 원래 경수가 혼자 사는 아파트와 회사가 그리 멀지 않았기에 종종 걸어 다니기도 했는데 마침 오늘은 개인 차 없이 택시로 출근도 했겠다 집까지 걸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저녁인데도 따스한 봄바람을 맞으며.


"역시 김종인이야~! 우리 김팀장님이 최고야아~"

김종인? 어디선가 들려오는 익숙하고도 개 같은 이름에 경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D전자 건물 뒤쪽으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엔 포장마차 거리가 있었는데 경수가 집까지 걸어갈 땐 꼭 지나야 하는 루트였으므로 경수에겐 그곳이 굉장히 익숙했고 퇴근 후 술 한 잔 하는 직장인들의 시끌벅적한 수다 소리도 이젠 별로 귀에 와닿지 않았었는데 왠지 '김종인' 이란 석자는 귀에 푹하고 박혀왔다. 역시나 김종인을 외친 그 간드러진 목소리의 맞은편에는 술에 취할 대로 취해 보이는 김종인이 있었다.

첫 미팅 때 위스키바에서는 취하지도 않더니 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하며 김종인을 곱씹으면서도 경수는 발걸음을 옮기지 않고 멍하니 종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도 거리가 꽤 있어서 그런지 종인이 말하는 건 들리지 않았는데 종인의 맞은편에 앉은 남자의 목소리가 워낙 커서 제 혼자 대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경수는 저런 애교 가득한 목소리는 어디서 나오는 거야 하다가 순간 자신이 취해 부렸던 추태를 생각하자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경수는 빨리 집에나 가자 하고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경수의 귀에 간드러진 목소리가 또 한 번 푹하고 박혔다.

"도경수가 누군데요~? 도경수~~"

뭐야 김종인이 내 얘기 한 건가? 대체 뭐라고 했길래 저 큰 소리로 사람을 저렇게 찾아? 경수는 표정을 마구 일그러뜨리며 잠깐 멈춰 섰다가 아냐 신경 끄자 하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야! 도경수!"

이번엔 아까 그 간드러진 목소리가 아니었다. 술에 잔뜩 취하긴 했지만 김종인의 목소리가 틀림없었다. '야 도경수?' 내가 자기 친군가... 경수가 반사적으로 제 쪽을 쳐다보자 종인이 경수를 반쯤 풀린 눈으로 쳐다보며 손을 까딱까딱 거렸다. 그러고는

"야, 너 일로 와봐."

김종인이 어쨌거나 경수는 한숨을 크게 푸욱 내쉬곤 다시 제 갈 길 가려 했다.


"도망가면 확 따먹어 버린다..."

시발, 저 새끼 진짜 게이 새끼 맞나 봐. 술에 취해서도 저렇게 당당하게 게이 연기를 할 수 있는 보통 남자는 없을 거야. 경수는 김종인의 협박 아닌 협박에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곤 슬쩍 맞은편에 있던 백현을 쳐다보았다. 귀엽게 생긴 게 강아지 같았다. 눈이 반쯤 풀린 강아지.


"따먹히긴 싫나 봐요?"

얘는 반말이었다가 존댓말이었다가 왔다 갔다 하는데 재주가 있는 모양이다 하며 경수는 무표정으로, 아니 반쯤 구겨진 얼굴로 종인을 바라보았다. 종인과 경수가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는데-정확히 말하자면 노려보는 건 경수뿐이었다- 백현이 불쑥 끼어들었다. 

"네가 도경수~?"

역시 간드러진 큰 목청은 이 강아지의 것이었군 하며 경수는 '그런데요' 하고 대답했다. 김종인과 친해 보이는 걸 봐선 역시 제정신은 아니겠다 싶어 일찍이 백현에게 반감을 가졌다.


"난 25살... 도경수 씨는요..~?"

뭐야 얜... 경수는 자신을 반쯤 풀린 눈으로 쳐다보는 백현을 외면하고 종인에게 '연상을 좋아하나 보지?' 하고 툭 말을 던졌다.








원본을 가지고 있었던 3편까지는 조금씩 수정해 가며 빠르게 왔습니다! 이제 전에 말한 대로 4편부터는 새롭게 써서 올릴 예정입니다. 

아 그리고 본문에 경수가 종인을 '게이 새끼'라고 칭하며 비하하는 장면이 있는데 동성애 비하 의도가 있는 작품은 아닙니다ㅠㅠ 그냥 작품 속의 도경수 성격이다 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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