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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카포(da capo) 05

Kai x D.o.

[카디] 다 카포(da capo) 05

W. 율이



종인이 도경수를 다시 본 것은 주말이 다 지나간 후의 월요일이었다. 언제나처럼 두 번째로 등교해서 제 옆자리에 앉는 도경수. 휴대폰을 조금 만지작거리더니 말없이 문제집을 펼쳐 드는 도경수. 이내 꾸준한 김종인의 시선에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도경수. 눈은 그렇게 마주쳤다. 

"할 말 있어?"

"아, 아니···."

종인의 대답에 도경수는 다시 고개를 문제집으로 고정시켰다. 이럴 때 보면 전교 1등이 따로 없다. 만약 도경수가 토요일에 왜 먼저 갔냐고 물으면 어떡하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경수가 그에 대해 한 마디도 묻지 않자 약간 서운해졌다. 김종인, 미쳤어? 그딴 게 왜 서운한데? 

"너 나한테 궁금한 거 없어?"

그래서 먼저 입을 연 것은 다름 아닌 김종인이었다.

"뭐?"

"아냐, 됐다."

"그때 왜 먼저 갔냐?"

"어?"

"궁금한 거."

"아··· 그게···."

"대답도 못 할 거면서 뭘 물어."

종인이 머뭇거리는 사이, 도경수는 피식 웃으며 다시 x와 y가 잔뜩 들어간 방정식 따위에 시선을 돌렸다. 그러게, 대답 못 할 거였지. 동급생 남자애한테 설렜다고 어떻게 고백하겠어. 하지만 도경수의 반응은 대체 뭔데?!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저 태도는 뭔데? 아, 정말 모르겠다. 나도, 도경수도-




*




종인이 그 문제로 몹시 애를 쓰고 있을 동안, 도경수는 제 나름대로 판단해 큰 오해를 하고 만다. 김종인, 분명 화장실에 가고 싶었던 거다. 그러니까 급 똥, 뭐 그런 게 아니었을까? 얼굴도 붉어진 걸 보면 큰 것이었을 거다.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니까 말하지도 못했던 거겠지. 도경수라도 그랬을 거니까. 역시 도경수, 눈치 하난 빠르다고.




*




종인은 도경수를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언제나그랬던 것처럼 학교에서 잠이나 퍼질러 자고, 식사시간에만 잠깐 깨어나 밥을 먹으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경수가 제 짝이었다는 것은 크나큰 걸림돌이었지만, 어쨌든 도경수를 보지 않으면 딱히 떠오르지도 않을 것이 아닌가. 종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생각처럼 쉽게 되었다면 이렇게 끙끙대지 않았을 테지만. 종인이 제 맘과는 다르게 하루 종일 깨어있자 도경수는 웬일이냐는 듯 말을 걸어왔다. 너 왜 안 자? 하고. 아, 너까지 답지 않게 왜 말 걸고 그래! 종인이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리자 도경수는 눈치 없이 한 번 더 말을 걸어왔다.

"야, 너 귀 빨개."

"신경 쓰지 마!"


결국, 둘은 열렬하게 강의 중이던 깐깐한 영어 교사에 의해 꾸중을 듣게 된다.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도경수는 종인을 노려보며 교과서 모퉁이를 내밀어 보였다. 종인은 억울한 듯 입술을 뻐끔거렸다. 그러니까··· 널 보면 자꾸 가슴이 쿵쿵거린단 말이야! 물론 이런 말은 하지 못했지만.




*




신경 쓰지 말라고? 김종인은 이렇게 말했다. 하긴, 도경수 저도 남이 저에게 괜한 신경 쓰는 거 좋아하지 않으면서 답지 않게 오지랖 부렸다. 평소엔 제 주변에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못했으면서 갑자기 김종인이 눈에 띄었던 건 왜일까. 

언젠가 누가 도경수에게 말했던 적 있다. 너는 지나치게 비인간적이야. 비인간적이라고? 대체 뭐가? 나는 그저 내가 주체인 삶을 살고 있을 뿐인데. 도경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렇게 생각했다. 저 아닌 온 주변에 무감각하고, 그것을 알고도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 고쳐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비인간적이라는 게 대체 무엇인가. 도경수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인간인데. 조금 주위에 무감각한 거? 아니면 그 감정이 문제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과연 이 감정이 문제일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사람들에게 신경 쓰지 않는 것이 문제냐는 말이다. 다만 '신경 써야 할 사람'이라는 장벽이 남들보다 조금 높은 것뿐이다. 도경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또 그게 맞다고 생각했고.

