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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한위스키 33

Kai x D.o.

카디 독한위스키 33

W. 율이



# 박찬열.

여름밤의 하늘을 누군가 검은색 물감으로 겹겹이 덧칠해놓은 듯, 까맣고 깊은 흑막만이 찬열을 감싸고 있었다. 새벽 4시를 지나는 시간이었다. 어느덧 도심의 네온사인도 모두 꺼져 이 세상에 눈을 뜨고 있는 것은 너 밖에 없어. 라고 말하는 듯한 적막이 찬열을 습격해왔다. 가끔 저 새벽의 도로를 시끄럽게 달리던 폭주족들의 경적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정말로, 정말로 오로지 나 혼자 살아있는 듯한 이상한 날. 찬열은 그렇게 생각하며 담배 연기를 창문 밖으로 뱉어냈다. 시원한 바람이 찬열의 머리칼을 간질였다. 큭큭, 찬열은 소리 내어 웃었다. 웃었다, 웃었다, 울었다. 소리내어 울었다. 아마 백현은 모를 것이다. 그리고 찬열 아닌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찬열이 얼마나 그를 위했었는지. 얼마나 그를 배려했었는지. 얼마나 그를 사랑했었는지. 그것은 백현이 찬열을 제대로 관찰하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고, 찬열이 그만큼 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어떤 것이든, 찬열은 백현과 사귀었던 지난 2개월을 후회하지 않는다. 찬열의 소리에 아버지가 깼는지 등을 긁으며 어기적어기적 걸어 나왔다. 그는 정수기의 물을 따라 마시며 말했다. 에이 씨발, 오밤중에 뭐 하는 거야. 사내놈이 지랑 똑같은 좆 달린 놈 좋아한다고 정신 나간 소리 해대더니 이젠 다 자는 새벽에 쳐 울고 있네. 에이, 한심한 놈. 누굴 닮았는지, 지 애미 닮은 거야 뭐야. 





*





오랜만에 화창한 날이었다. 8월도 다 지나가고 이젠 9월에 접어들면서 지겨운 장마도 막을 내린 모양이었다. 그렇게 평화가 찾아오는 듯했다. 유난히 화창한 아침, 하늘은 맑고, 여전히 덥긴 하지만 따가운 햇살이 그리웠던 아침, 경수는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사건이 터진 것은, 그 유난히도 화창한 9월의 첫날이었다.





- 지금 팀원 관리 어떻게 한 거야! 믿고 맡겨놨더니...! 지금 얼마나 심각한지 알긴 해?! 너네 팀 사원 하나 때문에 너랑 나랑 전부 다 잘리게 생겼어!! 뭐, 그래 너야 무사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아니라고. 경수야, 어? 도팀장!! 어떡할 거야! 안되겠네, 박찬열 오라고 해.


경수는 멍하니 회의실을 나섰다. 서글서글하게 웃기만 하던 마케팅부 부장이 큰 소리로 호통치는 소리, 짜증스럽게 서류 종이를 구기는 소리, 구긴 서류를 분에 못 참고 빈 공간으로 던지는 소리, 누군가를 탓하는 소리. 소리, 소리, 시끄러운 소리, 소음. 유난히 화창한 오전의 소음.

"박찬열 씨?"

경수가 찬열을 불렀다. 그는 경수가 그를 부른 이유를 짐작하고 있는 듯했다. 찬열이 대답했다. 네, 팀장님... 경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박찬열은 징계 위원회에 불려갈 것이다. 좌천을 당할 것도 없는 사원 하나. 감봉이든, 정직이든, 해고든, 아무튼 경징계는 아닐 것임을, 부장도, 경수도, 찬열도, 그리고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었다. 

 


찬열이 독단으로 맡았던 일이었다. 그 누구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찬열의 잘못이자, 경수의 잘못이었고, 부장의 잘못이었다. 경수는 사내 징계 사유 중 하나를 조용히 읊었다.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회사에 막대한 재산상 손해를 끼치는 경우.' 고작 마케팅부 사원이 벌인 일이었다. 약하면 정직, 심하면 면직 처리를 당할 수 있을만한 과실. 그 누구도 찬열을 신경 쓰지 않았던 만큼, 그 누구도 찬열에게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을 것이다. 찬열은 언제나 밝았고, 성실했고, 일도 잘했다. 하지만 그들은 찬열이 입사한지 1년도 되지 않은 새내기 사원이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아마 징계 위원회가 열리면 찬열도, 부장도, 경수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부장이 말한 것처럼 경수는 뒷 배경 덕분에 무사할 수도 있다. 그리고 모두가 경수는 아무런 징계도, 제재도 받지 않을 것임을 예상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경수는 그러길 원치 않았다. 모두가 예상한 대로 경수가 징계에서 혼자 살아남는다면, 그것은 이제까지 경수가 쌓아올렸던 것들이 모두 경수의 노력이 아니라, 뒷 배경 때문이었음을 증명해주는 것이니까. 설령 아니었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믿을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찬열 씨 사고 쳤다며?

찬열 씨 징계 위원회 열린다고 하던데.

박찬열,

박찬열,

박찬열.

사내는 온통 박찬열의 이야기뿐이다. 경수는 그가 머리를 감싸 쥐는 것을 보았다. 찬열에게 들고 있던 자판기 음료를 내밀었다. 하지만 그 이외의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





3개월간 정직 처분을 받고 찬열이 출근하지 않은 지는 벌써 4일째이다. 경수는 찬열의 빈자리를 바라보았다. 마케팅부의 부장은 견책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경수는, 경수는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았다. 경수는 직원들의 수군거리는 소리 속에서 쓴웃음을 내보였다. 찬열의 직속 상사가, 같은 팀 팀장이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은 것은 모두가 예상한 대로 그들에게 이슈거리가 되어 대화 사이를 넘나들었다. 





