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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카포(da capo) 03

Kai x D.o.

[카디] 다 카포(da capo) 03

W. 율이



"1050원입니다."

알바생이 바코드를 찍으며 말하자, 김종인은 입고 있던 패딩 주머니에서 체크카드 한 장을 꺼내 결제했다. 그의 다 무너져가는 집만 보면 바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한 장과 동전 몇 개를 골라내 컵라면 하나도 겨우 살 것 같은데 담배도 피우고 나름 카드도 사용하는 걸 보면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은 아닌 모양이다. 뭐 어쨌든 가난에 대해 잘 알 리가 없는 도경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그가 살고 있는 집만 보면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할 테지만. 김종인은 그런 경수의 시선을 느낀 모양인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나도 카드 정도는 있어."

"네?"

그에 잘 못 들은 알바생은 그를 향해 다시 한번 되물었지만 김종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경수가 '누가 뭐래.' 하고 대답하자 그제서야 알바생은 뻘쭘한 듯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러니까, 조금 전 경수는 김종인에 의해 편의점에 끌려왔다. 학교에서 석식도 못 먹고 나왔다며 배고프다는 소리만 연신 해대는 김종인에 의해서 말이다. 경수가 그러니까 학교 들어가지 왜 따라왔냐고 한소리 했지만 김종인은 뻔뻔하게도 지금 가봤자 석식 시간은 다 끝났을 거라고 대답했다. 어쨌든 경수는 김종인의 말대로 질 나쁜 중학교 동창들이 득실득실한 노래방에 다시 들어가 봤자 더 피곤한 일만 생길 것 같아 김종인을 따라나선 것이다. 어차피 그들은 경수 하나 없어져도 그런갑다 하지, 크게 신경 쓰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경수는 제 옆에서 한가하게 라면이나 먹고 있는 김종인을 응시하고 있다.

"먹고 살만 한가보다?"

"이 정도도 못 먹고 살 정도는 아니거든?"

"담뱃값은 안 아깝냐?"

"그건 좀 아깝긴 한데, 그걸 알면서도 못 끊는다는 게 더 문제야."

김종인이 말하자 경수는 잠깐 킥킥거리며 웃었다. 그렇긴 하지- 라고 생각하며. 

"근데 진짜 뭐 하나 묻자."

그리고 경수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너 진짜 왜 여기 있냐? 학교 안 가? 나 왜 따라온 거야?"

"몰라? 정신 차려보니까 여기네?"

"지랄하네."

경수가 말하자 이번엔 김종인이 파하하 하고 웃었다. 경수는 뭐가 그렇게 재밌어서 웃냐고 타박했지만 어이없게도 한 번 터진 김종인의 웃음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경수에게 한마디 하는 것이었다.

"너 말 진짜 재밌게 한다."

살면서 그런 소리 처음 들어 본 도경수는 더 어처구니없어 했지만.




*




경수는 암막 커튼 사이로 햇볕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한가한 토요일 점심에 눈을 떴다. 경수는 주말이면 항상 늦게까지 잠을 잤다. 어차피 토요일까지 가는 학원은 저녁이 되어서야 가고, 아침 일찍 일어나 봤자 딱히 할 게 없었던 것이 그 이유다. 일주일에 다섯 번 가는 피아노 학원은 토요일도 어김없이 가야 한다. 대신 금요일엔 가지 않는다. 어제 그러했던 것처럼. 일어나보니 휴대폰엔 카톡 몇 개가 와 있었다.

[도경수 어제 어디갔었음?]

[야 오랜만에 보는건데담배만 들고 토끼기있냐? 개새꺄]

경수는 미안. 다음에 보자. 그때 쏠게. 하고 간결하게 답장을 보낸 후 '새로 추가된 친구'란에 있는 김종인의 프로필을 눌렀다. 프로필 사진도, 배경 사진도, 상태메세지도 없는 아주아주 재미없는 김종인의 프로필. 볼 것도 없네- 하고 휴대폰을 던져 놓고 다시 침대에 풀썩 누웠다.

김종인과 번호 교환을 한 것은 편의점에서 나온 직후이다. 김종인은 제멋대로 경수의 휴대폰을 빼앗아 자신의 번호로 전화를 걸더니 다시 되돌려주는 것이었다. 그러고선 도경수의 번호를 '도빗' 이라고 저장하곤 제 눈앞에 흔들며 놀려댔다. 

- 뒤질래? 왜 도빗이야.

- 호빗 도경수.

- 진짜 뒤진다?

경수가 인상을 험악하게 굳혔지만 김종인에게 별 위협은 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면 저는 얼마나 키 크다고. 하고 생각했으나 짜증 나게도 김종인은 도경수보다 훨씬 컸다. 그 이후 딱히 갈 곳도 없었던 두 사람은 놀이터 그네에 앉아 시간을 때우다가 헤어졌다. 


지이이잉-

경수가 침대에 누워 천장의 벽지나 쳐다보고 있는데 휴대폰이 지잉 하고 울렸다. 경수는 변백현이라고 적힌 발신자를 확인한 뒤 전화를 받아들었다.

"웬일?"

- 나 지금 피시방인데 근처에 미나랑 민석이 형이랑 쇼핑 중이라길래 잠시 보려고. 도갱 학원 6시에 가지? 그 전에 잠깐 보자. 나와. 

