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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 다 카포(da capo) 01

Kai x D.o.



# Prologue


피아노 건반이 하나둘 눌리면 아름다운 선율이 적막을 가득 메운다.

아- 종인아. 나는 네가 그 선율에 찬란하게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내 손짓에 이 적막을 가득 메우는 것은 너였고, 이윽고 내 모든 영혼을 헤집는 것도 너였다. 결국 이 건반을 두드린 것은 내가 아닌 너였다고, 결국 너를 연주한 사람이 내가 아니라, 나를 연주한 사람이 너였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마침내 나는 나를 가득 메웠던 너를 찾을 것이다. 그러면 너는 여전히 웃으며 나를 맞이할까. 사실은, 사실은 그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찾을 것이다. 

종인아, 나는 결국 너를 지독히도 헤매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되었다.





[카디] 다 카포(da capo) 01

W. 율이



CHAPTER 1. 필연(必然)


도경수.

눈은 동그랗고 입술은 통통한, 눈썹은 짙지만 앞머리에 가려서 다 보이지 않는, 마치 고난을 이겨내며 찬란하게 성장하던 소년만화의 주인공처럼 생긴 도경수는 봄방학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있었다. 다음 날이면 고등학교 2학년생이 되는 첫날이다. 경수가 속한 단톡방은 여느 때와 달리 시끄럽게 울려대고 있었다. 아 개학 존나 싫다. 라든지, 내일 학교 폭발하면 좋겠다. 라는 시시콜콜한 이야깃거리들로 말이다. 

경수는 아마 반에서 유일하게 예체능을 전공하는 학생일 것이다. 그것도 피아노. 입학 첫날을 제외하곤 누구나가 싫다며 야유해대는 야자시간에 저 홀로 하교해 곧바로 학원에 갈 것이고, 남은 친구들은 도경수를 부러운 듯 쳐다볼 것이다. 물론 그 눈빛을 보내는 저들에게 정작 야자를 빼고 매일매일 학원에 다니라고 하면 그제서야 차라리 야자가 낫다고 할 놈들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경수는 교사들에게도 꽤 예쁨 받았다. 귀엽고 반듯하게 생긴 외모 때문인지, 너무 요란하지도 않으면서 동급생들과 별 충돌 없이 대체로 잘 어울리는 데다가 성실하고, 성적도 나쁘지 않은 편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도경수가 교무실에 들릴 때면 그를 칭찬하기 바쁜 교사들의 모습을 흔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경수야, 네 담임선생님 누구라더니?"

"··· 글쎄요."

내일 필요할 교과서를 정리하고 있던 경수에게 그의 어머니가 물었다. 아마 경수가 며칠 전 받은 반 배정표엔 같은 반 친구들의 명단과 담임선생님의 성함까지 나열되어있었을 테지만 딱히 확인하진 않았다. 그저 도경수 본인이 2학년 1반에 속하게 되었다는 사실만을 인지했을 뿐이다. 어찌 됐든 반을 잘 찾아가는 데 필요한 정보는 그것뿐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도경수는 언제나 그런 사람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리고 지금까지도. 남이 본인을 어떻게 생각하든 그런 것은 아무런 상관없다. 또한 남이 무엇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같은 반 친구가 어떤 예쁜 여자애와 어떻게 사귀게 되었는지, 또 사회에 어떠한 이슈 거리가 떠올랐는지, 이번 국회의원은 누가 당선됐는지··· 그런 것 따윈 도경수에게 아무런 관련도, 관심도 없다는 이야기이다. 

누군가 도경수 너는 어떤 사람인가. 하고 물어 경수의 대답을 듣게 된 사람이 있다면, 아마 그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도경수의 대답에는 오로지 저의 이야기나 있을 뿐, 제 주변 이야기 따윈 일체 하지 않았다고, 도경수의 삶의 주체는 오롯이 도경수 저 뿐인 것 같다며,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너 내일도 학원 가냐?]

