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독한위스키 외전 : 너의 의미 1

Kai x D.o.

카디 독한위스키 외전 : 너의 의미

W. 율이



# 1

경수가 따사롭게 새어들어오는 햇살에 눈을 뜬 것은 점심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혼자 머물기엔 너무나도 넓은 호텔방의 킹사이즈 침대 위엔 여전히 도경수 저 혼자뿐이었다. 어젠 김종인을 만나는 꿈을 꾸었다. 시드니의 넓은 땅에서 김종인이 나를 향해 뛰어오던 꿈. 사실 그것이 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현실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여전히 이곳에 혼자 누워있던 걸 보면 아무래도 꿈이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생각하니 비탄한 실소가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이러다가 미쳐가는 게 아닐까. 고작 반년 정도 만난 김종인 때문에 내가 미친 게 아닐까. 하지만 그것은 제 침실로 들어온 '김종인'에 의해 깨끗이 지워지고 말았다. 

"내가 닭볶음탕 했어! 너 해주려고 아침부터 닭도 사 오고, 어떻게 만드는지도 보고."

김종인, 제 눈앞에 있는 것은 환상이 아닌 진짜 김종인이었다. 아, 꿈이 아니었구나. 어젯밤 정말로 나를 찾아와준 김종인이 환상이 아니었구나. 너는 나를 정말로 찾아와 주었구나.

"뭐 해? 빨리 나와."

멍하니 종인을 응시하고 있던 경수를 보며 종인이 예쁘게 미소 지었다.





*





당분간 한국에는 돌아가지 않을 예정이었다. 김종인만 그러할 수 있다면. 한국으로 돌아가 봤자 저를 꾸준히 감시하는 아버지밖에 더 있나 싶었다. 아무런 독시도, 아버지와의 통신망도 그곳보다 적은 이곳에서 종인과 함께할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종인이었다.

"나 한국에 안 돌아갈 거야. 도경수가 여기 있다면 언제까지고 너랑 같이 있을래."

경수가 종인을 말없이 쳐다보자 종인이 한마디 더 덧붙였다.

"그래도 돼?"

"··· 응. 나는... 네가 꼭 그랬으면 좋겠어."

경수가 대답하자 종인이 환하게 웃었다.

"또 도망치지 않을 거지?"

"응."

그래서 경수도 웃었다.



종인이 호주에 온 것은 한 달전의 일이라고 했다. 회사도 그만두고 경수의 흔적을 찾아 매일같이 이리저리 돌아다녔는데 그것도 지쳐서 결국에야 제 발로 경수를 찾아 나선 것이라고 했다. 왜 저를 떠난 건지, 왜 아무런 말도, 기척도 없었는지 수없이 원망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쁘게 웃던, 아니, 사실은 웃지 않아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예뻤던 도경수의 모습을 잊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한국에 있을 때에도 끈질기게 경수를 찾았던 종인이었다. 아무리 싫다 해도 자석처럼 따라붙었던 종인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도경수는 내 것이니까. 경수의 부끄러워 붉어진 귀가 귀엽다는 듯 웃으며 종인은 이렇게 말했다. 





*





언제나 말했지만 시드니에서의 삶은 한국에서보다 더 평온했다. 일을 하지 않았던 탓일까. 그땐 자의적으로 야근과 주말 출근까지 꼬박꼬박 하면서 일하는 것에 매달렸었는데 지금은 그러지 않아서일까. 덕분에 모든 시간을 종인과 함께할 수 있었다. 종인과 먹고, 대화하고, 걷고, 티비를 보고, 자고. 모든 것을 김종인이라는 사람과 함께했다. 가끔은 여전한 의문이 들었다. 언제부터 김종인을 이렇게 사랑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김종인, 예전에 네가 나를 좋아하게 된 이유를 모르겠어서 날 쫓아다니면서 찾고 있었다고 했잖아."

"응."

"그 이유 찾았어?"

"··· 아니."

"아니?"

"모르겠어, 아직도. 그리고 평생 모를 것 같아."

"··· 왜?"

