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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한위스키 41

Kai x D.o.

카디 독한위스키 41

W. 율이



CHAPTER3. 너를 기억하는 자리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나른한 주말의 아침이었다. 아니, 조금 다르다면 연말과 크리스마스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12월의 중순을 조금 넘긴 시기였다는 것이다. 언젠가 도경수에게 말했던 적이 있다. 너와 함께하기만 해도 행복할 것 같다고.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크리스마스가 될 거라고. 그렇게 고대하던 크리스마스가 오기까지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다음날이면 가득 부푼 꿈을 안고 잠들었어야 할 크리스마스이브였고, 또 그 다음날이면 도경수와 함께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보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어쩌고 있는가. 김종인은 지금 어찌하고 있는가. 언젠가부터 매주 주말마다 도경수가 들리지 않는 이 적막한 집안은 보일러를 한 번도 끄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나 시렸다.


Jingle Bells Jingle Bells, Jingle All The Way. Oh What Fun It Is To Ride In A One-Horse Open Sleigh! 딸랑딸랑, 어서 오세요! 연말에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과, 친구와 함께 행복한 12월을 보내고 계시나요? 오늘은 내 곁에 있어준 사람들에게 소소한 선물 하나씩 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원 플러스 원, 할인 행사하고 있습니다! 어서 오세요! 그리고 이어지는 징글벨, 징글벨, 징글 올 더 웨이- 크리마스 캐롤. 그곳을 지나면 나오는, 도경수와 가끔 들렀던 카페 거리. 더워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시원한 망고 스무디를 시켜놓고 이야기했던 카페. 도경수는 망고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너무 달아서 싫다며. 도경수는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다음 골목에 있는 카페. 도경수와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 창밖의 눈을 보고 시간을 보냈던 카페. 도경수는 라떼를, 김종인은 핫초코를 마셨던 그 카페. 도경수가 나를 보며 예쁘게 웃었던 그 카페.

그런데 그것들 마저 허상이었다는 듯 도경수는 김종인의 앞에서 자취를 감췄다. 도경수를 마지막으로 봤던 그날 이후로 연락이 닿지 않았고, 혼자 초조해하며 기다려봐도 안심하란 듯 웃으며 다시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도경수가 곤란해할까 봐 언젠가부터 막무가내로 찾아가지 않았던 그의 회사에도 발악하며 찾아갔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도팀장님 그만두셨어요. 라는 카운터 직원의 대답뿐이었다. 그래서 알았다. 도경수가 김종인을 떠났다는 것을. 

언젠가 꾼 꿈을 떠올렸다. 누군가 벼랑 끝에서 떨어지고, 비를 맞으며 눈물에 젖어 울고 있는 도경수. 그리고 그대로 종인에게서 도망 쳐버린 도경수. 그러다 헐떡이며 잠에서 깬 후에 급히 도경수의 전화번호를 눌렀던 것을 기억한다. 

- 너는 나를 떠나지 않을 거지?

- 왜 그래. 김종인, 너 왜 그래. 악몽 꿨어? 진정해.

하지만 결국 떠나지 않겠다는 대답은 하지 않았던 도경수. 그가 떠난 이유 같은 건... 그러니까... 모르겠다. 어쩌면 도경수가 김종인을 좋아했다는 것은 저 혼자만의 착각이었다는 듯, 종인에게 아무런 변명도 남기지 않고 그렇게 자취를 감췄다. 

도경수는 오래전 호주로 유학을 가고 싶었던 적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랬던 것일까. 결국 도경수가 사랑해 마지않는 머나먼 그 이국의 땅을 밟은 것일까. 




왠지 그날따라 경수의 미소가 평소와는 달랐다고 느꼈다. 적어도 종인은- 

평소에 나를 향해 그렇게 미소 지어 줬던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경수의 미소가 예뻐서 보고만 있었다. 평생이 오늘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도경수의 그 미소가 김종인을 향한 마지막 호의였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종인은 아직도 마음이 저렸다. 종인은 경수를 원망했다. 그러나 싫어하진 않았다. 또 종인은 경수를 여전히 사랑한다. 그러나 그가 미치도록 미웠다. 도경수는 아직도 종인의 머릿속에 왜. 왜? 왜! 라는 질문만을 떠올리게 했다.

왜 나를 떠났을까.

왜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까?

왜 도경수는 결국 떠나버릴 거면서 그렇게 웃어준 거야!





*





납골당에서 박찬열의 여동생을 만났다. 잘 차려입은 교복 위에 단정히 둘러진 빨간 목도리는 박찬열의 마지막 선물이라고 했다. 

"오빠는 좋은 사람이었어요."

"..."

"아빠랑 엄마는 오빠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아빠는 오빠가 남들과는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안 뒤로, 그리고 엄마는 항상 바빴으니까. 그래서 오빠한테는 저 밖에 없었는데 오빠가 핏방울을 뚝뚝 흘리면서 방 안에 서있었던 걸 본 이후로 제가 오빠를 피했어요."

"..."

"오빠한테는 저 밖에 없었는데... 그래서 오빠가 지금 여기에 있는 걸까요?"

"네 잘못이 아니야."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오빠가 죽은 이유가 나 때문인 것 같아요. 너무 미안해서, 미안해서..."

"박찬열 씨가 너를 정말로 원망했다면 그 목도리를 선물했을까? 아니, 아닐걸."

"..."

"네 오빠는 여전히 널 사랑하고 있을 거야. 그러니까 네 잘못이 아니야."

