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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한위스키 17

Kai x D.o.

카디 독한위스키 17

W. 율이



경수는 밤새 꿈을 꿨다. 꿈속에는 김종인이 있었다. 꿈속의 김종인이 맑게 웃으며 경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 미소가 너무나도 눈부셔서 경수는 따라 웃었다. 우리는 햇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가 울창한 숲에 있었다. 종인이 경수의 손을 잡아끌고 한 걸음 발을 내디뎠다. 종인이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서늘한 바람이 경수의 뺨을 스쳤다. 종인이 마침내 걷는 것을 멈추었을 때, 우리의 앞엔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웅덩이가 있었다. 종인이 그곳을 가리켰다. 싫어, 무서워. 경수가 소리쳤다. 종인이 말했다. 이 밑은 빛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없을 거야.


경수가 눈을 뜨자마자 본 것은 아직 꿈속을 헤매고 있는 듯한 종인의 얼굴이었다. 경수가 6시 20분을 가리키고 있는 시계를 확인하곤 종인을 흔들어 깨웠다. 야, 일어나. 넌 출근 안 해?

"몇 시야?"

종인이 갈라진 목소리로 경수의 팔을 붙잡으며 물었다. 

"6시 반."

"조금만 더 자자..."

"김종인, 나 출근해야 해."

종인이 히잉, 하고 어울리지 않게 아쉬운 소리를 냈지만 경수는 얼른 침대에서 벗어나 욕실로 향했다. 욕실로 걸어가는 동안 아래에서 생생히 느껴진 고통에 잠깐 신음했지만 그렇다고 출근도 안 하고 집에 누워만 있을 순 없었다. 경수가 옷가지들을 바구니에 넣고 욕실로 들어가 뜨거운 물을 온몸에 적시자 몸이 노곤해졌다. 한동안 계속 그렇게 서 있었다. 마침내 경수가 얼굴에 묻은 물기를 쓸어내며 케라시스 샴푸 한 번 꾹 짜서 손에 덜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김종인과 한 침대에서 자고 일어나서 출근을 준비하는 이 이상한 상황에 대해. 김종인이 일요일 저녁 경수의 집에 찾아와서 양복을 주고, 경수가 해준 토마토 스파게티를 먹고, 그리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소파에 앉아 티비를 봤다. 그러고선 제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경수가 몇 번이고 가라며 종인의 등을 떠밀었으나 그는 막무가내였다. 그래서 경수도 네 마음대로 해라. 하고 포기한 것뿐이다. 

그 뒤엔 정말 자연스럽게 술을 좀 마셨다. 정말 '조금' 마셨다. 경수는 종인이 고작 소주 반병에 취해버릴 줄은 몰랐다. 그래서 경수가 싱겁긴. 하고 마지막 잔을 탈탈 털어 마신 후 술자리를 치웠다. 그다음엔 키스를 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부자연스러운 상황이었지만 그때 경수는 결국 이렇게 되리라고 예상했다. 김종인이 자려고 누운 경수에게 키스해도 되냐고 물었다. 그러고선 경수가 대답을 하기 위해 입을 떼기도 전에 아니다, 한 번 허락 받았으니까 이제 키스는 마음대로 할 거야. 라며 경수의 위로 올라타 입술을 맞대어왔다. 고작 소주 반병에 절여진 듯한 김종인이 이 순간만은 거칠게 경수의 혀를 내리감았다. 서로의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적막에 경수가 조금 흥분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경수가 종인의 목에 팔을 두른 것도 오늘이 처음이었다. 둘 사이엔 입술과 입술이, 그리고 혀와 혀가 부딪혀 질척거리는 소리만이 새어 나왔다.

경수는 여기까지만 하려고 했다. 종인의 목에 팔을 두르면서도 마지막 이성의 끈은 꼭 붙잡고 있었다. 이러면 안 돼. 김종인도 남자고, 나도 남자야. 이러면 안 돼. 안 돼. 도경수 미쳤냐? 흥분은 왜 하는데? 미친놈. 하며 끊임없이 도경수 저 자신을 자책했다. 하지만 김종인이 경수의 티셔츠 속에 손을 집어 넣는 순간 경수의 이성은 뚝 하고 끊어졌다. 그 뒤로는 정말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게 맞는 것이든, 틀린 것이든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그저 김종인의 욕망에, 그리고 결국 김종인에게 잠식당한 도경수의 욕망에 몸을 맡길 뿐이었다. 


일사천리였다. 종인이 경수의 유두를 잘근잘근 깨물자 경수가 학- 하고 신음했다. 그 뒤는 정말 새하얗게 질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경수가 김종인에게 제 몸을 맡기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은 것처럼. 김종인은 폭주한 기차 같았다. 누가 보면 하나도 취하지 않은 사람 마냥 도경수의 하얀 나신에만 집중했다. 김종인이 하체를 빠르게 움직일 땐 경수는 정말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그저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보려고 이불가지를 꼭 쥐고 입술을 깨물었다. 경수의 입술에서 피가 새자 종인이 그것조차 물었다. 비릿하고, 따가웠다. 하지만 그 따가움은 아래의 고통에 비하면 만 분의 일도 안되게 느껴졌다.





