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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한위스키 39

Kai x D.o.

BGM. Yiruma - The Days That'll Never Come

돌아오지 않을 날들




카디 독한위스키 39

W. 율이



눈앞엔 아무것도 없다. 새까만 칠흑만이 경수를 뒤덮고 있었다. 이윽고 들려오는 비명소리, 그리고 웅성거리는 소리. 경수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박찬열, 박찬열, 박찬열. 

찬열 씨?

박찬열 씨?

아냐, 너는 박찬열 씨가 아니야. 너는 누구야, 누구야?

경수는 우두커니 그곳에 계속 서 있었다.



삐용삐용, 경찰차와 구급차의 소리, 비켜주세요! 비켜주세요!! 물러나세요! 꺄악! 몰려든 시민들을 제지하는 소리, 외마디 비명소리, 놀라서 우는소리, 소리, 소리, 소리, 소리, 소음. 첫눈으로 새하얗게 뒤덮인 보도블록은 언제 눈이 왔던가 싶을 정도로 빨갛게 물들어있었다. 경수가 한 발자국씩 뒷걸음 치다 몰려든 인파에 부딪혔다. 

주저앉았다. 흐으으, 그리고 울었다. 누구야, 누구야, 누구야, 누구야. 하지만 알고 있었다. 저 흉측스러운 핏덩어리가 박찬열이라는 사실을.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 아, 아니, 아니야. 아, 아. 흐으으, 으아아아, 아아아, 아아아아, 아니야, 아니야!





*





[오늘 오후, 강남의 모 전자회사 건물 옥상에서 투신자살 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는 모 전자회사의 직원이었던 박모군으로 밝혀졌으며 현재 정직 상태였다고 전해집니다.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 중심지의 퇴근시간, 수많은 목격자가 있었는데요. 경찰은 박모군의 정확한 사인 등을 알아내기 위해 조사 중입니다.]





*





왜 너는 그렇게 가 버렸나. 결국 너는 그 정도밖에 안되는 사람이었나. 박찬열, 박찬열. 경수는 모를 것이다. 그를 잠식해 마침내 목숨까지 빼앗은 그의 지독한 우울을. 


경수야, 경수야. 투신자살했다는 그 청년 우리 전자 직원이었다며. 마케팅부. 너는 아니? 너는 그 애가 왜 죽었는지 아니? D그룹에 타격 있는 거 아니겠지? 그 청년 정직 처분 받았었다며. 그것 때문일까? 경수야, 너는 아니?

어머니가 물어왔다. 죽은 이유가 회사 때문이냐며, 우리에게, 아버지에게 타격 있는 것 아니냐며. 어머니, '그 청년'은 죽었어요. 그 청년이 죽은 건 우리 모두 때문이에요. 우리 모두 때문이에요. 우리 모두, 모두, 모두. 흐으으, 나 때문이에요. 박찬열이 죽은 건 나 때문일 거예요, 어머니. 내가 못나서 그런 거예요.





*





경수가 찬열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하얀 국화꽃이 아스라이 놓여있는 장례식장이었을 것이다. 박찬열, 박찬열. 그는 죽었다. 그는 죽었다, 죽었다. 죽지 않을 줄 알았는데 또다시 죽었다. 그에게 돌아올 날들은 이제 없다. 단 한 번도 그에게 너는 아침 해처럼 밝게 빛나던 사람이었다고 말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아, 아. 미안합니다. 박찬열 씨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내가 조금 더, 조금 더 신경 썼어야 하는데,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찬열의 여동생을 보았다. 아직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 빨간색 목도리를 절실히 손에 쥔 채 울고 있는 작은 여자아이. 오빠, 오빠. 미안해, 내가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피해서 미안해. 이제 안 그럴게. 내가 잘못했어. 돌아와. 응? 왜 이 속에서 웃고 있어. 내가 미안해!! 아악! 그리고 외마디 비명. 그리고 우는소리.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종인은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도경수를 보았다. 어딘가, 어디선가 본 적 있는 그림. 누군가 벼랑 끝에서 떨어지고, 눈물에 젖은 채 울고 있는 도경수. 칠흑 같은 어둠 사이, 도경수는 울고 있었다. 경수야, 울지 마. 경수야.  

종인은 멍하니 서서 찬열의 상가 앞 화환을 응시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예전같이 말하고 웃는다던 박찬열이, 도경수에게서 간간이 소식을 듣던 박찬열이, 도경수를 좋아하는 건 아니니 너무 자길 싫어하지 말라고 부탁하던 박찬열이, 박찬열이 죽었다고 했다. 도경수가 울었다. 그의 죽음에 애도했다. 하지만 왜. 도경수가 그렇게도 방문하며 그의 안부를 살폈는데. 괜찮다고 했는데,왜. 

뻔한 신파에 울고, 동물들이 학대당하는 모습에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왜 박찬열의 죽음에는 아무런 눈물도 나오지 않는가. 그것은 충격의 이유일 것이다. 

"찬열 씨가 왜 죽었을까. 응? 종인아, 왜 죽었을까. 결국 나 때문일까. 내가 박찬열 씨가 여전히 힘들었다는 걸 알아봐 주지 못해서 죽었을까. 그 사람은 여전히 힘들어하고 있는데, 또 내가 멋대로 판단해버려서 찬열 씨가 떠난 걸까. 응? 종인아, 말해봐. 종인아, 김종인."

