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다 카포(da capo) 12

Kai x D.o.

[카디] 다 카포(da capo) 12

W. 율이



우리 사귀어 보자. 전화 너머로 나지막이 울려오는 목소리는 분명 도경수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 내용이 도경수스럽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한 번 더 물었다. 뭐라고? 그에 전화 너머에서는 또렷한 발음으로 한 번 더 대답해왔다.

- 사귀자고.




*




경수가 김종인과 사귀기로 한 지 하루가 지난 월요일 아침이었다. 6시 20분, 언제나처럼 알람 소리를 듣고 새로운 하루를 맞이한다. 샤워를 하고 교복을 다 챙겨입고 나면 어기적어기적 주방으로 나간다. 부모는 늘상 그랬듯이 아직 단잠에 빠져있을 것이다. 아침밥은 알아서 대충 챙겨 먹고 나간다. 밥솥에 밥도 있고 어제저녁 어머니가 해 놓은 국도 있으니 경수가 따로 할 건 없다. 그저 반찬 꺼내서 먹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집을 나오면 7시쯤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휴대폰을 확인하니 벌써부터 설레 죽겠다는 김종인의 문자 몇 개가 와 있었다. 답장을 해야 하나? 경수가 뭐라고 답장해야 할지 고민하기 위해 종인의 문자를 다시 한번 되새김질하며 아파트 건물을 빠져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빙글빙글 웃고 있는 김종인을 마주할 수 있었다. 

"왜 여기 있어?"

"몰라서 물어? 같이 등교하려고 왔지."

아··· 경수가 고개를 작게 끄덕이자 종인이 경수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러고선 제 휴대폰을 눈앞에 들이밀며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나 네 이름 저장한 거 바꿨다? 도빗에서 경자로."

"경자가 뭔데?"

경수가 정말로 모르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굴리며 묻자 종인이 약간 쑥스러워하며 대답했다.

"경수 자기."

씨발. 순간 소름이 쫙 돋아 뻣뻣하게 선 털과 함께 욕지거리를 내뱉을 뻔한 걸 꾸역꾸역 참아냈다. 경수의 속도 모르고 종인은 뿌듯한 듯 여전히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에 경수가 제 어깨를 감싼 종인의 팔을 내팽개치고 앞서 걸었다. 그러자 종인이 쫓아오며 물었다.

"뭐야! 같이 가! 화났어?! 왜?! 뭐 때문에?"

경수가 그 순간 종인을 보고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웃으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김종인이 당황하며 달려오는 꼴이 웃겨서 참을 수가 없었다. 경수가 하트 모양 입술을 내보이며 웃자 영문 모를 김종인도 이내 따라 웃었다. 




*




1교시는 짜증 나게도 수준별 수업이었다. 종인이 수준별 수업을 달가워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 방면에서 존재했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반을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상반 아이들만 종인이 속한 1반에서 수업을 들었다. 종인은 이 수준별 수업 때만 되면 하반으로 어기적어기적 걸음을 옮겨야 했다. 예전에는 잠을 자다가 중간에 깨어나 반을 옮겨야 했다는 불편함이 있었다면, 지금은 경수와 한 시간 동안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 불만이었다. 

1교시가 시작되기 전, 종인이 속으로 한껏 불만을 토하며 경수의 표정을 살폈다. 도경수도 김종인을 좋아한다면 잠깐 떨어져 있는 이 시간이 반갑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경수는 너무나도 평온하게 교과서를 책상 위에 꺼내두는 것으로 수업준비를 마치고 종인을 쳐다봤다.

"쉬는 시간 끝나가는데 너 안 가?"

제기랄. 아무래도 이 수업이 만족스럽지 않은 건 김종인뿐이었던 모양이다. 종인이 괜히 틱틱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동안에도 경수는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지수는 대충 알겠는데 로그는 뭐고 지수함수, 로그함수는 또 뭐야. 수학 교사가 칠판에 꼬부랑 영어와 숫자들을 적어가며 열심히 설명했지만 종인을 비롯한 하반 아이들은 수업에 별 관심이 없었다. 종인은 수학을 배우는데 영어가 왜 필요하냐며 따지고 싶었지만 그것조차 알면 뭐 하겠냐는 심정으로 책상에 얼굴을 파묻었다. 수업시간이 반쯤 지나고 아무도 수업을 듣지 않는 현상이 일어나자 교사도 이제는 반쯤 포기한 듯 보였다. 도경수는 이 지루한 수업시간을 필기까지 해 가며 견디고 있을 것이다. 대단한 자식. 아무리 내 애인이라지만 그것만큼은 이해할 수 없다. 