그리고 종인은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하는 어린 소녀를 가만히 두고 봤다. 네 잘못이 아니야. 언젠가 도경수에게도 이렇게 말했던 것을 떠올리며.





*





크리스마스. 거리는 인파로 가득 찼을 것이다. 종인은 집 안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올해의 크리스마스는 무료하게, 그리고 비탄하게 지나갔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한 것 없이. 





*





종인은 회사를 그만뒀다. 아버지와 준면이 그를 말리려고 애썼지만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종인은 회사를 그만두고부터 도경수와 마지막으로 함께 있었던 카페에 무료하게 앉아 있는 것에 오랜 시간을 들였다. 그저 습관 같은 것이었다. 창밖을 보면 아직도 입김을 불며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경수와 종인도 저렇게 분주하게 살아갔었나. 그리고 언젠가부터 바닐라라떼도 아닌, 딸기 스무디도, 망고 스무디도, 핫초코도 아닌 카페라떼를 홀짝거리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아마 도경수가 아니었더라면 영원히 커피를 입에 대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추울 땐 라떼를 마신다던 도경수가, 김종인을 좋아한다고 어렵게 말하던 도경수가, 마지막으로 종인을 향해 웃어줬던 날 손에 쥐고 있었던 것이 이 라떼였기 때문일까. 

가끔은 카페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평소엔 잘 읽지도 않는 책을 읽게 된 것도 도경수 때문일 것이다. 테스게리첸의 '외과의사'. 도경수가 읽었던 책이다. 생각보다 메디컬 범죄 스릴러의 장르는 재미있었다. 그 뒤를 잇는 테스게리첸의 후속작들도 여러 개 읽었다. 

또 가끔은 카페에 혼자 앉아있으면 다가와 말이라도 붙여보려고 애쓰는 여성들의 눈치도 받았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엔 신경 쓰지 않았다. 


카페를 나서 거리를 걸으면 차가운 바람이 종인의 연한 갈색빛 머리칼을 세차게 흩뜨렸다. 그러고 보면 도경수와 반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했음에도 불구하고 같이 맞춘 커플 아이템 같은 것도 하나도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도경수가 떠나기 전에 억지로라도 맞춰서 가지고 있었어야 하는 건데. 

종인은 언제나 생각했다. 도경수가 자신을 떠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하지만 정말로, 며칠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나도 모르겠다. 그저, 도경수가 그만큼 종인을 사랑하지 않아서, 종인을 쉽게 떠날 만큼 깊게 마음을 주지 않아서 일 것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착각이었던 거야. 도경수가 나를 좋아한다고 믿었던 것도 나만의 착각이었던 거야. 그러다가도 가슴에 묵직이 통증이 올 때면 또 다른 생각을 했다. 아니, 어쩌면 아버지에게 억지로 해외에 끌려간 건 아닐까.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보내진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왜, 왜 한 번도 연락을 하지 않는 걸까. 아버지에게 나와의 사이를 확실히 들켜 통신망도 다 끊기고 지하 단칸방에 감금당한 건 아닐까. 언젠가 구하러 올 나를 끊임없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빨리 도경수를 구하러 가야 하는데. 그런데 그 생각이 헛되었다는 것을 자각하면, 또 마음이 그렇게 저려왔다. 

이별이 이런 것이었나. 이렇게 아프고 힘든 것이었나. 울었다. 경수가 바란 것처럼 웃음을 잃고 그렇게 울었다.





*





"왜 그만두셨어요?"

백현이 아쉬운 표정으로 물어왔다. 

"··· 도경수가 떠났어요."

"네?"

"그래서 모든 게 무너진 기분이었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 그래서..."

"..."

"그래서 그만뒀어요."

종인이 얼굴을 두 손으로 쓸어내렸다. 그러고 보면 이것도 도경수가 자주 하던 행동인데. 종인은 표정을 감춘 두 손 사이로 쓰게 웃었다. 


"언젠가 찬열이가 그랬어요."

말없이 종인을 쳐다보기만 하던 백현이 말문을 뗐다. 찬열이가- 하고. 둘이 그토록 친밀한 사이였던가. 하지만 그게 이제 무슨 상관인가.


"저한테 관심 있다고. 만나보자고."

"네?"

"그래서 거기에 응했어요."

"..."

"그런데 아무리 박찬열을 만나도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알았어요. 난 이 사람을 사랑할 수 없구나. 헤어지자고 했어요. 찬열이도 알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걔가 얼마 안 있고 자살시도를 했다는 건 며칠 전에 들었어요."

"그게 무슨..."

"헤어지고는 연락을 한 번도 안 했어요. 어떻게 지내는지도 몰랐어요. 그냥, 나는 나대로. 박찬열은 박찬열대로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찬열이가 죽었대요. 나 때문인 것 같아서 울었어요. 찬열이도 김팀장님이 경수를 사랑했던 것처럼 나를 사랑했을 텐데, 내가 상처 준 것 같아서..."

"..."

"그게 너무 무섭고 미안했어요. 그런데 만약에 찬열이가 죽기 전으로, 내가 이별 통보를 하기 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저는 또다시 헤어지자고 했을 것 같아요."

"..."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그래서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그래서 경수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떠났다고, 그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아니요. 제가 경수를 잘 알진 못하지만, 도경수는 저랑은 다르게 팀장님 좋아했던 것 같아요. 제가 느끼기에는 그랬어요."

"..."

"그러니까 돌아올 거라고. 저랑은 다르게 해줄 수 있는 게 남아있을 거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백현이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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