그런 도경수에게도 소중하다고 여기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애들'이었을 것이다. 경수는 딸깍- 하고 울린 휴대폰 화면 속 변백현 이름 석 자 적힌 것을 확인하곤 빠르게 답장했다.

[내일은 야자.]

[우린 내일 야자안한다. 그리고 나 미나랑 같은반됐음]

[그래? 잘 됐네.]


변백현. 그를 만난 것은 오래전의 일이었다. 다른 것은 기억나지도 않는, 오로지 변백현과 만난 그날만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아주 어릴 적의 이야기이다. 지금 경수의 모습을 떠올린다면 의외라고 여길 정도로 어린 경수는 키가 컸다. 피부가 유난히 뽀얀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다를 것이 없었으나 또래보다 큰 키를 가진 것은 경수가 동네 아이들에게 괴롭힘당한다거나 무리에서 혼자 동떨어졌던 일이 없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했다. 그 큰 키도 딱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의 일이지만. 뭐 어쨌든 그에 반해 매번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흙장난이나 치던 작은 소년이 경수에게 모래 한 움큼을 집어 던진 것은 꽤 충격받았던 기억이었다. 하지만 경수는 그 애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이해하고 있었다. 경수는 여전히 그때 함께 놀던 아이들이 그 애의 이름을 가지고 키득댔던 것을 기억한다. 

- 쟤 이름이 변백현이래. 변백현. 변이 뭐냐? 똥 아냐? 그럼 똥백현이네? 똥백현?

그리고 그에 백현이 제 쪽으로 걸어와 모래를 뿌릴 때까지 경수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고 있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백현이 경수가 말한 것으로 오인해 그랬다는 것을 알았지만, 당시 경수는 큰 눈을 깜빡이며 백현을 멀뚱히 쳐다봤을 뿐이었다. 

- 그럼 너는 똥경수다 이 머저리야!

경수는 이제 그때를 생각하면 문득 웃음이 터져 나오곤 했다. 그 뒤로 백현과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잘 생각나진 않지만, 초등학교 중학교를 같이 다니면서 지금까지 연락을 유지하게 된 것이다. 




*




첫날이었다. 2학년이 되어 등교하게 된 첫날. 경수는 여느 때처럼 7시쯤 집을 나섰다. 등교 시간은 7시 50분까지였지만 언제나 이 시간에 맞춰 나온다. 학교는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한다. 그리고 반에 도착했을 땐 언제나처럼 혼자일 것이다. 작년에도 그랬으니까, 이 반도 별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약간 풀릴 듯 말 듯 한 운동화 끈을 다시 묶었다. 


경수가 반에 도착했을 때 잠겼을 거라 생각했던 교실 자물쇠가 걸려있지 않았던 것은 약간 의외의 일이었다. 경수가 문을 젖히고 교실로 들어서자마자 본 것은 맨 뒤쪽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는 남자애였다. 반에서 제일 먼저 등교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리고 한참을 보지 못했던 소년의 얼굴을 제대로 보게 된 것은 점심시간이었다.

"얼씨구? 내 자던 새끼가 밥 먹을 때는 어떻게 알아서 일어나냐?"

"밥은 먹어야지."

"맞다, 김종인. 애들이랑 오늘 야자 째고 피시방 갈 건데 같이 가자."

"······."

"왜 또 뜸 들이냐? 너 또 빼려고 그러지."

"니들끼리 가."

"야자 못해서 죽은 귀신 붙었지. 아주 그냥 한 번을 같이 논 적이 없어요. 그래 됐다."


김종인. 소년은 김종인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경수와는 상반되는 약간 까무잡잡한 피부에 큰 키를 가졌다. 그러고 보면 어렴풋이 김종인이라는 이름을 들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자다 깨서 그런 건지 눈이 퉁퉁 부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부티나는 외양은, 주변 상황에 딱히 관심주지 않는 경수조차 여학생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했던 김종인이라는 이름을 한 번쯤 들을 수 있게 만든 듯했다. 어쨌든 도경수가 아는 것은 김종인이란 애가 그렇게나 잘생겼다- 라는 것뿐이지만.