"어?"

- 뭘 멍 때리고 있어. 좀 따 봐.




*




경수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어릴 적부터 자주 봐왔던 이모네는 경수가 사는 아파트의 옆 동으로 이사했다. 이모에겐 자녀가 있었는데 경수는 줄곧 그들과 등교하곤 했다. 처음에는 이모가 자동차로 셋을 태워 학교까지 데려다줬었는데 나중엔 경수와 친했던 변백현까지 합세해 넷을 함께 데려다주곤 했다. 이모가 백현의 집 앞에서 그를 픽업할 때마다 미나는 새침한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 넌 좋겠다? 우리 엄마가 학교도 데려다주고.

그럴 때마다 둘은 투닥거리며 싸웠지만 이모나 민석이 형은 하하 하고 웃을 뿐이었다. 조용히 웃던 경수의 사촌 형은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은근 애교가 많고 귀엽게 생겨 어른들의 예쁨을 많이 받았다. 경수는 자신과 그가 크게 닮았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가끔가다 사람들은 동그란 게 닮았네! 하고 말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말했지만 정작 닮은 것은 당연하게도 두 남매였다. 그들이 함께 있으면 남매인 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닮아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말할 때마다 둘은 입술을 뾰로통하게 내밀고 외쳤다.

- 하나도 안 닮았거든?

그들은 그렇게 매일 싸우면서도 남매가 함께 쇼핑하러 간다든지, 볼멘소리를 하긴 했어도 서로가 깜빡한 게 있으면 가져다준다든지 하며 우애가 깊은 편이었다. 


민석은 경수보다 3살 더 많았는데 생긴 건 꼭 더 어린 애 같아서 종종 친구 취급을 받기도 했다. 어찌 됐든 셋은 민석을 잘 따랐고, 어렸을 적부터 함께 했었다 보니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어있었던 것이었다. 민석이 성인이 되고, 경수가 홀로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자 만나는 시간이 줄어들긴 했지만 가끔 이런 식으로 얼굴 보는 것은 꽤 자주 있는 일이었다. 

"도경수 뭐 먹을 거냐니까?"

경수가 한참을 딴생각에 잠겨있는데 백현이 물었다.

"나 카레라이스."

"여기 카레라이스 하나랑 돈가스 둘, 김치 그라탕 하나요. 그리고 환타 오렌지 하나랑 콜라 세 잔도요."




*




종인은 고장 난 보일러를 만지작거리다 거실에서 티비를 보고 있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보일러 좀 고쳐봐요. 추워죽겠네."

하지만 이미 예능 프로그램에 푹 빠진 듯한 아버지가 아무런 대답이 없자 차가운 물로 대충 머리를 감고 집을 나섰다. 보일러가 고장 난 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덕분에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은 지도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아직 3월 초밖에 안 되었는데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려니 아주 진저리가 났다. 아무 옷이나 주워 입고 작년에 산 싸구려 패딩을 걸쳤는데도 상가 유리에 비친 제 모습은 꽤 잘생겼다. 돈은 없어도 잘생긴 얼굴이라도 주신 부모에게 감사해야 하나 생각했지만 결국 그것도 관두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휘적휘적 거리를 걸었다. 자른 지 꽤 된 앞머리가 눈을 찌르려고 하기에 미용실에 가려던 참이었다. 어차피 미용실에 갈 것이었으면 머리도 감지 않는 건데! 괜히 차가운 물로 머리를 감은 것에 대해 한탄하고 있을 때쯤이었다. 휴대폰에 눈을 고정한 채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도경수를 본 것은.

"야."

종인이 그의 팔뚝을 붙잡자 도경수는 평소와 같은 동그란 눈을 하고 종인을 쳐다봤다. 그러고선 '왜 여기 있어?' 하고 물었다.

"어디 가?"

"친구 만났다가 학원 가야 하는데 두 시간 정도 남아서 시간 때우러. 근데 넌 왜 여기 있냐고."

"그럼 나랑 미용실 가자."



종인이 보를 두르고 머리를 자르고 있는 동안 도경수는 관심 없다는 듯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에 심심해진 종인이 경수의 이름을 부르자 그가 고개를 들고 이쪽을 쳐다봤다.

"시간 때우러 어디 가는 중이었는데?"

"독서실."

도경수의 대답에 종인은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고선 독서실? 하며 비웃는 것이었다.

"넌 시간 때우러 그런 델 가냐?"

"뭐가 어때서?"

"널 진짜 모르겠다."

종인이 말하자 도경수는 어깨를 으쓱한 뒤 다시 휴대폰으로 눈을 고정시켰다. 저 휴대폰 속엔 뭐가 그리 재미난 게 있어서 자꾸만 저것을 확인하는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도경수는 김종인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는 듯 보였다. 어쨌든 종인이 도경수를 향해 널 진짜 모르겠다고 말한 것이 빈말은 아니었다. 어젠 양아치들이나 가는 곳에 끼고, 자연스럽게 담배나 받아들더니 오늘은 시간 때우러 독서실에 간단다. 정말이지 도경수가 뭐 하는 놈인지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종인, 도경수와 함께 있는 시간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비록 아주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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