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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카포(da capo) 02

Kai x D.o.

[카디] 다 카포(da capo) 02

W. 율이



김종인.

종인은 학교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짧은 방학이 끝나면 단기간으로 구했던 아르바이트도 그만둬야한다. 예체능 전형의 학생과 같은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것이 아닌 이상 교사는 야자를 쉽게 빼주지도 않는다. 제 친구들처럼 그냥 도망가버리면 또 모를까. 학교에서 사고 치는 것은 도움 되는 것은 없어도 나름 일탈의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종인이 제 친구들을 따라가지 않은 것은 그들과 피시방이나 노래방에 탕진할 돈 따윈 없었기 때문이다. 

가난은 아주 어릴 적부터 종인과 함께였다. 김종인은 18년 인생을 보내면서 단 한 번도 부유했던 적이 없었다. 부모는 제 아이의 안정적인 삶을 보장해주지도 못하면서 왜 무책임하게 싸질러 놓은 건지 통 이해할 수 없다. 또 세상은 우습게도 돈이 전부다. 돈이 없다면 기술이라도 배워서 먹고 살아야 하고, 그런 것조차 없다면 생 노동이라도 해서 평생을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어쨌든 종인은 기술을 배울 돈조차 없었기 때문에 방학만 되면 아르바이트 구하기 바빴다. 그것마저도 미성년자는 쉽게 써 주지 않는 곳이 허다했지만. 어쨌든 이렇게 부모 탓, 세상 탓 다 하면서도 이제껏 살아왔다. 가난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부티나는 외양 때문일까, 아니면 가난이라는 불우한 가정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꽤 쾌활한 성격 때문일까, 그럭저럭 친구도 잘 사귀어가며 큰 장애 없이 살아왔다. 물론 종인의 낙망적인 가정사를 밝혀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 종인의 눈앞에 있는 도경수는 종인의 다 무너져가는 집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그의 가난을 처음 들여다본 사람일 것이다. 종인은 야자를 마친 후 제집 담벼락 앞에서 담배를 피웠다. 어차피 가난이 지긋지긋해서 10년 전 집 나간 어머니는 당연하게도 마주칠 일 없을 것이고, 공사장 노동 후 술 한잔하고 있을 아버지도 아직 돌아오시지 않았다. 어디서 귀신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어둑한 골목길로 지나다니는 사람 또한 없었기 때문에 집 앞 담벼락은 종인이 담배 피우기 적절한 장소로 낙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 곳에서 동그란 눈동자로 종인을 잠깐 올려다 본 도경수는, 분명 학교에서 몇 번 마주쳤던 것 같은 얼굴이었다. 어쨌든 종인이 집 안으로 들어가길 잠시 머뭇거리던 사이 도경수는 관심 없다는 듯 종인을 무심히 지나쳐갔다. 약간 빠른 걸음으로. 




*




그리고 반에서 두 번째로 등교해 제 옆자리에 앉는 경수를 본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너 뭐야?"

종인이 약간 흠칫하며 말하자 도경수가 뭐가? 라는 눈빛으로 종인을 응시했다.

"너 내 옆자리야?"

"··· 그런데?"

"······."

종인이 입을 다물자 대화는 맥없이 끊어졌다. 


그리고 종인은 수업시간 내내 언제나처럼 잠을 보충했다. 딱히 야간 아르바이트를 뛴다거나 밤새 공부를 한다거나 해서 수면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다만 잠이 많을 뿐. 그런 종인이 누구보다 일찍 등교하는 것은 그저 아무도 없는 썰렁한 집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집을 나와서도 딱히 갈 곳이 없었던 탓에 일찍이 등교했던 것이다. 그리고 점심 종소리만 귀신같이 감별해 깨어나던 종인이 경수를 다시 불러세운 것은 점심시간이었다.

"··· 야."

"나?"

점심시간을 고대하던 수많은 아이들 사이 조그만 뒤통수를 향해 소리 냈을 때 정확히 도경수가 종인을 뒤돌아보며 대답했다. 하긴 그럴 게 당연한 것도 김종인이 도경수의 어깨에 손을 얹었기 때문이다.