"그냥... 나는 그냥 도경수가 좋고, 어쩌다가 너를 좋아하게 된 건지 모를 정도로 자연스럽게 끌렸고, 그렇게 사랑하게 됐으니까. 정말로 그냥. 이유 같은 거... 모르겠어. 아무리 찾으려고 노력해봐도 모르겠어. 나는 그냥 도경수가 좋아."

종인이 대답하자 경수가 잠깐 웃었다.

"나도 그래."







# 2

경수를 다시 만나고 난 후로부터는 하루하루가 무척이나 빠르게 흘러갔다. 벌써 이곳에 온 지도 석 달이 되었고 도경수를 만난 지도 두 달이 되었다. 어느덧 4월이었다. 도경수를 처음 만났을 때가 작년 4월이었는데. 그때 생각을 하면 아직도 웃음이 나왔다. 술에 취해 혀가 짧아졌던 도경수, 제 가방을 처음 만난 사람한테 떠맡겨버린 도경수. 그때만 해도 인연이 이렇게 발전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저 도경수는 김종인의 장난감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었으니까. 사람 일은 정말 모르는 거구나. 

종인이 회사를 그만뒀을 때 아버지가 말했다. 너 이렇게 그만두면 뭐 춤출 수 있게 해준다고 했던 조건 같은 건 무효가 되는 것이라고. 하지만 뭐, 상관없었다. 도경수가 제 곁에 없는데 춤은 무엇이며, 삶의 의미는 또 무엇이냐며. 이제는 그런 것 따윈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듯. 오직 도경수만이 제 삶의 의미라는 듯.


그리고 가끔은 죽은 찬열을 떠올렸다.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경수는 찬열의 죽음에 연연하고 있는 것을 안다. 경수는 여전히 찬열의 죽음이 제 탓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찬열의 여동생도, 변백현도, 그리고 도경수도 다 그의 죽음이 제 탓이라고 했었다. 박찬열은 이런 것을 원했던 것일까. 하지만 아니라고 생각했다. 박찬열은 이런 것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덧없이 떠난 것처럼, 남겨진 사람들도 덧없이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종인이 그를 잘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종인에게 안심하라는 듯 웃으며 자신을 너무 미워하진 말아달라며 부탁했던 박찬열이라면 왠지 그랬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저를 미워하지 말아달라며, 원망하지 말아달라며, 그리고 저도 당신들을 원망하지 않는다며, 그렇게 떠났을 것이라고.




며칠 전 경수가 말했다. 아직도 나는 박찬열 씨에게 미안하다며, 그가 죽은 이후로 단 한 번밖에 찾아가보지 못한 것도 미안하다며, 그렇게 내가 점차 당신을 잊고 너와 웃으며 지내는 것이 옳은 일일까? 하고. 그에 종인은 언제나처럼 경수를 위로했다.

- 네 잘못이 아니야. 박찬열 씨도 그렇게 생각할 거야.





*





호주는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찾아왔다. 한국은 지금쯤 벚꽃이 만개했을 텐데. 마치 시간을 거꾸로 달리고 있는 느낌이다. 추운 겨울을 피해 이곳에 왔는데 이곳은 이제 겨울을 준비한다. 

경수는 문득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곳에서 머문지도 반년이 다 되어간다. 시간은 어찌도 이렇게 빠르게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경수가 시드니에 머무는 동안 어머니는 종종 연락을 해왔고, 한 번은 경수를 보러 온 적도 있었다. 덕분에 종인과 잠시 떨어져 있었어야 했지만. 그리고 경수가 이곳에 머무는 동안 시간의 흐름에 맞춰 바뀐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버지의 소식이었다. 어머니를 통해 아버지의 소식을 간간이 전해 들었었는데 원래부터 정정하지 못하던 건강이 좀 더 쇠약해지셨다는 것이었다. 언제까지 호주에서 머물겠다고는 생각해본 적 없지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저를 그렇게도 옭아매고 자유를 빼앗은 사람인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이기 때문에.