*





경수가 회사에 어기적어기적 출근하자 먼저 와 있던 찬열이 일어서서 경수에게 인사했다.

"어? 대리님 어디 아프세요?"


네, 씨발 김종인이란 놈 때문에 똥꼬가 아파요.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괜찮아요..."

경수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 저 마케팅 4팀으로 옮겨졌어요. 들으셨죠? 인사팀에서..."

"네. 저한테는 좋은 소식이네요. 찬열 씨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잘 해봐요, 찬열 씨."

"도팀장님 따라왔는데 그럼 나쁜 소식이겠어요? 대박 터진 거죠. 아, 커피 한 잔 타드릴까요?"

"저는 괜찮아요."

경수의 대답에 찬열이 넵, 알겠습니다. 하고 자리에 앉았다. 오늘부로 마케팅 4팀에 합류하게 된 찬열이 경수는 내심 반가웠다. 말이 많아 피곤하기도 한 사람이지만 어찌 보면 그 점이 또한 장점인 사람이었다. 



경수가 이상하게 싱숭생숭한 꿈을 꾼 탓에 기분이 영 좋진 않았다. 김종인과의 섹스도 흥분은 뒷전이 될 만큼 엄청나게 아팠으며 그 섹스 후에 겨우 잠들어 꾼 꿈은 김종인과 울창하고도 조용한 숲을 걷다가 어둠이 끝도 없는 깊은 웅덩이를 구경한 것이었다. 그것까진 상관없었다. 다만 그 뒤 김종인과 도경수의 상황을 겨냥한 듯한 의미심장한 종인의 대사가 경수를 싱숭생숭하게 만들었다.

이 밑은 빛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없을 거야.

마치 이대로 김종인을 받아들이면 다가올 미래를 암시하는 듯한.




[아까 봤는데 벌써 또 보고 싶어]

김종인이다. 가끔 아무렇지도 않게 김종인이 이런 말을 할 때면 경수는 정말로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도경수 성격에 경수에게 알콩달콩한 말을 듣기 위해선 누구든 적어도 100년은 관계가 좋은 방향으로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김종인은 어떻게 이런 오글거리는 문자를 잘도 보내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고 경수는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문자엔 답장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도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우습게도 경수는 어제까지 연락을 하지 않는 김종인이 괘씸했고, 어젯밤 불타오르는 욕구에 김종인과 섹스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경수가 종인을 좋아하게 됐다고 보는 것은 아직까지 무리였다. 김종인은 도경수에게 이제서야 '미치도록 싫은 사람'이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난 것뿐이다. 그렇다면 왜 키스도 하고 섹스도 했냐 하면 그건... 경수도 딱히 왜 그랬는지 설명할 순 없었다. '그냥' 그랬다. 그러고 싶었으니까. 

너랑 김종인 정말로 엔조이야? 하고 누군가 묻는다면 경수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고 대답했을 것이다. 어찌 됐든 '미치도록 싫은' 김종인에서 '싫지도, 좋다고도 할 수 없는' 김종인까지 도달한 것은 경수에겐 언제 어떻게 바뀌었는지 본인도 설명할 순 없으나 인정해야 할 것 만은 확실했다.



[왜 답 안 해?]

[바빠?]

[도경수 좋아해]

[넌?]

지잉, 지잉 쉴 새 없이 휴대폰이 울려서 결국 경수는 휴대폰 알림을 무음으로 바꾸었다. 안 그래도 앉아있는 것조차 아파 죽겠어서 김종인에게 문자 답장 따위 할 여유 같은 거 없었기 때문에 답장은 굳이 하지 않았다. 심지어 좋아한다며, 너도 나를 좋아하냐고 묻는 김종인에게 할 적당한 답 같은 거 없었다. 아니, 좋아하지 않아. 그런데 어쩐지 신경은 쓰여. 그 정도일까? 경수도 도경수 제 감정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김종인에게 설명할 수 있냐는 말이다.





*





종인이 답장이 오지 않는 경수에게 열심히 문자를 보내고 있는데 백현이 팀장실 문을 두드렸다. 

"팀장님, D전자 건은 잘 되어가고 있습니까?"

D전자와의 협업은 마케팅부에선 종인 독단으로 맡은 건이라 백현이 사뭇 궁금했는지 종인에게 결재서류를 내밀며 물었다. 

"아 그거, 네 뭐."

종인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백현 씨, 그때 그 전화 말이에요..."

백현이 종인의 싸인이 담긴 서류들을 가지고 팀장실을 나가려는데 종인이 백현을 다시 불렀다.

"네?"

"어... 다른 분들한테는..."

"걱정 마세요, 그런 거 함부로 말하고 다니는 거 예의 아닌 거 알고 있어요."

백현의 미소 가득한 대답에 종인도 안심한 듯 싱긋 웃었다. 백현은 순간 종인의 미소가 참 순수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백현이 종인을 인간적으로 좋아하고 따르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어디선가 갑자기 굴러와 백현의 앞길을 막은 돌이었을지언정.









전체공개 포스트여서 수위 조절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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