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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한위스키 08

Kai x D.o.

카디 독한위스키 08

W. 율이



경수가 비몽사몽 깨어났을 땐 이미 파티가 끝났을 시간이었다. 경수가 낯선 시계를 봤을 땐 시침이 이미 1시를 가리키고 있었으니 아마 파티가 끝났을 거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아직 어두컴컴한 바깥을 보니 새벽 1시였음이 분명했다. 그런데 뭔가 한 번쯤 본 듯하면서도 낯선 시계는 호텔 방의 시계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여긴,

"일어났어?"

추측하건대 김종인의 집이었다.



경수가 아직 다 못 뜬 두 눈을 깜빡거리자 종인이 또다시 경수의 입술을 파고들었다. 읍, 읍! 경수가 급히 소리 냈지만 이미 종인은 경수의 혀를 감싸고, 또 툭툭 치며 장난질했다. 


경수는 김종인이 마치 뱀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성경 구절에서 하와에게 선악과를 건넨 그 교활한 '뱀' 말이다. 그 뱀은 유려한 말솜씨와 선악과의 맛있어 보이는 자태를 이용해 하와를 꼬드겼다. 그러니까 경수는... 김종인이 도경수를 꼬시려고 작정한 뱀 같다고 생각했다. 화려한 키스 솜씨와, 그의 잘생긴 외모를 내세워. 

하지만 경수는 자신이 하와처럼 꼬드김에 넘어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김종인은, 남자니까. 아무리 남자가 키스를 잘 한다고 해도 경수가 동성애자가 아닌 이상 남자에게 사랑에 빠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경수가 생각한 도경수는 '아마도' 이성애자였다.


"하지 마..."

종인이 잠시 입술을 뗐을 때 경수가 종인을 밀어내며 말했다. 그에 종인이 경수의 눈을 쳐다봤다. 그러더니 도경수 누가 지 업어가는지도 모르고 자더라. 했다.


"여기 네 집이야?"

"어. 한 번 와봤다고 기억하나 보네."

"미쳤어."

"미친 애랑 네 번씩이나 키스한 너도 미쳤어."

"원치 않는 상대를 무방비한 상태에서 덮치는 게 성추행이지. 난 지금 네 번이나 성추행당했어."

"그럼 내가 도경수 책임질게."

"개소리 하지 마."


경수는 더 이상 김종인과 말 섞기 싫었다. 정말로, 정말로 김종인과 대화하면 온몸에 기가 빨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정말로 외계인과 대화하는 것 같았다. 


"나 화장실 간다."

종인이 잠시 자리를 떠나자 경수는 이때다 싶어 주섬주섬 종인의 침대에서 기어 나왔다. 또 옷걸이에 가지런히 걸려있는 자신의 정장 마이를 찾아 입고 슬그머니 종인의 침실을 빠져나왔다. 집에 갈 생각이었다. 마주치기만 해도 머리 아픈 김종인의 집에서 몇 시간이고 더 있을 수 없었다. 그랬다간 몇 번이고 더 성추행당할 것 같았다. 


"어디가?"

몰래 빠져나가려던 경수의 바람과는 달리 화장실에서 나오는 김종인과 마주쳤다. 몰래 집에 가려고 했던 걸 들키면 더 만만해 보일 것 같아서 그냥 태연한 척 '집' 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경수는 종인이 자신을 쉽게 집으로 돌려 보내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랬는데 김종인이 '응, 내일 봐.' 했다. 그래서 정말로 도경수는 김종인의 속을 알 수 없게 되었다.





*





종인은 도경수와의 키스에 딱딱하게 선 자신의 페니스를 달랠 겸 화장실로 향했다. 그러고 나서 화장실을 나오는데 마침 나가려던 것처럼 보이던 도경수와 마주쳤다. 

아... 눈치챘으면 어떡하지.

만약 도경수가 종인의 이런 상태를 눈치챘다면 종인은 부끄러움에 혀 깨물고 자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불안한 마음과는 다르게 경수는 무뚝뚝하게 집에 갈 거라고 했다. 더 이상 경수가 자신의 집에 머문다고 해도 경수를 볼 낯이 없었기에 종인은 도경수보고 가라고 했다. 



사실 종인은 며칠 전 도경수에게 고백한 이후로 고민 많이 했다. 그러다가 내린 결론이 얼굴에 철판 깔자는 결론이었다. 어찌 됐든 도경수를 안 볼 수도 없었고 -일 때문이기도 하고, 종인 자신이 보고 싶기도 하고- 어차피 볼 거라면 얼굴에 철판이나 깔자! 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척 D호텔 창립 기념 파티에 갔었던 것인데 구석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던 도경수가 그렇게 사랑스러워 보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피곤한지 의자에 앉아 졸고 있던 게 마음에 걸려 호텔 방으로 옮겨줬는데 어딘가 이상해 보이는 도경수의 이마에 손을 짚어보고 종인은 놀랐다. 간호 같은 거 해본 적도 없고 병에 대한 지식 같은거 하나 없는 종인이지만 도경수의 이마가 얼마나 뜨거운지는 척하고 알았다. 그래서 눕히고 불편할까 봐 마이도 벗겨주고 물수건도 적셔 얹어주고 했는데 평소와는 달리 종인 하는 대로 가만히 있는 경수에 왠지 예뻐 보여서 무작정 입술을 가져다 댔다. 

두 번의 키스를 끝내고 도경수를 쳐다봤을 때 도경수가 '너 감기 걸려.' 했다. 도경수가 웬일로 내 걱정하나 싶으면서도 도경수가 날 걱정할 만큼 나한테 마음을 열었구나! 싶어서 괜히 좋았다. 그러고 다시 자는 도경수가 귀여워서 한참을 쳐다보고 있다가 다시 로비로 내려갔는데 파티 끝 물이길래 경수를 업어 들고 종인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





경수는 입술을 슥슥 문지르며 택시 정류장까지 걸어 나갔다. 경수가 이만큼 걸어오는 동안 스무 번도 더 입술을 닦았을 것이다. 김종인과의 키스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상대가 '남자'라는 점에서, 그리고 '김종인'이라는 점에서 무척 불쾌했다. 



