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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한위스키 13

Kai x D.o.

카디 독한위스키 13

W. 율이



"받아."

경수가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던 그림에 빠져있는 사이 종인이 경수에게 와인잔을 내밀었다.


"또 취하면 계약서에 지장 마음대로 찍고 그러는 거 아니야?"

"··· 내가 언제 그랬어."

하긴, 도경수 제가 취해서 도장 꺼내준 거였지만. 어쨌든 경수는 오랜만에 기분도 좋고 해서 김종인이 건넨 와인잔을 받아들었다. 종인이 따라준 레드 와인이 경수의 손목 스냅에 따라 옅게 찰랑이는 것이 꼭 지는 노을 아래 잔잔한 파도 같았다. 그리고 이 상황도 잔잔했다. 마치 와인잔 속의 와인처럼. 




처음에는 분명 레드 와인이었는데 어느새 경수는 이름도 잘 모르는 위스키병이 식탁 위에 자리 잡았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마신 건 아니었다. 다만 와인 한 병을 둘이서 다 마셔버리고 -정확히는 도경수가 더 많이 마셨다- 그 끝이 조금 아쉬웠던 것뿐이었다. 그러나 우습게도 김종인의 집에는 와인이 더 없었다. 고작 13도짜리 와인 한 잔에 취해서 기분이 좋아진 종인이 와인은 한 병밖에 없다며 아쉬우면 위스키라도 한잔할래? 하고 꺼낸 게 MACALLAN 18이라고 쓰인 위스키였다. 


"선물 받은 건데, 난 못 마셔 이거."





*





"하지 마..."


위스키 반 잔에 취해버린 경수가 작게 내질렀지만 종인은 들은 채도 없이 경수의 귓불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키스하고 싶어."

종인이 말했다. 경수는 대답이 없었지만 종인은 테이블에 얼굴을 묻은 경수를 일으켜 세웠다. 뭐야아... 하고 경수가 초점 풀린 눈동자로 종인의 눈을 마주치자 종인은 참을 수 없게 되었다. 종인이 경수의 입술을 파고들었을 때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경수가 바람이 빠져버린 홍보용 풍선 인형처럼 의자에 주저앉았지만 종인은 허리를 숙여 또 한 번 경수의 입술을 탐하기 시작했다.


종인이 경수에게서 입술을 떼자 투명한 타액이 경수의 턱에서 힘없이 흘러내렸다. 경수가 손으로 한 번 닦았지만 종인은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경수의 새하얀 목덜미를 핥기 시작한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종인이 뱀처럼 유려한 혀로 경수의 목덜미를 쓰다듬자 경수가 '아...' 하고 소리 내었다. 이내 종인이 자세가 불편했는지 입을 떼고 그대로 경수를 안아 들고 침실로 향했다. 그동안 경수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못했던 것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침대에 힘없이 누운 경수가 종인을 쳐다보았다. 그 초점 풀린 도경수의 두 눈동자가 종인에게는 마치 애원하는 듯 보였다.


빨리 아까 하던 거 계속해줘.

하고.



종인이 경수의 입안에 혀를 굴려 가며 손으로는 경수의 셔츠 단추를 풀었다. 경수가 손가락으로 종인의 손등을 잡는 듯했으나 그 힘이 미미해서 종인이 신경 쓸 정도는 되지 않았다. 종인의 혀가 경수의 입술을 다음으로 목, 그리고 쇄골까지 닿았다. 경수가 아, 아... 하고 신음했음에도 불구하고 종인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빨라지는 듯했다.

종인이 저만치 내려가 경수의 바지 위를 움켜잡자 경수가 움찔 하는 게 느껴졌다. 종인은 순간 승리감에 도취했다. 나를 왜 좋아하냐며, 이해할 수 없다고 화를 내던 도경수가 자신의 밑에서 종인의 손길에 흥분하는 그 모습이 종인을 더 기분 좋게 만들었다. 그래서 종인이 경수의 바지 지퍼를 내리려는데 어느 순간 턱 하고 막혔다. 


"제발... 그만해..."

떨리는 목소리로 흐느끼는 도경수에 종인은 몸짓을 그대로 멈췄다. 도경수가 운다. 화내고 정색할 줄밖에 모르는 것 같은 도경수가 김종인 때문에 울고 있었다. 

"하지 마... 하지 마..."


그때 종인이 느낀 죄책감의 무게는 어마어마했다. 그래서 그만뒀다. 도경수 미안해, 미안해. 반복하며.




경수는 종인에게서 등을 돌린 채로 잠들어 있었다. 종인이 경수를 두 팔로 끌어안았지만 이미 잠든 탓인지 경수는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종인이 엄지손가락으로 경수의 조용히 감은 눈가 주변을 만지작거렸다. 경수의 눈물자욱이 아직 남아있었다. 