*





찬열은 씻지도, 밥을 먹지도 않은 채로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 한 손에는 담배를 들고 한 손으론 마우스를 잡았다. 평소엔 귀가 아파서 잘 끼지 않았던 뿔테 안경을 끼고, 면도를 하지 않아 수염은 거뭇거뭇하게 자란 상태로. 그것은 찬열이 평소에 보여줬던 모습을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과도 같았다. 아버지가 찬열의 방을 지나며 중얼거렸다. 하다못해 해고를 당해? 쓸모없는 놈. 

찬열은 웃었다. 해고 아닌데, 정직인데.




저녁에는 도경수에게 문자가 왔다. 

[찬열 씨, 괜찮아요?]

괜찮냐고? 괜찮지 그럼. 고작 이 정도로 무너진다면 그건 박찬열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그건 박찬열이 아닐 것이다.

네, 괜찮아요. 팀장님 저는 괜찮아요. 괜찮아요. 아마도 괜찮을 거예요.



새벽엔 기분 나쁜 꿈에 쫓기 듯 잠에서 깨어났다. 눈가를 만져보니 눈물이 흘렀던 자국이 선명히 느껴졌다. 아직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새벽의 공기는 시리도록 차갑게 느껴졌다. 변백현, 너는 뭐 해? 내가 이렇게 되었는데 너는 뭐 해? 찬열이 침대에 앉아 흐느끼자 우는소리에 놀란 어린 여동생이 찬열의 방문을 벌컥 열었다. 오빠 뭐 해?


다음날 아침에는 익숙하지 않은 번호로 문자가 와 있었다. 찬열의 입사 동기였던 여직원이다. 이름이 뭐더라? 아, 그래 석한별 씨. 아마 그녀의 이름이 특이하지 않았다면 찬열은 기억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찬열을 좋아했던 수 많은 여직원들 중 하나일 것이다. 또 그녀는, 찬열에게 손을 내밀어 주지 않은 수 많은 직원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괜찮아요? 너무 상심하지 말아요.]

하지만 찬열은 그들을 탓하지 않는다. 찬열은 그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그리고 또 그 다음날에는 김준면이 집 앞으로 찾아왔다. 어떻게 찬열의 소식이 준면의 귀 까지 흘러들어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는 찬열을 향해 물었다. 괜찮아? 하고.

괜찮아요? 괜찮아요? 괜찮아? 너 괜찮아? 찬열 씨 괜찮아요? 박찬열 씨. 박찬열 씨. 박찬열 씨. 



저녁노을이 붉게 내려앉자 문득 백현 생각이 났다. 언제 백현의 전화번호를 누르고 전화를 걸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신호음은 갔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이윽고 전화 너머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객님께서는 전화를 받을 수 없사오니-




담배를 손에 쥔 채 잠들었다가 불이 날 뻔했다. 거실에서 티비나 보고 있던 아버지가 찬열의 방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에 깜짝 놀라 방 안으로 들이닥쳤을 때, 찬열은 잠에서 깨어났다.

이런 씨발! 담배는 바깥에서 피우란 말이야! 너 때문에 집 다 태워먹게 생겼어!!


찬열은 귀를 틀어막았다. 

제발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세요. 제발, 제발, 아... 제발. 





*





나, 나, 나, 나는 이제 지쳤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어둠이 내려앉아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아무것도, 여기엔 아무것도 없어요. 이제 내 앞엔 아무것도 없어요.





*





이윽고 경수가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 것은 찬열이 정직 처분을 당한 지 일주일째 되는 날이었다. 찬열은 손목을 그었다고 했다. 물론 손목을 가로로 조금 긋는다고 죽진 않는다. 그래서 찬열도 죽지 않았다. 그는 살았다. 그의 육체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고, 그의 영혼은 이 세상을 등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정신은 온전치 못했던 모양이다. 들려오는 찬열의 소식으로는 부모님에 의해 정신과에 끌려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찬열을 다시 마주하게 된 것은 그 소식을 들은 지도 일주일이 넘게 흐른 시점이었다.



"걱정 끼쳐드려서 죄송해요. 그땐 조금 힘들었었나 봐요. 정말로 죽을 생각은 없었어요."

찬열은 맑고 해사했다. 경수는 그를 처음 만났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때와 같은 아무런 결점도 없는 웃음. 그를 괴롭혔던 피로와 우울증은 가시고 본래의 해맑은 모습으로 돌아간 듯했다. 그에겐 아무런 걱정도, 고난도 없어보였다.


"··· 죄송해요."

"팀장님이 왜요?"

경수가 사과하자 찬열이 물었다.


"저는 팀장인데... 우리 팀원이 힘들어하는 거 하나 제대로 봐 주지 못했어요."

"아, 그거. 그럴 수 있죠. 이해해요."

"..."

"저는 이해해요."

찬열이 웃었다. 걱정도, 고난도 없어 보이는 눈으로 웃었다. 하지만 달랐다. 경수는 그 웃음이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무언가. 

"저는 이해해요."

찬열이 한 번 더 웃으면서 말했다.


저는 이해해요. 저는 이해해요, 팀장님.








드디어 찬열 에피소드까지 왔습니다.

많진 않지만 하트 눌러주시고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드립니다. 항상 힘이 됩니다.

조금만 더 열심히 달려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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