경수가 마침내 택시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엔 이미 다른 무리가 그 정류장 앞에서 쩔쩔매고 있었다.


"아 변백현 이 새끼 내 바지에 또 토했어! 야 누가 얘 이렇게 술 먹였냐 뒤질래?"

"너잖아 개새끼야, 시발 이 새끼 바지 봐~"

하면서 낄낄대는 남자들과 그 중심에 몸도 제대로 못 가누고 옆 남자에게 매달리듯이 서 있는... 저번에 그 김종인과 친해 보이던 강아지처럼 생긴 남자가 보였다. 볼 때마다 이 사람은 제정신이 아니네 싶었고 그 무리를 지나쳐 맨 앞에 서 있는 택시 문을 열려고 할 때쯤 변백현이라고 불리던 강아지가 어? 어! 했다. 

"너... 도경수 맞지요...? 맞아, 도경수다아!!"


그 시끄러운 변백현이 소리치는 바람에 경수는 흠칫했고 백현과 같이 있던 남자들이 경수를 향해 눈을 돌렸다. 큰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어쩔 줄 몰라하는 도경수에, 바지에 토를 묻히고 있던 남자 한 명이 백현과 아는 사이냐고 물었다. 경수가 대답할 틈 없이 변백현이 또 큰 소리로 맞다고 대답해서 도경수는 또 골치 아픈 일이 생기겠구나 직감했다.

남자들은 자신이 변백현 고등학교 동창이라고 대답했다. 경수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지만 애써 웃으며 네, 하고 대답했다. 그러고 그 동창들이 변백현을 데리고 택시에 타려는데 변백현이 대뜸 '김상철 놔~ 나 도경수 씨랑 갈 거야...' 했다. 그 동창들은 경수를 보며 멋쩍은 웃음 한 번 지어 보이더니 냅다 변백현을 두고 택시에 타버리는 것이었다. 경수는 휴 하고 벤치에 엎드리다시피 한 변백현을 툭툭 쳤다.

"저기요."

 "..."


경수는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 자신에게 이런 고난을 안겨주고 잠이나 쳐 자는 변백현과, 그때 본인 집 주소나 읊고 똑같이 잠이나 쳐 자던 김종인이 생각나서 괜히 짜증 났다. 끼리끼리 논다더니 어쩜 이렇게 똑같을까- 하면서.

그 동창이란 사람들도 말이지, 제 친구를 신분 확인도 안 되는 모르는 사람한테 이렇게 덥석 던져놓고 가버리는 게 어딨어? 변백현은 의리 있는 친구 하나 없구만. 하고 경수는 잠시 생각했다.


어찌 됐든 이놈의 변백현은 처리해야겠다 싶어 어쩔 수 없이 김종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종인 집에서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또다시 김종인을 봐야 한다니 정말 기구하기 짝이 없었다. 언제부터 본인의 인생이 이렇게 기구해졌는지 생각하자면, 아마 김종인과의 미팅 날부터일 것이다.



- ··· 여보세요?

웬일로 도경수가 전화를 다 했어? 라는 뜻이 담겨져 있는 것 같은 김종인의 목소리가 전화 너머로 울려 퍼졌다. 

"요 앞에 택시 정류장. 잠시 나와."

어쨌든 경수는 김종인의 궁금함 따윈 뒤로하고 용건부터 말했다. 아마 김종인은 또 좋다고 뛰어나올 것이다. 아니, 아닌가? 김종인은 도무지 예측할 수 없으니까 어쩌면 일 있다고 안 나올지도.

경수의 걱정과는 달리 김종인은 알았어- 한마디 했다. 그래서 경수는 맘 편히 전화를 끊었다.






"이거 뭐야?"

벤치에 쓰러져있던 변백현을 주욱 밀며 김종인이 물었다. 뭐긴 뭐야. 변백현이지. 하고 경수가 대답했다. 그러자 김종인이 네가 변백현 씨를 어떻게 알아? 했다. 그래서 경수는 이제서야 사정 설명을 했다.


"그 동창이란 놈들이 너한테 버리고 갔다고?"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버리다'가 뭐냐. 두고 간 거지. 이 사람 너랑 친한 거 아니었어?"

"맞는데. 내 후임이야."


경수는 왠지 김종인이 후임이라는 단어를 쓰는 게 굉장히 안 어울리다고 생각했다. 사실 종인이 경수보다 더 높은 직급을 달고 있는 것은 확실한데, 종인이 이제까지 하는 짓을 보다 보면 어린애가 땡깡 피우는 것 같다고 생각했을 때가 한 부서의 팀장이구나 했던 때 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사실 한 부서의 팀장이구나 했던 적은 처음 만났을 때 이후로 한 번도 없었다-



"어떡할 거야 이제?"

"그걸 왜 나한테 물어?"

"그 동창들이 너한테 버리고 간 거니까."

종인이 해맑게 저런 소릴 할 때면 경수는 김종인을 한 대 치고 싶었다.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니면 없는 척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난 이 사람 이름이 변백현인지도 오늘 처음 알았어."

경수의 말에 종인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백현을 흔들어 깨웠다. 얼마나 세게 흔들었는지 변백현이 우웁. 하며 입을 틀어막고 반쯤 눈을 뜨자 종인이 '변백현 씨, 저 김종인입니다.' 하고 불렀다. 경수는 그의 사무적인 말투도 오랜만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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