하지만 김종인은? 김종인은 신경 써야 할 사람인가. 아니라면 왜 김종인이 자꾸 눈에 밟히는가. 그것은 분명 아주 쉬운 문제일 것이다. 김종인이 평소처럼 잠만 퍼질러 자지 않아서 임이 분명하고, 어디 아픈 것 마냥 바짝 긴장하고 있던 게 무감각한 도경수에게도 느껴질 정도로 티가 나서 임이 분명한 것이다. 




*




"그러니까, 우리 집에 가자고."

종인이 도경수를 붙잡고 이렇게 말한 것은 8교시 수업이 끝난 후였다. 하교하려던 도경수를 붙잡은 것이다. 나랑 우리 집에 가자. 도경수가 뭐? 하고 되물었을 때 김종인은 다시 한번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 집에 가자고.

"··· 왜?"

그래서 도경수가 또 한 번 되물었다.

"화, 확인할 게 있어."

"뭐?"

"그건 지금 말 못 해."

"근데 나 지금 학원 가야 해."

"하루만 빠지면 안 돼?"

"······."

종인의 물음에 도경수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중요한 거?' 하고. 그래서 종인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경수가 조금 부담스러워 할 정도로.




*




도경수가 김종인을 따라온 것은 정말이지 별거 아닌 것에 이유가 있었다. 그저 학원에 가기 싫었던 거다. 평소엔 구실이 없어서 꼬박꼬박 지루한 루트를 밟았었는데, 누군가에 의해 구실이 생겼다는 것이 약간 즐거웠다. 피아노. 좋다. 피아노는 좋다. 언제나 말했지만 입시가 싫은 것뿐이다. 오늘은 금요일도 아니고 일요일도 아닌 월요일이다. 정상적으로 학교, 학원, 집 루트를 밟는 평범한 평일. 하지만 그 정상적인 범위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아주 짜릿한 일이다. 소소한 일탈, 뭐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경수가 질 나쁜 중학교 동창들을 만나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공부와 피아노밖에 모를 것 같은 우등생이 사실은 짙은 담배 연기 속을 드나들며 학생이 지켜야 할 범주를 벗어난다. 이 얼마나 짜릿한 일인가. 그러고도 경수의 일탈을 아는 사람은 일탈을 함께 즐긴 동창들과, 김종인밖에 없을 것이다. 어른들은 모르는 세계.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방치하는 세계. 도경수는 그런 것들을 즐겼다. 그래도 그런 그가 비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김종인의 집은 접때 봤던 것에서 달라진 게 없었다. 비록 잠시 보고 지나쳤던 것이었지만 경수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렇게 허름한 집은 살면서 처음 봤을 테니까. 티비에 등장하는 가난한 드라마 주인공이 사는 집보다 더 허름하다. 사실 그들의 집도 보다 보면 은근히 괜찮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곳은 아니었다. 경수가 신발을 벗고 차가운 거실 바닥을 밟자 종인이 대뜸 사과해왔다.

"부실하지? 미안."

"네가 사과할 일이냐? 됐어."

경수가 말하자 종인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여전히 저 붉은 귀는 감출 수 없는 걸까. 경수는 분명 김종인이 어딘가 아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




"야자도 빼고, 학원도 빼고 네 집까지 와서 중요하게 확인할 게 뭔데?"

경수가 물었다. 

"우선 같이 티비 보자."

종인은 자꾸만 쿵쿵대는 제 감정을 억지로 추스르며 대답했다.

종인은 오늘 도경수를 향한 이 이상한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가에 대해 결판낼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도경수랑 같이 티비도 보고, 대화도 하고, 밥도 먹으면서 이 감정이 뭔지 알아내는 거야! 그럼에도 계속 쿵쿵대면, 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 



"이게 뭐야?"

말없이 종인이 티비에만 눈을 고정시키고 있자 경수가 물었다.