도경수. 죄책감의 미로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도경수. 하지만 도경수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도경수가 박찬열을 위해 노력한 것을 알고 있다. 박찬열은 왜 도경수의 노력을 무시했는가. 박찬열은 제 곁을 지켜봐 준 도경수를, 가족을, 그리고 자신을 버려가면서까지 극단의 선택을 했어야 했는가. 이곳은 이렇게나 슬픈데, 이곳은 이렇게나 비통한데. 그곳은 어때. 박찬열 씨, 당신의 염원대로 그곳은 평온한가요.



그리고 김준면. 아득히 먼 곳에 서서 누군가 눈치챌까 조용히 흐느끼던 형. 그는 얼마나. 나는 도경수를 잃는 꿈만 꿔도 그를 애타게 찾기 바쁜데, 그는 얼마나 무너져내리는 기분일까. 종인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지독히도 괴로울 것이라는 것을 안다.


장례식장을 방문하는 수많은 찬열과 그의 가족의 지인들. 그들은 하나같이 박찬열만을 기억하며 이곳에 도착했을 것이다. 그들을 반기는 영정사진 속의 박찬열, 해맑게 웃고 있는 박찬열. 너는 아직도 여기에 웃고 있는데, 그 속은 얼마나 타들어 갔으면. 도경수는 그렇게 말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종인이 말했지만 도경수는 제 통곡 소리에 묻혀 듣지 못한 듯했다. 





*





박찬열에게 돌아올 날들이 사라진지 벌써 일주일이 넘게 흘렀다. 그의 유골은 많은 고인들이 잠들어있는 납골당에 보관되었다. 수많은 유리창 속의 재단들 중 가장 아래에 있는 찬열의 자리는 그가 이토록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했다. 많은 재단이 비어있는데도, D그룹에서 장례와 납골의 모든 비용을 지원해준다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자리는 사람의 손길이 쉽게 닿지 않는 가장 아래, 그곳이었다. 박찬열, 너는 그래서 이 삶이 비통하다고 여겼던 것인가.





*





더 이상 박찬열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사내 직원은 없었다. 아무도 그의 이야기를 꺼내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수많은 시간이 지난 후, 그는 가끔씩 그때 그랬었지 와 같은 안줏거리로 이들의 입에 오를 것이다. D그룹은 박찬열의 죽음으로 인한 이미지 손실을 막기 위해 유족들에게 장례와 납골의 모든 비용을 지원했다. 우스웠다. 돈. 경수가 그토록 편리하게 여기며 써왔던 돈이, 한 사람의 죽음을 이렇게나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박찬열은 이제 D그룹에 있어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다. 



경수는 제 방 책상 서랍에 모셔뒀던 지갑 두 개를 보았다. 하나는 깔끔하게 포장한 것, 하나는 제가 쓰려고 그냥 둔 것. 그래도 이거, 김종인한테 줘야 하는데. 

경수는 포장된 지갑이 든 종이가방을 들고 걸음을 옮겼다.



오피스텔의 밖은 하얗게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제는 박찬열의 죽음밖에 떠오르지 않는 새하얀 눈. 피로 범벅되어 형체가 보이지 않는 눈. 그 위에 까맣게 흩어져있던 박찬열. 오랜 시간이 지나도 눈길을 걸을 때면 찬열의 모습이 떠오를 것 같았다. 

경수는 차 위에 소복이 쌓인 눈을 닦아냈다. 박찬열 씨, 당신은 제 기억 속에서 이렇게 지워져갈 거예요. 하지만 저는 그 끔찍한 형체를 한 당신을 잊지 않을 거예요. 또다시 이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또다시 나의 우스운 판단으로 인한 다른 사람의 죽음을 보지 않기 위해서. 나는 당신의 그 모습을 잊지 않도록 노력할 거예요.





*





준면은 종인의 앞에서 한참을 들썩이고 있었다. 예전에 종인의 집에서 함께 마시려고 했던 와인. 이제서야 코르크 마개가 따져 그들의 앞에 놓여 있었다. 전엔 경수와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셨던 식탁. 종인의 앞엔 박찬열의 이름을 되뇌며 울고 있는 종인의 형이 있었다. 

"걔는 그럴 애가 아니었는데... 매일 행복해 보이기만 한 사람이었는데..."

"형 취했어."

"왤까? 새로 사귄 애인이 잘 안 해줘서? 어쩌다가 찬열이가 죽은 거야? 뭐가 걔를 그렇게 힘들게 한 거야. 왜 찬열이는 아무 말도 없이,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고 간 걸까."

"일어나. 데려다줄게."

"거기선 잘 있겠지? 그럼 나는 됐어. 걔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 거야. 그러면 됐지, 뭘..."

종인이 준면을 부축해 현관문을 열고 지하주차장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동안에도 그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은 듯했다.


"근데 종인아..."

"어?"

"너 아버지랑 한 약속. 그거 어떻게 됐어? 그땐 경황이 없어서 생각 못했었는데 도경수, 아버지랑 한 약속 때문에 만난 거잖아."

"아..."

"아버지가 너 춤출 수 있게 해주는 조건으로 도경수한테 접근해서 D그룹 정보 캐오라고 했다며."





*





"어..."

종인이 대답했다. 그렇다고. 도경수는 D그룹의 정보를 캐기 위해 접근했었던 거라고. 김종인이 대답했다. 경수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처럼 뒤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들고 왔던 종이 가방을 그대로 들고, 타고 왔던 차를 타고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김종인이 도경수의 차를 알아볼 거라거나 하는 것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저 비탄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랬다고. 그래서 그런 거였다고. 어쩌면 나를 좋아한다고 했던 것도 거짓말일 수도 있다고. 

김종인, 나는 너한테 이런 거나 선물하러 왔는데 너는 그랬다고. 하하, 너는 그랬었다고.

또다시 눈앞을 가리는 눈물은 우습게도 도경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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