"응, 도경수 너."

"왜?"

"그러니까···."

"뭐."

"너만 알고 있으라고···."

"뭘?"

"봤잖아. 우리 집. 그럼 내 형편이 어떤지도 알 거 아니야."

"아···."

"······."

"근데 난 그런 거 딱히 관심 없어. 떠벌리고 다닐 생각도 없고. 내 일도 아니고, 친한 사이도 아닌데 뭐하러."

그리고 경수가 김종인이 조금 실망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본 건 이때였을 것이다. 하지만 왜? 그의 뜻대로 해주겠다고 했는데 대체 왜? 그러나 그 의문점도 잠시였다. 김종인이 기뻐하면 어떠하고 또 실망하면 어떠하겠냐는 말이다. 김종인이 도경수 제 자신도 아닌데.




*




그리고 8교시 수업 후 운동장을 가로질러 하교하는 도경수를 느긋이 붙잡은 것은 다름 아닌 종인이었다. 

"너 어디 가?"

"왜 따라와?"

"말 돌리지 말고, 어디 가냐고."

경수가 귀찮은 듯 눈살을 찌푸리며 종인에게 물었지만 딱히 그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았다. 사실 종인이 아까 전 경수와의 대화에서 실망한 표정을 지었던 이유는 여기서 밝혀진다. 도경수가 제 형편을 눈치챘을 때, 그에 의해 남들에게 제 가난이 알려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도경수가 그 가난과 가난 때문에 존재할 고민 따위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 또는 내면의 깊은 것을 털어놓을 수 있을지도 모르게 된 사람인데, 정작 도경수는 그것을 본인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고 신경도 쓰지 않을 정도의 사유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무심했던 반응과 종인의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애정결핍과 같은 집착이 어설프게 맞물려 이 자리에서, 도경수를 향한 관심으로 자연스럽게 일어난 것이다.

"학원."

"너 뭐 하는데? 음악?"

"··· 피아노."

"와, 되게 잘 어울린다."

종인의 말에 도경수가 약간 놀란 듯한 표정으로 종인을 쳐다봤다. 어제도, 오늘도 그랬지만 도경수의 이 동그란 눈은 어릴 적 친구의 집에서 봤던 강아지를 연상시킨다. 

"잘 어울린다고."

"······."

"야! 도경수!"

그리고 그때, 누군가 큰 소리로 도경수의 이름을 외쳤다. 소리의 출발점에는 처음 보는 여자애가 서 있었다. 종인과 경수가 입고 있는 것과는 다른 학교 체육복을 입고 이쪽으로 걸어오는 여자애. 도경수처럼 동글동글하고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애. 

"여기 웬일이야?"

경수가 또다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체육복 위 '김미나'라고 적혀있는 여자애가 도경수에게 종이가방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오빠 놈 심부름. 이거 가져다 달래. 지나가는 길에 너 보이길래.' 하고. 경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김미나는 다시 손을 흔들어가며 멀어졌다. 큰 소리로 '나중에 백현이랑 보자!' 하고 외치면서.

"누구? 너 쟤 좋아해?"

그새 궁금증을 참지 못했던 종인이 물었다.

"뭐래. 사촌이야."

"아~"

경수가 교문을 빠져나가며 대답하자 종인이 따라나서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 자꾸 쫓아오냐며 불쾌한 시선을 보내는 도경수가 훤히 눈에 띄였지만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




경수는 도무지 김종인이 자신을 왜 계속 쫓아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평소처럼 야자를 빼고 일찍이 교문을 빠져나오는 동안에도 김종인은 교실로 돌아가지 않았다. 심지어는 걷는 동안 계속해서 도경수 본인에 대한 질문을 퍼붓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언제부터 피아노 치기 시작했어? 라든지, 너 그런데 키 몇이야? 라든지 말이다. 제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별로 신경 안 쓰고 사는 도경수라고 했지만 이건 그것과는 조금 다른 문제였다. 제 주변이 아니라 저에게 일어난 일이란 말이다. 자꾸만 제 뒤를 쫓아오며 시시콜콜한 질문이나 해대는 김종인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이러는지 경수로써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네 가난을 다른 사람에게 떠벌릴 생각 없다고 했는데도!