"너 지금 30분째 티비만 보고 있잖아."

"혹시 추워?"

"뭐?"

"아니··· 보일러가 고장 났거든. 미안."

"그런 거 자꾸 사과 안 해도 돼."

"그럼 뭐 먹을래?"

"그러니까 확인할 게 뭐냐고."

아- 김종인, 너 대체 뭐 하고 있는 거야? 나 때문에 학원도 빠져버린 도경수가 영문도 모른 채 한가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니, 아마 김종인이었어도 어이가 없었을 거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술 마실래?"

"갑자기?"

"술 마시면서 얘기해 줄게."



이른 술자리는 종인이 냉장고에 있던 소주 한 병을 꺼내면서 시작됐다. 집안에 나뒹굴던 아버지의 소주잔도 하나뿐이어서 두 사람은 그냥 소주병에 입을 대고 마시기 시작했다. 경수가 이참에 가지고 있던 담배를 하나 꺼내 들었지만 종인이 제지하며 말했다.

"집안에 담배 연기 배여··· 새벽에 아빠 오면 금방 들킬걸."

"아··· 미안."

한 병이 빠르게 동나자 종인이 집과 조금 동떨어진 슈퍼에서 소주 몇 병을 더 사 오는 걸로 술자리는 또 한 번 시작됐다. 처음엔 경수가 지갑을 들고 집을 나서려 했지만 종인이 경수에게 '넌 너무 어려 보여서 안 돼.'라고 하는 바람에 종인이 갔다 온 것이다. 하지만 기어코 술값은 제가 내겠다는 경수의 고집에 결제는 도경수의 카드로 했다. 

"내가 먼저 마시자고 했는데 왜 네가 내냐."

"야, 먼저 술 마시자고 한 사람이 술값 내는 거면 이 세상 모든 술 애호가들은 친구들 술값 다 내주느라 고생하냐?"

"··· 그럴지도 몰라."

"이번엔 네가 장소 제공해 줘서 내가 쏘는 거고 다음번에 네가 내."

경수의 말에 종인이 웃었다. 그래. 하고.

"사실 나 학원 가기 싫었거든. 근데 너 때문에 쨀 구실 생겨서 그런 것도 있어."

"너 모범생인 것 같은데 은근히 그런 거 즐기네."

"모범생들도 사실 공부 싫어할걸?"

"그런가?"

"근데 너희 부모님 안 와? 이렇게 여기서 술 마셔도 돼?"

"아빠는 새벽에나 오셔."

경수는 문득 어머니는? 하고 생각했지만 묻는 것은 관두었다. 굳이 말하지 않는 것을 보면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이 아니겠지. 돌아가셨거나, 이혼하셨거나, 둘 중 하나겠지. 하지만 경수는 자신이 그걸 알아챘다는 것도 티 내지 않았다. 남들이 그를 보고 비인간적이라고 하지만, 사실 도경수는 아주 인간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그들은 모를 것이다. 어쩌면 종인은 느꼈을지도 모른다. 도경수가 지금 김종인을 배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설픈 도움으로 상처 주게 하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이 무리하지 않게끔 하는 것. 경수가 제아무리 잘 산다고 해도, 상대방이 가난하다고 해서 제 풀엔 불쌍히 여겨 도와준답시고 상처 주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기에. 가난은 죄가 아니니까. 적어도 지금 김종인에게는.

"김종인, 그럼 밖에서는 담배 피워도 돼?"

"너도 참 썩었다."

"뭐 이 자식아."

"안 그럴 것 같으면서 진짜 하면 안 되는 거 다 한다니까."

"너는 그럴 것 같으면서 다 한다."

이번엔 경수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웃으면 하트 모양이 되는 입술. 사랑스럽다. 여전히 제 입술을 가져다 대고 싶은 도경수의 입술. 아주아주 사랑스러운 입술. 

아, 키스하고 싶다.


그리고 그 순간 김종인이 도경수의 입술에 제 입술을 맞대어 왔다. 말캉하고, 그리고 온기가 남아있으면서도, 술 냄새가 배어있는 도경수의 입술. 그리고 전보다 더 심하게 요동치는 제 감정은 무언가 또렷하게 나타내고 있었다. 좋아해, 도경수를 좋아해.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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