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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한위스키 15

Kai x D.o.

카디 독한위스키 15

W. 율이



종인은 아주 이상한 꿈을 꿨다. 그 꿈을 꾼 날은 백현이 도경수의 전화번호를 물어봤던 날이었다.



'가지 마, 가지 마 도경수...'

종인이 소리 내 경수를 붙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도경수는 어딘가로 사라졌다. 경수가 종인을 등지고 나아갔던 곳엔 그들이 있었다. 도경수는 변백현과 박찬열 앞에서 멈춰섰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종인이 다시 내게 돌아오라며 울부짖었지만 도경수는 듣지 않았다. 끝끝내 도경수는 종인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종인이 꿈에서 깨어나 휴대폰을 확인했을 때에도 경수의 연락은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상이었지만 혹시나 하고 기대해 봤던 것이 허무하게 일그러지는 순간이었다. 



자리에 앉아 온종일 컴퓨터와 서류들만 만지작거렸지만 정작 종인의 눈에 밟히는 건 도경수에게 아무 연락도 없는 휴대폰이었다. 


도경수한테 연락이 올 리 없지. 언제나 그랬잖아.

그런데 서로 동의 하에 키스까지 했으면 거의 사귀는 사이인 거 아니야?


하루 종일, 정말로 하루 종일 김종인은 도경수 생각만 했다. 어쨌거나 그러면서도 변백현과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 했다. 





*





"여.. 여보세요...?"

미친! 경수는 술에서 확 깬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경수가 백현의 손에서 휴대폰을 뺏기도 전에 스피커폰으로 울려 퍼진 김종인의 목소리는 정말로 전부가 다 들었다. 그러니까, 도경수와 제 눈앞에 있는 변백현이 말이다. 백현이 당황한 듯 여보세요? 하고 다시 한번 물었지만 경수에 의해 통화는 연결이 끊긴 상태였다.


"..."

변백현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저 딸꾹질이나 할뿐이었다. 

경수는 얼굴이 뜨거워지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경수의 복잡한 머릿속엔 이제 변명거리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오해라고 할까? 나는 그런 사람 아니라고 할까? 그런데 그 변명이 무색하게도 김종인과 키스한 건 사실이었다. 난감한 상황에 경수가 열심히 머리 굴리는 동안 백현이 오랜 정적 끝에 입을 뗐다.


"미안. 마음대로 전화... 받아서. 진짜, 진짜 미안..."

"..."

"근데 나 그런 거 신경 안 써. 의외로 주변에 많은 것 같기도 하고."

차라리 경수는 변백현이 게이 새끼라고 욕해줬으면 좋겠다 싶었다. 신경 안 쓴다면서 이 어색한 기류는 어쩔 것이냐고 묻고도 싶었다. 그리고 앞으로 변백현 안 봐야겠다. 하고 생각했다.






- 지금 끊은 거냐?

"너... 좀 닥쳐..."


결국 끊임없이 반짝이는 휴대폰에 경수는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경수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동안 백현이 신경 쓰지 말고 다녀오라며 보낸 눈빛에 경수는 이제 정말로 변백현 안 볼 거라고 다짐했다. 아니, 다시는 못 볼 거라고 확신했다. 경수에겐, 이 상황이 굉장한 치욕이자 벼랑 끝이었다.



- 뭐?

"하..."

- 너 지금 변백현 씨랑 있냐?

"··· 무슨 상관인데."

- 서로 좋아서 키스까지 했으면...

"내가 언제 좋아서 한 거라고 했냐?"

- 도경수!

"나 이제 너 때문에 변백현이랑도 안 볼 거야."

- 진짜? 잘 생각했어.

"그리고 너랑도 안 볼 거야. 일이고 뭐고 담당자 넘겨버리고 지방으로 출장을 나가든 해외 발령을 받든 하늘로 솟든 땅으로 꺼지든, 진짜... 협박이고 뭐고..."

- 야!


거지 같은 김종인, 게이 새끼. 다시는 상종하지 않을 거야.

더러운... 도경수... 호랑이한테 홀린 건지 뭔지는 몰라도 잠시나마 김종인을 믿은 게 바보였지. 결국 김종인은 경수의 상황도, 처지도, 하나도 생각 안 하고 막말이나 하는 그런 사람이다. 도경수 말대로 개인주의적인 그런 놈이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밀어내지 않은 도경수가 잘못한 거다.


김종인에겐 아무렇지도 않을 이 상황에,

다른 사람 배려하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고, 부탁 같은 거 거절할 줄도 모르고, 아닌 척하면서도 남 눈치 많이 보는 도경수라는 사람은 어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서 숨고 싶었다.






[미안해, 미안해... 도경수 미안해. 그러지 마. 내가 잘못했어...]