"··· 뭘 봐?"

경수가 멍하니 김종인을 쳐다보자 그가 여전히 졸린 눈으로 경수를 마주 보며 낮게 읊조렸다. 그 내용은 아주 직설적이고 시비적이었으나 말투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김종인도, 도경수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딱히 특별하지 않은 김종인과의 첫 대면이었다.




*




개학 첫날은 무료하게 앉아서 야자를 했다. 김종인이 어울리던 무리는 예고한 대로 전부 도망쳐 반이 꽤 소란스럽게 뒤집혔으나 김종인은 여전히 책상과 한 몸이 된 듯 보였다. 아무래도 야자 못 해서 죽은 귀신이 아니라 잠을 못 자서 죽은 귀신이 붙은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경수는 다시 풀던 문제집으로 관심을 돌렸다. 경수는 2학년이 되어 문과를 선택했다. 수학은 어느 정도 했지만 과학이 끔찍할 정도로 싫었던 탓이었다. 그나마도 생물이나 지구과학 같은 건 괜찮다. 경수를 괴롭히는 것은 물리와 화학이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문과로 진학한 후 딱 하나 배우게 된 과학 과목이 하필 물리였다. 모의고사나 수능엔 하지 않아도 지장이 없을 과목이었지만 그래도 내신은 아니다. 그래서 첫날부터 이 지긋지긋한 문제집을 펼쳐 든 것이었다. 




*




그리고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여전히 김종인은 제일 먼저 등교해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저럴 거면 뭐하러 아침 일찍 등교하는 건지 경수로썬 이해할 수 없었지만 딱히 신경 쓰진 않았다. 우연히도 제비뽑기로 뽑은 자리가 하필 김종인의 옆자리였다는 것만 빼면. 경수는 제 옆에서 또 잠에 빠져든 김종인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 아, 같이 앉은 애가 자면 나도 졸린단 말이야. 


경수는 예상한 대로 야자를 빼는 데에 성공했다. 줄곧 해왔던 피아노라 야자를 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가끔은 경수가 피아노로 입시 준비를 한다고 소개하면 친구들은 의외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하긴 제가 생각해도 저랑 피아노랑은 약간 안 어울린다고 생각은 했지만, 실력은 나름 출중한 편이었다. 음악 수행평가를 할 땐 언제나 피아노를 쳤고, 가끔 학교 축제 때에도 실력을 선보이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박수는 기분을 좋게 만들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큰 희열을 느낀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평가 때나 축제 때 피아노를 쳤던 것은 그냥 어디서든 피아노 치는 게 좋아서였을 것이다. 예체능 계열이 돈이 많이 드는 만큼 이것도 집안 재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지만 나름 부유하게 자라온 경수로써는 남부럽지 않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부모의 열성적인 학구열도 한몫했지만. 

그리고 학원까지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가는 어둑어둑한 골목에서 김종인을 마주한 것은 또다시 일어난 아주 우연의 일이었다. 

경수는 어쩐지 그날따라 새로운 골목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 비탈지고 좁은 골목으로 들어선 것이었는데 조금 걷자마자 약간 후회하기 시작했다. 이 동네에 이렇게 후진 곳이 있었나 생각이 들 정도로 주황 불빛을 띠는 가로등은 애처롭게 깜빡였고, 달동네에나 있을 것 같은 다 무너져가는 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골목. 재건축도 하지 않는 듯한, 사회에서 버려진 것 같은 건물들. 어둑한 저녁 그 골목길을 들어서는 누구라도 두려운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이상할 것 같은 곳. 그래서 경수는 더욱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마주친 것이다. 무너질 것 같던 담벼락 앞에서 피우던 담배를 끄고 삐거덕 거리는 철문 안으로 들어가려던 김종인을.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는 것을 경수도, 그리고 김종인도 알았다. 잠깐 김종인이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머뭇거리던 사이 경수가 딱히 관심 없다는 듯 발걸음을 옮긴 것은 눈이 마주치고 난 다음의 일이었다.









이번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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