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독한위스키 04

Kai x D.o.


카디 독한위스키 04

W.율이



종인은 왠지 경수가 반가웠다. 도경수는 크지 않은 보폭으로 포장마차 맞은편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래서 종인은 '어, 도경수다.' 하고 내뱉은 것뿐이다. 그런데 목소리 큰 백현이 도경수가 누구냐며 부린 주정에 도경수가 발걸음을 멈추고 종인을 쳐다봤다. 어딘가 조금 커 보이는 정장에 직장인이라면 필수라는 까만 가방을 들고 걷고 있는 도경수는 꼭 어른이 되고 싶은 꼬마처럼 보였다. 도경수는 잠시 종인이 있는 쪽을 쳐다봤다. 잠시? 아니 그러니까, 꽤 오래 쳐다봤다. 종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종인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고작 소주 4잔 마신 것 같은데 정신이 해롱해롱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빈 소주 병이 벌써 3병이었다. 내가 마신 건가? 아니야, 변백현이 다 마신 거다. 그래서 앞에 앉아있는 백현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멀쩡해 보이는 사람은, 조금 멀지만 분명 눈앞에 보이는 도경수뿐이었다. 그래서 불렀다. 물론 '야! 도경수!' 하고 부를 생각은 아니었다. 그런데 말이 그렇게 나왔다.

"야! 도경수!"

종인의 부름에 도경수가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제 갈 길 가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 진심을 담아 외쳤다.

"도망가면 확 따먹어 버린다..."

그러니까... 이 말은 조금 진심이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김종인에게는.





*




"연상을 좋아하나 보죠?"

도경수가 백현을 보고 종인에게 던진 말은 종인이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다. 뭐 이왕 부른 김에 조금 더 놀려볼까 싶어 따먹히긴 싫어서 이리로 왔냐고 물었는데 대화에 끼어든 백현을 보고 도경수는 그렇게 대답했다. 

연상을 좋아하냐고?

그런 편인가? 아닐 수도 있고. 학창 시절 딱 한 번 사귀어 본 여자친구도 한 살 많은 누나였다. 아니, 뭐 어쨌든 경수의 말은 종인이 듣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다. 그럼 나는 무슨 대답을 듣길 원했던 거지? 응 너한테 몸 주긴 싫어서 고분고분 왔어. 이런 대답을 원했던 걸까? 아니면 아니 그냥 네가 좋아서 왔어. 뭐 이런 대답? 종인은 잠시 생각하다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여자도 아닌 남자 도경수한테 그런 대답이 왜 듣고 싶겠냐 하면서. 도경수의 저 말을 듣고 기분이 좋지 않았던 이유는 단지 자신의 물음에 대답을 안 했을 뿐이다. 종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종인은 경수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도경수는 김종인의 새로운 장난감일 뿐이니까.





*




김종인이 한참을 말없이 쳐다봤다. 경수를. 경수는 빨리 이 자리를 뜨고 싶었다. 바로 앞에는 보기만 해도 싫은 김종인 개새끼가 있었고, 그 옆에는 이미 테이블에 얼굴을 박고 잠에 빠진 김종인 개새끼와 친해 보이는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경수는 지금 당장 이 '김종인 소굴'에서 빠져나가지 않으면 스트레스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과장하자면 그랬다. 


"할 말 없으면 갑니다."

"할 말 있어."

김종인이 몸을 돌리려던 경수의 팔을 붙잡았다. 옷 위로 잡은 손에선 아무 체온도 느껴지진 않았지만 그가 얼마나 꽉 잡고 있는지는 느껴졌다. 키에 비해 그렇게 크진 않았지만 경수의 팔이 김종인의 손에 다 잡혔다. 


"..."

"집에 데려다줘."





*





김종인이 사는 아파트는 혼자 살기엔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과연 이 집에서 혼자 살면서 왔다 갔다 하는 생활 반경이 얼마나 될까 생각했다. KJ그룹 둘째 아들이라더니 재벌은 재벌인가 보다 하며 경수는 끙끙거리며 김종인을 침대에 던지다시피 했다. 



그러니까 한 시간 전, 경수는 김종인에게 팔을 잡혔다. 집에 데려다 달라는 뜬금없고도 어이없는 김종인의 요구에 종인을 뿌리치고 가려 했다. 분명히 그랬다.

그런데 경수가 힘이 약한 건지 아니면 김종인이 힘이 센 건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김종인은 경수를 놓아주지 않았다. 


나 집에 갈 거라고-!

아, 갈 거야. 제발 놔.


이제 김종인에게 존댓말 써가며 예의 차리는 것도 포기한 경수가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이상하게 김종인은 배시시 웃으며 경수의 팔을 붙잡고 늘어졌다. 앞에 있던 백현은 이미 잊은 건지 김종인은 오히려 도망치려는 경수를 붙잡고 택시까지 잡아탔다. 물론 제정신 아닌 채로. 

그렇게 경수는 김종인과 이곳에 왔다.


