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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카포(da capo) 10

Kai x D.o.

[카디] 다 카포(da capo) 10

W. 율이



CHAPTER 2. 소나타


미나가 오빠의 방문을 스스럼없이 열었을 때, 민석은 여전히 책을 읽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눈길 한 번 받지 못하자 다시 심심해진 미나가 이번에는 백현에게 연락을 했다. 하지만 받지 않았다. 카톡 대화창의 1표시도 사라지지 않은 걸 보면 아마 아직까지도 늘어지게 자고 있을 것이다. 정말이지 할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유유한 주말 오전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고 학교 가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도경수는··· 도경수는 뭐 연락해 보지 않아도 안다. 그가 아직까지 단잠에 빠져있으리라는 걸. 그렇다면 도경수와 함께 있던 그 김종인이란 애는? 제가 왜 순간 김종인을 떠올렸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아무튼 그러고 나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미나가 사귄 이성 친구는 여태껏 경수와 백현뿐이었다. 다른 이성들은 친구로서 사귐이 아니라 연인으로서 사귀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아왔기 때문에. 그래서일까, 제가 먼저 다가갔음에도 불구하고 저를 있는 사람 취급도 안 해준 김종인이 자꾸만 걸린 것은. 재수 없는 자식.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친구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제 사랑을 받기 위해 허둥대는 다른 남자애들 보다 훨씬 유익할 것이다. 미나는 진즉에 깨달았다. 그 애들과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그 애들과 함께 있으면 수평 선상이 아니라 제가 위고 그들이 아래인 수직 선상에 놓인다는 것도. 어쩌면 남녀 사이엔 친구가 없다는 말이 아주 조금은 맞을지도 모른다. 


"그게 그렇게 재밌냐?"

미나가 묻자 민석이 '방해하지 마.'하고 대답했다. 저 웬수는 책에 한 번 빠지면 시리즈를 다 읽을 때까지 눈을 때지 않는다. 감히 경험하고 싶지도 않은 집중력이다. 하긴, 그러니까 좋은 대학에 간 걸 거다. 

이번에는 민석의 책장을 구경했다. 책을 읽는 걸 좋아하는 민석이 하나 둘 모아온 것이 대부분이었다. 로맨스 장르 부터, 추리 스릴러까지. 도통 싫어하는 장르가 있긴 한 건지도 모르겠다. 분명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 눈이 돌아갈 게 분명하다. 

「살육에 이르는 병」

정갈히 꽃혀있던 책들 중 한 권을 집어들고 페이지를 스르륵 넘기자 저는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글자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제목은 재미있어 보이네. 아마 만화였다면 읽었을지도 몰라. 미나는 책을 고이 접어 다시 책장에 끼워 넣었다. 그때까지도 민석은 읽던 책에 눈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




경수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잠에서 깨어난 것은 토요일 오후 2시 경이었다. 어젯밤, 질 나쁜 중학교 동창들을 만나 신나게 마신 것이 이 숙취의 원인이었다. 그들은 경수가 저번 주에 먼저 가버린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언급했다. 그러고는 이번에는 끝까지 달려야 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왔다. 그래서 그 제안에 응한 것뿐이다. 경수는 오늘은 친구 집에서 자고 갈 거라며 부모에게 문자를 보냈던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여긴 어디야··· 경수가 주변을 둘러보자 아직까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중학교 동창들이 몇몇 눈에 띄었다. 담배, 그리고 수많은 소주병. 도무지 고등학생들이 분탕 쳐 놓은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허름한 실내. 

"아, 씨발 깜짝이야."

경수가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본 것은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잠들어 있던 얼굴 모르는 여자애였다. 이제껏 이들과 함께 놀면서 여자애들까지 들였던 적은 없었는데 경수가 만취한 이후에 합세한 것으로 보였다. 옷을 입은 건지, 벗은 건지 통 알 수가 없는 여자애. 경수가 재빨리 눈을 돌리자 마침 화장실에서 나오는 동창 한 명과 마주쳤다.

"일어났냐?"

"쟤는 누구야?"

경수가 여자애를 가리키며 묻자 동창이 낄낄대며 답했다.

"우리 학교 옆에 여고 있거든? 거기 걸레라는데, 나도 잘 몰라."

경수가 인상을 찌푸리자 동창은 왜 그러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경수는 그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 제 짐을 챙겨 나왔다. 삐죽삐죽 선 머리가 건물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쳤다. 씻지도 못했는데··· 경수는 패딩 모자를 뒤집어쓰고 걷기 시작했다. 다시는 쟤네랑 어울리지 말아야지. 결국 김종인의 말이 맞았다. 저 애들과 함께 있다간 성폭행 혐의로 경찰서에 끌려갈지도 모르겠다고.




경수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집안엔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함께 골프라도 치러간 게 분명하다. 부부가 골프를 시작한 건 최근이었다. 고급 취미에 빠지더니 골프채를 몇 채 사들였다. 경수는 구석에 놓여있는 낚싯대를 보며 생각했다. 분명 이 전엔 낚시였었지. 하고. 


경수는 거실 소파에 걸터앉아 밀린 카톡 답장을 하기 시작했다. 변백현, 김미나, 민석이 형, 그리고 학교 친구들. 하지만 김종인은 없었다. 