[아깐 정말 미안... 나는 미안한 일밖에 안 하는 사람이네... 근데 진짜 나 신경 쓰지 마. 네가 원하면 그냥 못 들은 걸로 할게...]


그 날 집으로 향하는 경수에게 두 명에게서 두 개의 문자가 왔지만 경수는 누구에게도 답장하지 않았다.





*





종인은 경수의 회사 앞에서 무작정 기다렸다. 본인은 출근도 하지 않았다. 어제 경수가 그렇게 전화를 끊고서 경수와 다시 얘기할 방법이 없었다. 도경수의 집을 아는 것도 아니고, 지금 도경수가 어디 있는지 아는 것도 아니었다. 문자를 보내봐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 날이 되자마자 D전자 건물 앞으로 찾아갔다. 출근하는 도경수라도 붙잡고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정말로 하늘로 솟든 땅으로 꺼지든 어딘가로 작정하고 숨어버리면 그땐, 정말로 어찌할 방도가 없다. 사람 하나 찾아달라고 흥신소라도 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행히도 종인은 점심시간에 경수를 볼 수 있었다. 박찬열과 함께였다는 점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말이다.




"도경수...! 대리님."

경수가 종인을 바라보는 표정은 당장이라도 눈앞에서 꺼지라고 할 것 같았지만 의외로 박찬열을 의식했는지 말없이 종인을 따라 나왔다. 종인은 그것조차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지금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도경수의 마음이었다.


"여긴 또 왜 찾아오는데?"

"전화를 해도 안 받고, 문자를 해도 답장을 안 하니까..."

"이제 정말 상종도 안 할 거야. 진짜로 담당자도 넘겨버리고, 네가 찾아오지도 못하는 곳으로 갈 거야. 내가 그땐 잠시 돌았어서..."

"경수야."

"난 이런 일 때문에 여러 사람 입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도 싫고, 조롱거리 되는 것도 싫고..."

"도경수! 오바하지 마!"

"너한테는 이게 오버하는 걸로 보이냐?"

"변백현 씨 아무한테나 함부로 말하고 다니고 그럴 사람 아니야."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는데!"


분명히 김종인이 잘못했다. 종인도 알고 있었다. 제 앞에서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불안해하는 도경수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 미안하다고 사과해야만 했고, 용서를 구걸해야만 했다. 그러나 김종인의 혀가 마음과는 다르게 반응했다.

김종인 병신.

누군가 종인에게 이렇게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도대리 님?"

박찬열이었다. 그 눈엣가시 같은 박찬열. 저 자식도 도경수를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 그냥 종인의 감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아, 네 찬열 씨."

종인은 찬열을 향해 온화하게 변한 도경수의 얼굴 근육과 목소리가 미웠다. 그러면서도 도경수를 화나게 만든 김종인 제 자신도 미웠다. 오늘은 이럴게 아니었는데...



"그만 돌아가."

경수가 종인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말했다. 

"도경수, 아무튼 미안..."

그리고 종인도 경수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





백현은 키보드 두드리는 것을 잠시 멈추고 종인의 방을 살폈다. 종인은 오늘 출근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경수와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경수에게 그런 사람들 주변에 많은 것 같다고 했지만 백현은 사실 처음 보았다. 김종인과 도경수 같은 사람을. 그랬지만 정말로 거부감 들거나 하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생각했다. 어쨌든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은 거짓말이었지만. 



변백현.

스물다섯 살 먹으면서 수없이 많은 여자들을 만났고, 사귀었고, 섹스했다. 그런데 결국에는 다들 생각이 어리다며, 너는 내 맘을 모른다며 백현을 떠나갔다. 백현은 그렇게 떠나가는 여자들을 잡지 않았다. 그러니 여자들은 왜 잡지도 않냐며 화냈다. 백현은 정말로 여자들이 말 한 것처럼 그들의 마음을 몰랐다. 그래서 연애 같은 거 더 이상 안 하기로 했다. 여자들을 만나지 않으니까 정말 여자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KJ전자에 입사하고 나서부터는 일만 하고 살았다. 정말로 연애 같은 거 모른다는 듯이. 



"주임님, 이대리님이 오늘 외근 저희만 나갔다 와야 할 것 같다는데요?"

"그래? 알았어."

"네 그리고 이 업체..."


일을 하는 동안에도, 밥을 먹는 동안에도 백현의 머릿속엔 도경수와 김종인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면, 남자랑 연애하는 건 어떤 느낌일까? 섹스하는 건? 왜, 수많은 여자들은 남자들과 연애하고 섹스하잖아. 그럼 남자도 남자랑 연애할 수 있지. 그렇지, 아니야? 맞잖아. 이미 경수랑 김팀장님도 그러고 있는걸.


백현이 동성연애에 관심을 가진 건 이때부터였다. 하지만 그저, 순수한 호기심 때문일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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