*





경수는 또다시 이륙하는 비행기를 보며 어릴 적의 일을 떠올렸다. 한 번도 몸소 비행기를 태워준 적 없었던 아버지, 그토록 싫었던 영어를 외우게 하고, 피아노를 치게 하고, 바이올린을 켜게 했던 아버지. 그것들을 하지 않으면 무섭게 혼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떠올렸다. 어린 경수는 세상의 모든 다정한 아버지들을 보며 동경했다. 저들은 저렇게나 따스한데, 왜 나에게는 그런 아버지가 없는 걸까. 

경수는 아버지를 존경했지만, 사랑하진 않았다. 아버지가 경수를 진정으로 사랑해주지 않은 것처럼. 하지만 그것또한 경수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경수의 부모는, 그의 아버지는 경수를 누구보다도 사랑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쇠약해진 아버지를 직접 뵙고 난 후였다.


- 경수야, 내가 약해지면 사람들은 내 자리를 차지하려고 다툴 거야. 내가 약해지면 너 또한 약해지고, 네가 버티지 못하면 너의 자리는 사라질 거다. 내가 없더라도 네 자리를 지켜주고 싶었던 거야. 너를 내 틀에 가두며 제재했던 것은 네가 다른 사람들에게 잡혀먹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랬던 거였다. 그런데 너는 그 자리를 지키는 것보다, 네 자유를 찾는 걸 더 염원하고 있다는 것을 얼마 전에 깨달았어. 네가 시드니에 있는 동안 내가 지켜보지 않은 줄 알았지. 하지만 네 소식, 하나도 빠짐없이 다 듣고 있었다. 네가 김종인을 만났다는 것도, 그 애랑 함께 지내고 있다는 것도. 그런데 그 얼굴이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는 것도. 

그래, 앞으로 내 틀에 너를 가두려 하지 않을 거다. 경수야, 기업은 내가 지킬 테니 너는 네 행복을 지키거라. 





*





한국에 돌아와서 아버지를 뵙고 난 후에 가장 먼저 한 일은 찬열이 머문 곳에 찾아가는 일이었다. 수많은 재단들 중 가장 아래층에 있는 찬열의 자리. 재단의 유리창 너머에는 찬열의 여동생이 두고 간 듯한 손편지 몇 개와 예쁘게 인화된 찬열과 여동생의 모습이 담긴 작은 액자 두 개가 놓여있었다.

"찬열 씨, 잘 지내세요?"

경수가 찬열의 자리를 응시하며 물었다. 당연한 것이었지만 아무런 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종인은 경수가 떠난 후에 이곳에 몇 번 들린 듯했다. 자연스레 앞서 걸어 이곳을 찾은 것을 보면. 


경수가 차에 쌓인 눈을 닦으며 다짐했던 것처럼, 그는 찬열의 모든 기억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찬열의 그 죽은 모습을 기억하려고 했고, 경수를 휘몰아치는 죄책감을 잊지 않으려고 했다. 그것이 죽은 찬열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호의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찬열이 경수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 항상 도대리님은 괜찮다고만 하시고, 힘드신 일 있으면 좀 말도 하시고 하세요. 항상 혼자 다 짊어지시는 것 같아서 걱정이에요.

그렇게 경수를 위로하려고 했으면서, 정작 본인은 혼자 다 짊어진 것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아렸다. 

제가 박찬열 씨한테 기대지 못했던 것처럼, 찬열 씨도 저에게 기대지 못했던 이유가 있었을까요. 만약 그랬다면 제가 그토록 찬열 씨를 찾았던 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던 걸까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박찬열 씨의 마음을. 하지만 그 어떤 것이든 제가 당신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여전합니다. 저는 앞으로도 당신을 잊지 않을 거고, 그 죄책감을 지우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이 세상에 없다고 해도 당신을 기억하는 사람이 이곳에 남아있다는 것을 알아주세요. 그러니까 찬열 씨도 그곳에선 평안하길 바랍니다. 

"찬열 씨, 잘 지내시길 바라요."













율이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

댓글을 사용하지 않는 블로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