체육 시간은 종인이 그나마 가장 활동적인 시간이었다. 쉬는 시간, 경수를 다시 마주해 신난 종인이 무언가 계속 이야기하며 운동장으로 향할 복도를 걷고 있을 때였다. 얼굴 모를 한 여자애가 제 친구에게 등을 떠밀려 종인과 경수의 앞을 가로막게 된 것은. 그들이 여자애를 나란히 쳐다보자 그녀는 얼굴이 약간 붉어진 듯 보였다. 그러고선 수줍게 쪽지 하나를 내밀며 말하는 것이었다.

- 이거 받아.

그리고 그것을 받은 건 다름 아닌 경수였다. 경수가 놀라 손가락으로 저 자신을 가리켜 보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수줍은 표정으로 고개를 옅게 끄덕였다. 그러자 약간 화난 듯한 종인이 크게 소리쳤다.

- 야! 너 그거 왜 받아!!

그다음 종인이 여자애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는 쪽지를 가로채 갈기갈기 찢어버린 것은 정말이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고선 뭐라 말할 틈도 없이 씩씩대며 복도를 가로질러 나가는 것이었다. 경수가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여자애를 쳐다봤지만, 그녀는 이미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지금, 경수는 운동장 한가운데서 축구가 한창인 반 학생들과 동떨어져 스탠드에 우두커니 앉아있던 종인의 옆에 자리 잡고 앉았다. 

"좋았냐?"

경수가 제 옆에 앉자 종인이 입술을 삐죽 내밀고 물었다. 그 모습이 약간 귀여워서 조금 더 놀려보고 싶은 마음에 경수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좋더라."

"야!!!!"

그에 종인이 시끄럽게 소리쳤다. 그보다 더 시끄럽게 운동장을 뛰고 있던 몇몇 아이들이 종인을 쳐다봤지만 둘은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경수가 말했다.

"너 때문에 우리 게이라고 학교에 소문나겠다."

"잘됐다. 여기저기 소문내서 도경수 아무도 못 건드리게 해야지."

종인의 장난스러운 대답에 경수가 잠깐 웃었다. 그러고 나서 무언가 생각하는 듯싶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부모님 귀에 들어가면 그건 좀 피곤해지니까 자제해."


경수는 종인과 스탠드에 앉아 한가하게 반 아이들이 하는 축구나 구경하고 있었다. 경수가 체육 시간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축구에 환장해 앞뒤 못 가리는 반 아이들처럼 즐기는 것도 아니었기에 종종 팀에서 빠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김종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종인이 내내 스탠드에 앉아만 있자 촐싹이가 대뜸 뛰어와서 이쪽을 향해 소리쳤다.

"김종인!! 뭐 해! 너 없으니까 우리 진다고!"

"싫어! 나 오늘은 안 해!"

"아, 왜!"

그의 친구들과 반 아이들은 그를 촐싹이라고 불렀지만, 본래 이름은 찬열이었다. 예쁜 이름 두고 왜 그렇게 부르냐고 묻는다면, 그만큼 촐싹대길 좋아해서 그렇다고 답했을 것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경수는 찬열을 한 번도 촐싹이라고 불러본 적 없었다. 물론 친하지 않아서 그랬던 것도 있고, 이제껏 대화를 단 한 번도 나누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기회조차 없었던 것도 있다.

종인이 찬열의 부름에도 앉아만 있자 찬열이 이쪽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너 안 하면 그냥 나도 쉬어야겠다. 지기만 하니까 재미없네."

"아 그냥 다시 꺼져."

찬열이 스탠드에 털썩 주저앉아 생수를 들이키자 종인이 그를 밀어내며 말했다. 

"야 김종인. 아무리 생각해도 너, 나에 대한 사랑이 식었어."

찬열이 언제나처럼 장난스럽게 말한 것에 대해 종인은 경수의 눈치를 보는 듯했다.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한 곳에 두지 못하는 것이, 종인이 당황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경수가 그 꼴이 웃겨서 옅게 웃자 찬열이 대뜸 경수를 향해 말을 걸어왔다. 