*





경수가 정신을 차린 건 창문 밖으로 햇볕이 쨍쨍한 점심이었다. 경수가 늦잠을 잤음에도 불구하고 김종인은 경수의 옆에서 그대로 잠들어 있었다.


"미친."

경수가 종인을 보자마자 작게 내뱉었다. 순간 어제의 기억들이 모두 떠올라서 경수를 괴롭혔다. 오랜만에 보는 그림을 김종인 집 현관에서 본 것부터 술을 마신 것, 그리고 김종인과 한 짓까지 모두.


어제 김종인을 말리지 않았다면 정말 끝까지 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김종인과 섹스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전과는 다르게 그것이 끔찍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키스와 애무 그리고 그다음 섹스라는 흔한 순서라고 느껴졌다. 김종인이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경수는 섹스를 하고 싶지도 하기 싫지도 않았다. 다만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흥분에 눈물이 터졌을 뿐이다. 조금 무서웠다. 그래서 김종인을 말린 것뿐이다. 그리고 김종인은 정말로 그만뒀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 이상하지 않은 그 감정이 이상했을 뿐이다. 어느 순간부터 김종인에게 동화된 것 마냥. 이제는 김종인이 싫지도, 끔찍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좋지도 않았지만, 정말로 이렇지도 저렇지도 않았다. 그래서 경수는 그게 괴로웠다.



"언제 일어났어...?"

김종인이 경수의 팔을 잡으며 부시시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방금."

경수도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미안."

종인이 느닷없이 사과해와서 경수는 조금 놀랐다. 막무가내일 줄 알았는데 멈춘 것도 그랬지만 이렇게까지 사과해올 줄은 몰랐다. 그래서 경수는 대답 없이 쳐다만 보았다.


"이제 강제로 안 할게. 네가 괜찮다고 하면, 그때만 할게."

종인의 말에 경수는 작게 끄덕였다. 예전 같았으면 경수는 절대 괜찮다고 할 일 없어. 라고 생각했겠지만, 이제는 솔직히 경수도 본인이 어떻게 변할지 잘 모르게 되었다. 정말로 이상했다.







"치킨 시켜 먹자."

경수가 아무런 말 없이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고 있으니 종인이 배가 고픈지 어기적어기적 소파로 기어 올라오며 말했다. 경수는 종인의 말대로 정말로 출근하지 않았다. 어쨌든 일요일에 출근해야 할 이유는 없었으며 출근한다 해도 경수 의지로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오늘은 출근하지 않았다. 사실 일요일까지 출근하는 경우는 경수로써도 잘 없었지만. 그리고 그 대신 김종인과 시간을 보냈다.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은 없을 줄 알았다. 어쩌면 정말 김종인 말대로 도경수가 김종인을 좋아하게 만들 거라는 말이 사실이 될지도 모른다. 


경수가 잠시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 사이 종인이 치킨집 번호를 눌러 치킨을 주문했다. 교촌치킨, 허니콤보. 경수는 먹어보지 않은 것이다. 사실 경수가 배달 음식을 잘 시켜 먹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런 것도 있지만 경수는 치킨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 더 크다. 


"이거 먹어봤어?"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경수의 무미건조한 대답에 종인이 정말로 충격을 받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러자 김종인의 크고 뚜렷한 쌍꺼풀이 더 올라가서 경수가 보기에 웃긴 모양이 되었다. 경수는 잠시 킥킥대고 웃었다. 그에 종인이 더 놀란 듯했다.


"도경수 웃어?"

문장만 보면 마치 협박하는 것 같았지만 종인의 목소리 톤은 정말로 놀라서 물은 것이었다. 이제까지 경수가 종인을 보며 웃은 적이 없었기에 놀란 것이 분명했다. 아마 종인은 본인 때문에 웃은 것이 아니라 잠시 딴생각을 하다가 웃은 것이라고 착각했을 수도 있다. 자신감 넘치는 김종인이 그럴 거라고 생각하겠냐마는. 어쨌든 그거야 경수는 모르는 것이다. 짐작했을 뿐.


"아니, 잠시 딴 생각해서."

그리고 경수는 티 내지 않았다.



"근데 진짜로 이상해."

"뭐가."

김종인이 잠금이 풀리지 않는 경수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래서 경수는 대답했다. 뭐가? 하고.


"아니 도경수가 집에 안 가는 거 말이야."

경수는 그에 '그건 나도 이상해.'라고 생각했다. 입 밖으론 꺼내지 않았지만. 




"이거 봐, 도경수가 내 옆에 앉아서 나랑 같이 먹을 치킨을 기다리고 있어."


김종인의 말대로 정말, 정말 이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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