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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한위스키 26

Kai x D.o.

카디 독한위스키 26

W. 율이



도경수는 아침부터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밤을 꼬박 샌 건지, 아니면 밤새 라면이라도 끓여 먹은 건지 눈은 퉁퉁 부어있고, 다크서클은 저 밑까지 내려와 있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감기 기운까지 있는 것 같아 그냥 저희끼리 다녀올 테니 대리님은 좀 쉬셔야 할 것 같다며 종인과 찬열 둘 다 나갈 준비를 하던 경수를 만류한 것이다. 어쨌거나 도경수 상태가 안 좋아 보여서 옆에 꼭 붙어 간호라도 해 주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아무리 싫었어도 저 옆에서 멀뚱히 종인을 기다리고 있는 박찬열보고 혼자 일하라며 보낼 수는 없는 마당이었다. 뭐, 도경수가 가지 말라고 붙잡기라도 했다면 박찬열 따윈 어찌 되든 알아서 하라며 내팽개치고 붙어있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도경수가 그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은 종인도 잘 알았기에 찬열과 둘이서 호텔을 나선 것이었다.

중국 시장 조사는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한 찬열 덕분에 생각보다 손쉽게 끝났다. 종인은 오늘 하루 내내 박찬열과 둘이서만 다녔다. 일이 잘 끝났든 안 끝났든 이 상황이 종인에게 아주 달갑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도경수는 어디 두고 박찬열이랑 둘이서? 이미 마음은 일찍이 콩밭으로 가 있는 상태였다. 


그러던 종인, 찬열과 둘이서만 한 잔하게 된 것은, 아주 우연의 일이었다.




"김팀장님은 제가 마음에 안 드세요?"

포장마차의 빈틈 사이로 바람이 조금씩 스며들었다. 종인은 그때까지만 해도 도경수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종인에게 찬열이 안주로 나온 양 꼬치를 하나 집어 들며 대뜸 물은 것이다. 종인이 고개를 들어 찬열을 바라봤다. 찬열은 마치 양 꼬치 좋아하세요? 같은 의미 없는 질문이나 한 것 마냥 생글생글 웃고 있었던 것이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김팀장님이 오해하시는 게 있는 것 같아서요."

"예?"

"저 사실 남들과는 연애 취향이 조금 다르거든요."

종인은 찬열의 뜬금없는 연애 취향 이야기에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떠오른 것이다. 역시 이 새끼! 도경수를 좋아하는 게 틀림없어! 지금 본인이 게이라고 말하고 있는 거잖아!


"아 그리고, 도대리님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구요."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찬열의 말은 종인이 생각한 것과는 한참을 엇나간 것이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러니까, 멍하니 찬열을 바라보고 있는 종인에게 결정타를 날린 것은 바로 이 대사였다. 





*





찬열이 종인과 경수의 사이를 어느 정도 짐작한 것은 맞지만, 사실 종인에게 날린 직구는 찬열에게도 모 아니면 도였다. 그들이 찬열이 생각했던 관계가 아니었으면 어떡할 거고, 또 맞다고해도 발뺌한다면 찬열에겐 어떻게든 그 상황을 빠져나갈 방도가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찬열이 종인에게 직구를 날릴 수 있었던 이유는 찬열의 앞에 있는 김팀장은 발뺌이나 할 것 같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인과 만난 지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마주치게 될 때마다 이상하게 적대감을 가지고 찬열을 대했다는 것을 당사자인 찬열이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이렇게나 싫으면 싫은 티를 내는 사람이다. 그만큼 제 감정에 있어 솔직하다는 것이고, 찬열이 짐작한 것이 맞다면 이 게임은 찬열이 백 퍼센트의 확률로 이길 것이다.


"저도 비슷한 입장으로써 짐작했을 뿐이지만, 앞으로 계속 협업할 사인데 너무 미워하진 말아 주세요, 김팀장님."

"..."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그런데 어서 가지 않으면 도대리님이 많이 기다리시겠어요. 저는 저 카페에서 커피라도 사 들고 갈게요. 팀장님은 어떤 거 드시고 싶으세요? 아마 도대리님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드시지 않을까요?"

"그럼 저는 바닐라 라떼요, 휘핑 많이 올려서-"

하지만 이윽고 종인이 싱긋 웃은 것은, 찬열 또한 쉽사리 예상치 못했던 반응이었다.





중국의 저녁 공기는 약간 습한 듯했다. 찬열이 음료 세 잔을 테이크아웃해 카페를 나왔을 때는 완전히 해가 진 다음이었다. 찬열이 종인에게 이긴 거나 다름없는 승부를 제시했을 때, 종인은 찬열의 예상대로 당황한 듯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놀란 눈으로 찬열을 똑바로 주시하고 있었던 것을 찬열이 두 눈으로 확인했다. 하지만 찬열이 마지막 말을 던졌을 때, 아무렇지 않은 듯 웃는 종인의 모습은 아주 아주 낯선 것이자,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찬열은 종인의 반응이 계속 경계하는 표정이거나, 아니면 계속 멍청한 표정이거나 둘 중 하나일 거라 생각했다. 너무 미워하지 말아 달라며 제안했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바로 경계를 풀어버리는 사람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제서야 찬열은 깨달은 것이다.