"도경수, 안 그러냐? 너도 느꼈지? 야 인마, 경수도 느꼈다잖아."



박찬열. 누군가 그를 소개한다면 이렇게 소개할 것이다. 반에서 가장 촐싹대는 애. 친화력이 가장 좋은 사람을 뽑는 대회가 있다면 반드시 우승을 차지할 놈. 분위기 메이커. 그러면서도 키는 크고 얼굴은 예쁘장하니 잘생겼다. 목소리도 동굴 목소리라며 여자애들이 딱 좋아할 목소리다. 

경수는 새삼 그의 친화력에 감탄하고 있었다. 아직 학기 초에다가, 한 번도 대화를 나눠보지 않아서 도경수의 이름조차 몰랐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아마 전교에서 같은 반 학생 이름을 가장 빨리 외우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정말로 박찬열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경수는 찬열을 보고 문득 대형견을 떠올렸다. 사람을 잘 따르는 순한 대형견. 웃으면 예쁘게 들어가는 보조개도 그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것에 한 몫 했다.


 


*




그리고 경수가 종인과 사귀게 된 지 일주일 하고도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어느덧 3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개학한 지 한 달이 된 이 시점에, 학생들은 여름 방학이 얼마나 남았는지 디데이를 새는 것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종인과 사귀게 된 이후로도 하루하루는 전과 별다를 게 없었다. 여전히 도경수가 김종인을 좋아하는 건지, 아닌 건지 알 수 없었고, 그저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종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뿐이었다. 

도경수는 그랬지만, 종인은 매우 들떠있었다. 다음 날이 개교기념일이라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도경수가 학원에 가지 않아도 되는 금요일이라는 점에.


"내일 같이 있자."

종인이 제안했다.

"어디서?"

"어··· 우리 집?"

"··· 뭐, 그래."

종인은 경수가 흔쾌히 대답한 것에 기분이 좋았다. 경수와 가고 싶은 곳이야 많았지만, 딱히 돈도 없고 은근 경수가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한다는 걸 깨달은 후에는 굳이 바깥으로 나가자고 제안하지 않았다. 

언젠가 종인이 경수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 너 나를 좋아하게 돼서 사귀자고 한 거야?

하지만 경수는 골똘히 생각할 뿐 그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았다. 사귄 이후로 학교에서도 항상 붙어 다니고 주말이면 꾸준히 만남을 가지기도 했으나, 정작 도경수가 김종인을 좋아할 거라는 확신은 갖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도경수를 지켜보고 있으면, 그가 종인과 무언가 함께하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저 종인이 하자면 하고 -종종 싫다고 할 때도 있었지만- 말자면 마는, 도경수 저의 바람이 아닌 김종인의 바람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그래서 종인은 이런 질문도 했었다.

- 너 나랑 하고 싶은 게 없는 거야?

그러자 도경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 굳이 있어야 돼?

종인은 그 대답을 듣고 한동안 삐쳐서 말을 걸지 않았다. 


그에 반해 경수는 정말로 종인과 하고 싶은 게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어차피 같은 반이고, 짝까지 된 마당에 종일 함께 있는다. 도무지 김종인은 여기서 뭘 더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이쯤 되니 경수는 김종인과의 키스에 흥분했던 이유가, 종인을 좋아해서가 아닌, 정말로 제가 동물적인 본능에 따르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그런 거였다고 판단하게 될 정도였다. 그럼에도 종인이 가끔 취하는 행동이 조금 귀엽다고 느꼈기 때문에 관계를 지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게 좋아하는 건가? 저 덩치도 산만 한 김종인을 귀엽다고 느끼는 거면 좋아한다고 해야 하는 걸까? 

경수는 종인이 자기를 좋아하게 되어서 사귀게 된 거냐고 물었을 때,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애매한 이 감정을 맞다고 치부해 버리는 것이 과연 옳은 걸까.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면 김종인은 저와 사귀는 것에 왜 응했는지 물어볼 것이다. 그땐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너와의 키스가 흥분돼서 그랬다고? 그런 말을 어떻게 하느냔 말이다. 그래서 그때 경수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종인은 약간 실망한 듯 보였다.












율이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