종인이 완전한 무력으로 경수를 제 집에 끌고 온 것은 물론 아니다. 종인에게도 성인 남성을 이리저리 끌고 다닐 만한 힘은 없었으며, 반쯤 포기한 경수의 태도도 종인의 집까지 오는 것에 한 몫 한 것이다. -그러니까 경수는 김종인이 자신을 끌고 택시를 잡아탄 부분에서 반쯤 포기했다.- 


이게 마지막이다. 너무 취해서 집에도 못 들어갈까 봐 어쩔 수 없이 데려다주는 거야.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후에는 제 집 주소를 불러주고 잠에 빠진 김종인을 데리고 종인의 집까지 들어온 것도 도경수 제 발이다.



어쨌든 김종인을 제 침대에 던져놓으니 기분이 찜찜하진 않았다. 물론 아직도 테이블에 코를 박고 엎어져있을 그 강아지는 어찌 되든 어쩔 수 없지만, 김종인 한 사람 살렸다 생각하니 경수는 기분이 좀 나아졌다. 아니, 김종인은 그대로 죽게 놔둘걸 그랬나.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렇게 집까지 데려다줬으니 D전자에 지원을 끊는다느니 하는 협박은 이제 안 하겠지 싶었다. 그러니까 그때는 담당자 넘겨버리는 거다. 하면서 애써 위안 삼았다.


그렇게 김종인을 던져놓고 가려는데 또 뒤에서 종인이 혼자 끙끙댔다. 본래부터 헐렁하게 매져 있었던 넥타이를 마저 풀고 싶었는지 눈은 계속 감은 채로 손만 제 셔츠 위를 허우적대고 있었는데 그 꼴이 우습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경수는 한 번 만 더 도와주기로 했다. 곧 담당자 넘겨버릴 거니까. 김종인을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 될 테니까. 


그런데 경수는 방금 전 자신이 했던 행동들을 곧바로 후회하게 된다. 김종인에 의해서.





*





종인은 아슬아슬하게 제 침대 끝자락에서 자신의 넥타이를 풀어보려는 도경수를 보았다. 도경수의 눈썹을 보았다. 짙고, 두꺼웠다. 그리 길지 않은 앞머리에 내놓은 도경수의 눈썹은 굵직했다. 또 도경수의 눈을 보았다. 예쁘게 쌍꺼풀 진 두 눈이 꽤 컸다. 다음엔 코를 보았다. 날렵하진 않았지만 오뚝하게 선 코가 귀여웠다. 다음엔 도경수의 입술을... 입술을... 입술에...


그러니까, 입술에 입술을 맞췄다.

도경수의 넥타이 잡은 팔을 잡아당겨 순간적으로 홱 하고 무너지는 경수의 입술을 받았다. 도톰하면서도 촉촉한 도경수의 입술이 종인의 입술 위에 맞닿아 있었다. 물론 경수가 놀라 몸을 일으키는 바람에 키스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래서 후에 종인은 이걸 키스가 아니라 뽀뽀라고 칭하기로 했다.



"미친... 미친 새끼..."

경수가 혼자 얼이 빠진 듯 중얼거리고 집을 나가는 중에도 종인은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다시 잠에 빠졌을 뿐이다. 그러니까... 이건... 술김에 한 거니까...





*





일주일째 김종인과의 접점은 다시없었다. 김종인도 경수에게 연락이 없었고 경수는 당연하지만 김종인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아직 담당자를 넘기진 못했지만 어쨌든 이제 일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았다. -물론 도경수 성격에 완전히 손 뗀 건 아니고 그저 일 진행 상 만날 일이 없었던 것뿐이다. 이 '일'에 대해서는 나중에 차차 나오게 된다.- 경수는 그날 생각만 하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그땐 당황 러워서 김종인의 집에서 뛰쳐나오긴 했지만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김종인을 한 대 치고 나왔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남자랑 입술 박치기를 한 것도 억울한데 심지어 싫어하는 사람과의 키스라니, 경수는 정말 화가 나고 어이가 없어서 온몸이 두근두근 댔다.

분명 김종인한테도 연락이 없는 걸 보면 그도 술김에 저지른 일이고, 도경수 자신을 좋아해서 그런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도대리님, 초콜릿 드실래요?"

도경수가 한껏 괴로워하고 있는데 옆에서 박사원이 물었다. 


"네?"

어쨌든 경수는 딴 생각하느라 제대로 못 들었으므로 한 번 더 물었다.


"키세스 초콜릿, 드세요."

키세스? 키세, 키스... 아니 잠시만 뭐라고?

도경수가 얼빠진 눈빛으로 박사원을 쳐다봤지만 박사원은 그저 어색하게 웃으며 경수의 책상에 은색, 초록색, 빨간색 포장지가 둘러진 원 뿔 모양 초콜릿을 정중하게 쏟을 뿐이었다. 박사원의 초콜릿 대령에 경수는 잠시 멍청하게 그의 책상에 붙어있던 박 찬 열 이름 석자 보고 다시 정신을 차렸다. 

"아, 초콜릿. 감사해요, 잘 먹을게요. 박찬열 씨."

그리고 도경수답게 감사 인사도 잊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게, 키세스 초콜릿이란 말이지.












율이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

댓글을 사용하지 않는 블로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