하나부터 열 가지가 다른 김준면의 동생이었기 때문일까, 성격도, 다루는 법도 뭐 하나 같은 것이 없구나- 하고.





찬열은 지나온 포장마차를 되돌아보며 김준면을 떠올렸다. 저런 포장마차는 준면과 하나도 어울리지 않는다. 귀공자처럼 새하얗게 생긴 김준면은, 역시나 저런 곳엔 가지 않았다. 준면이 KJ그룹 첫째아들이었다는 사실은 사귄 지 한 달이 지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어쩐지 옷 하며 악세사리들은 은근 값어치를 하는 브랜드의 것이었고, 항상 말끔히 정리해 올린 머리는 흐트러짐 없었다. 소주 따위나 파는 포장마차 같은 곳은 서민들이나 가는 장소인 것 마냥 비싼 주류들을 파는 와인바 같은 곳만 데이트 장소로 꼽는 것도 서민들의 삶은 잘 모르겠다는 재벌 2세 다웠다. 찬열은 어쨌거나 준면의 그런 면도 좋았다. 비싼 브랜드의 멋진 옷 들은 준면을 더욱 눈부시게 만들어 줬으며, 값비싼 시계는 학생들의 부러움을 샀다. 자신의 애인이 많은 사람의 동경을 사는 사람이라는데 좋아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비록 비밀연애였으면서도.  

찬열이 이토록 고급스러운 것만을 즐기다가, 김종인을 봤을 땐, 정말로 형제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종인이 저급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딱 봐도 비싼 양복에, 값비싼 신발이며, 시계를 찼다. 앞머리를 시원하게 올린 것은 아직까지 찬열은 한 번도 보진 못했지만 누가 봐도 그의 외양은 나 재벌 2세요. 하고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김준면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김준면은 고급스러운 것'만'을 찾는다면, 김종인은 모든 것을 다 아울러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점에 있었다. 

어쨌든 찬열은 사람을 고급스럽거나 저급스러운 것으로 나뉘어 보는 사람은 아니었다. 찬열이 준면의 값비싼 면을 사랑했던 것은, 김준면이 고급스러웠기 때문이지, 고급스러운 사람이 김준면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





종인이 급히 호텔로 돌아왔을 때 도경수는 아직도 이불을 곤히 덮고 있었다. 아무래도 밤새 추웠던 모양인지, 아침에는 감기 기운만 있어 보였던 것이 심한 감기로 발전한 것이었다. 도경수는 왜 이렇게 감기에도 잘 걸리는 것인지 조그마한 체구처럼 허약한 게 종인이 하루종일 돌봐주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며칠 살지 못하는 학교 앞 병아리처럼 꼴까닥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사실 종인이 아는 것처럼 도경수는 그렇게 허약하지 않다.- 경수는 호텔 관리자를 통해서 약은 받아먹었다고 했다. 약을 먹고 한동안 잠들었었는데 종인이 오는 소리에 깬 것 같이 보였다.


"어떻게 됐어...?"

"넌 이렇게 열이 펄펄 끓는데도 일 걱정이야?"

"내가 빨리 일어나서 해야 하는 건데 괜히 박찬열 씨랑 네가..."

"도경수! 우리도 같이 해야 할 일이었어. 너 혼자 하는 건데 우리가 괜히 따라온 거 아니라고."

"··· 그래도."

"알아서 잘 했으니까 걱정 마..."

"찬열 씨는 모르겠는데 너는 좀 걱정돼."

"··· 나 생각보다 직급도 높은 사람이야."

"맞다, 그랬지."


도경수 이거 분명 종인을 비꼰 게 틀림없다. 하지만 종인은 그런 것조차 기분 좋았다. 도경수가 저에게 장난 같은 것도 칠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이. 생각보다 많이 가까워 진 것 같음이 종인은 좋았던 것이다.



"박찬열 씨는?"

"요 앞에 커피 사 온다고."

"아..."

"그리고 내가 박찬열을 많이 오해한 것 같아. 앞으로 잘해주려고-"

"무슨 오해?"

"몰라도 돼. 아무튼 앞으로는 잘해줄 거야."



종인이 어린아이처럼 입술을 삐죽 내밀자 경수가 뭐야- 하고 웃었다. 종인으로썬 자주 볼 수 없는 도경수의 미소였기에 가슴 속 깊이 오래오래 담아두고 싶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오래도록 도경수의 미소를 볼 수 있었으면 했다. 



"그런데 너 커피 안 먹잖아."

"어. 그래서 바닐라 라떼, 휘핑크림 많이 얹어서."

"애 같긴."


어찌 됐든, 지금의 종인에겐 도경수와 함께하는 이 모든 순간이 행복한 것이다. 어느새 제 취향도 기억해뒀다가 언급해주는 도경수가, 평소처럼 애 같다며 놀리는 도경수가. 영영 이 순간이 떠나지 않았으면 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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