어쨌거나 경수가 이 상황을 이렇게 불편해하는 것엔 또 다른 데에 이유가 있었다. 

"여기가 네 학원이야?"

"야, 너···."

"어?"

"내가 네 비밀 지켜준다고 했으니까 너도 비밀 지켜라."

"뭔 소리야."

"오늘은 학원 안 가."




*




"도경수 왔냐?"

도경수가 들어선 노래방 안은 누가 봐도 미성년자인 도경수가 출입하기엔 큰 문제가 될 정도로 퀴퀴한 담배 연기가 가득 메여있었다. 종인은 경쾌한 비트에 맞춰 실컷 랩을 하다 경수가 들어서자 그에게 인사를 건네던 껄렁해 보이는 남학생을 스윽 훑었다. 도경수가 '어.' 하고 대답하자 노래방 소파에 앉아있던 다른 남학생이 옆으로 자리를 내어주며 말했다.

"옆엔 누구?"

"같은 반 애."

"그래? 아 그리고, 여기 레종. 저번에 말한 거."

"어. 땡큐."

소파에 앉아있던 남학생이 담배 한 갑을 도경수에게 던졌다. 그리고 도경수가 그것을 받아내면서 감사 인사를 잊지 않는 것도 보았다. 종인은 문득 도경수가 생긴 것과 참 다르게 논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귀엽고 예쁘장하게 생긴 도경수가, 학교에서 조용히 공부만 하는 우등생 같은 도경수가 야자를 빼고 이런 곳에 와서 논다. 누가 봐도 약한 애들 괴롭힐 것 같은 껄렁한 애들이랑 어울린다. 그들의 교복을 보아하니 같은 학교 학생은 아니었다. 이 노래방은 관리를 어떻게 하길래 교복 입고 담배 피우는데 제재도 안 하는 건진 모르겠으나, 아무튼 이곳은 타락한 학생들의 파티 현장과도 같았다. 아마 김종인의 친구들도 야자를 째고 이런 곳에 와서 놀 것이다. 종인은 언제나 그곳에 끼지 않았지만. 어쨌든 종인은 도경수를 데리고 이곳에서 나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그 순간 도경수의 팔목을 붙잡고 그곳을 빠져나온 것은.


"야!"

종인의 악력에 그대로 끌려 나온 도경수가 소리쳤다.

"너 뭐 해?"

"너 저런 애들이랑 노냐?"

"네가 무슨 상관이야. 그러니까 왜 여기까지 따라와서···."

"아니 그래도···."

"너도 담배 피우고 할 거 다 하잖아. 새삼스럽게 뭘 그래?"

"저런 놈들이랑 어울려서 험한 꼴 당하면 어쩌려고 그래? 딱 봐도 질 안 좋은 애들···"

"그걸 네가 왜 신경 써. 그냥 신경 꺼."

종인은 제 말을 끊어먹고 불쾌한 듯 쏘아보는 도경수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종인이 말이 없자 도경수는 잠깐 한숨을 내쉬고 다시 노래방 안으로 들어가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한번 팔목을 붙잡았다. 왜냐고 묻는다면 그냥 그러고 싶었다. 어쩌다 저 안에서 싸움이 나 예쁘장한 도경수의 얼굴에 생채기가 나는 것이 보기 흉할 거라 생각해서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갑자기 경찰이 들이닥쳐 교복 입고 술, 담배와 함께하는 난동파티 현장에 있던 도경수를 잡아가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 그랬을 수도 있다. 뭐, 이유가 어찌 됐든 김종인은 도경수의 팔목을 다시 한번 붙잡았다.

"그러지 말고 나랑 편의점이나 가자."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종인의 얼굴을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도경수가 왠지 조금 귀엽다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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