김종인이 지겹도록 매달렸던 그날 이후로는 또다시 예전같이 돌아왔다. 도경수에게 아무런 관심조차 없었던 그때로. 꾸준히 이름을 불러오지도 않았고, 하교하는 경수를 붙잡고 잘 가라며 손을 흔들지도 않았다. 예전처럼 잠이나 퍼질러 자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그는 경수에게 공을 들이는 것보단 같은 반 친구와 어울리는 시간을 조금 더 늘린 듯 보였다. 경수는 김종인의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다면 들여다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물론 저 좋다며 귀찮게 따라다니던 것보다야 나았지만.


카톡 답장을 다 하고 난 후엔 샤워를 했다. 어차피 몇 시간 후면 또다시 나가야 한다. 그놈의 입시 학원 때문이다. 언젠가 피아노가 싫어질 날이 온다면 지겨운 입시 곡 때문일 것이 분명하다. 샤워를 하고 난 후엔 어머니가 보다 만 월간 잡지를 읽었다. 샤넬 루주 코코 샤인 55호 로망스, 57호 아방뛰르··· 대체 뭐가 다른 거지? 둘 다 똑같은 색인데? 이런 이름은 어디서 따오는 거지? 요즘 인기 있는 배럴 실루엣, 벌룬 실루엣 드레스··· 이런 게 유행했단 말인가? 배럴 실루엣은 뭐고 벌룬 실루엣은 또 뭐야? 그리고 앤틱 가구와 르네상스풍의 가구··· 경수는 월간 잡지를 덮고 제 방으로 향했다. 할 게 없다면 공부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저번 주에 본 모의고사 문제지를 펼쳐 들었다. 독해에서 하나, 문법에서 두 개··· 오답 노트를 작성하다 보면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간다.




*




종인이 도경수를 공략하는 방법을 일체 자극하지 않는 걸로 바꾼 지도 3일이 되는 날이었다. 무관심한 척하면 예전처럼 조금 관심이라도 가져줄 줄 알았는데 역시 이 방법도 아닌 듯싶어 그만두려던 참이었다. 지금 종인은 제가 최상위 난도의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고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짜증 나는 도경수, 그러면서도 계속 말 걸고 쳐다보고 싶게 생겼다. 종일 이불 속에서 경수의 프로필이나 들여다보고 있으니 더욱 보고 싶어져서 바람이라도 쐬러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종인은 저번 주 토요일에 경수를 마주쳤던 시내 거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친구를 만나고 학원 가야 하는데 시간이 좀 남아서 독서실 간다던 도경수. 분명 여기서 마주쳤었지. 종인이 그때 들렀던 미용실을 막 지나치는데 정말로 눈에 그리던 도경수가 저 멀리서 걸어오고 있었다. 경수도 종인을 발견한 모양인지 걸음을 잠깐 멈추어 섰다. 경수가 인상을 조금 찌푸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지만 신경 쓰지 않고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도경수!"

이렇게 불러보는 것이 얼마 만인가. 무려 3일 만이란 말이다! 진작에 통하지도 않을 공략 방법은 때려치웠어야 한다. 역시 자극적인 게 더 좋을 것이다. 도경수의 속은 모르겠으나, 종인은 저 좋을 대로 생각했다. 

"학원 가?"

종인이 휴대폰의 시계를 들여다보고 물었다. 오후 5시. 아무래도 이 거리에서 또 도경수를 마주친 건 정말 우연이 아니고 인연일 거라 생각하며 생글생글 웃으니 경수가 약간 눈썹을 꿈틀거리며 종인을 응시했다. 이번엔 또 무슨 수작이야? 말하지 않아도 생각을 알 수 있을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종인은 애써 모른 척했다.

"나 네 학원 따라가면 안 돼?"

"안 돼."

종인이 물었지만 대답은 아주 칼 같았다. 못된 도경수. 조금이라도 생각할 틈이라도 가졌으면 이렇게 서운하진 않았을 거다. 분명 도경수는 제 고백을 거절할 때도 이랬었지.

"왜?"

"너 더 이상 나 안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아닌데?"

종인이 웃으며 답했지만 도경수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냥 동글동글한 눈이 귀여웠지만, 역시 웃는 게 더 귀엽다고도 생각했다. 이내 경수가 말없이 종인을 지나쳐 걷자 종인이 그를 졸졸 따랐다. 이렇게라면 접때처럼 끝까지 따라오는 걸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경수도 그를 제재하는 것을 포기했다.

"아무리 따라와도 안엔 못 들어 올 거야."

"괜찮아. 거기 갈 때까지만이라도 너랑 같이 있고 싶어."

경수는 소름이 돋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 남자끼리 저런 오글거리는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다니. 게다가 며칠 안 듣다 들으니까 더 적응이 안 되었다. 김종인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오랜만인 것 같은데 적응할 텀도 없이 저런 말을 술술 내뱉는 걸 보면 김종인도 참 대단하다 싶었다. 경수가 애써 걸음을 더 빨리 걸었지만 종인은 느긋하게 따라붙었다. 제기랄. 저는 도망치려 멀어지고, 김종인은 붙잡으려 가까워지는 것을 반복하는 그 간격이 도경수와 김종인의 거리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완전히 따라붙어 제 손목을 잡는 김종인을 보며 떠올린 것이다. 언젠가 나도 이렇게 잡히는 게 아닌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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