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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카포(da capo) 14

Kai x D.o.

[카디] 다 카포(da capo) 14

W. 율이



고요한 적막을 시끄럽게 채우는 휴대폰 벨 소리는 격렬한 섹스에 지쳐 잠들었던 경수를 깨우는 데 충분했다. 창밖을 바라보니 어둑한 새벽녘이었다. 새벽 한두 시쯤 되었을까, 집은 여전히 소주병으로 어지럽혀져 있고 섹스 후의 두 남자는 나신의 상태로 이불만 돌돌 말고 있던 상태였다. 잠이 들면 안 됐었는데. 경수가 다급히 두 눈으로 집안을 헤맸지만, 종인의 아버지는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은 듯했다. 경수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여전히 시끄럽게 울리는 제 것이 아닌 휴대폰을 보니 전화의 발신지는 저장되어있지 않은 곳이었다. 

김종인, 일어나. 너 전화 왔다. 경수가 종인을 흔들어 깨우자 종인이 왜에··· 하며 뒤척였다. 전화는 한 번 끊겼지만 이내 또다시 시끄럽게 울려댔다. 경수가 어쩔 수 없이 수신 버튼을 누르고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하지만 그 소식은 안도할만한 것이 아니었다.

- 김두환 씨 아드님 되시나요? 서울삼서병원 응급실입니다.




*




새벽 두 시 십일분,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청춘의 밤, 늦어가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응급 환자들은 속출했다. 삐용삐용- 경찰과 구급차가 나란히 질주하는 소리, 24시간 꺼질 줄 모르고 환하게 일렁이는 병원 응급실의 풍경, 마스카라가 다 번진 눈으로 엉엉 울고 있는 20대 여성, 다친 팔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나이 불명의 남성, 그리고 속속히 응급실을 드나드는 사람들- 경수는 그 풍경을 뒤로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김종인은 소식을 듣자마자 질겁을 하며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가 팬티 차림으로 밖에 나가려는 걸 경수가 다급히 붙잡았다. 

경수가 집 앞에 도착해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니, 종인의 아버지는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고 했다. 다행히도. 일을 마친 후, 몇몇 동료들과 술자리를 가지고 집으로 향하는 도중에 쓰러진 걸 동료가 병원으로 호송했다고 했다. 종인은 아무래도 아버지의 몸 상태가 신경 쓰지 못하던 사이 많이 쇠약해진 것 같다며 덧붙였다. 



경수는 집 안으로 들어가길 한참을 머뭇거리고 있었다. 사실 그가 새벽에 종인의 집에서 나온 후 본인의 휴대폰을 확인했을 때, 왜 집에 안 들어오냐는 어머니의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수십 통 쌓여 있었는데,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애초에 김종인과 술을 마실 생각도 없었고, 섹스를 할 생각은 더더욱 없었으며, 밤늦게까지 집에 돌아가지 않을 생각 또한 없었다. 그래서 부모에게 늦는다며 문자 한 통 보내지 않았던 건데 너무나도 고단했던 나머지 잠들어 버린 것이었다. 조용히 집에 들어간다 해도 경수를 걱정한 부모가 지금까지 깨어있지 않으리라는 보장 따윈 없었고, 어쩌면 호들갑스러운 부모가 그사이 연락이 안 된다며 실종 신고까지 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경수가 문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별다른 방법은 없었다. 더 일 커지기 전에 집으로 들어가는 것밖엔.

제발 부모가 먼저 잠들었길 바라며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갔을 땐, 절망적이게도 거실의 불은 환하게 켜져 있었다. 그리고 경수의 고막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어머니의 목소리. 경수는 스스로 고개를 떨궜다.



결국 뭐, 잔뜩 혼났다. 그러고 나서 방 안으로 돌아오니 제 침대가 대단히 편하게 느껴졌다. 침대에 무심코 털썩 주저앉았다가 아래에 불 날 뻔했지만··· 밀려오는 나른함에 그 감각은 금세 잊혀졌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경수가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을 적의 꿈. 


단정하게 차려입은 교복과 짧게 깎은 머리카락은 경수가 갓 중학생이 되었다는 것을 티 내고 있었다. 경수가 일찍이 조퇴를 하고 병원에 들른 것은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날따라 속이 쓰렸다. 더 이상 학교에선 속에서 올라오는 쓰라림과 수업시간의 지루함이 맞물려 버티기 힘들 것이라는 걸 진즉에 깨닫고 병원으로 향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사실 병원에는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진단서를 꼭 떼어오라는 담임 선생의 말에 어쩔 수 없이 간 것이었다. 이름이 불릴 때까지 병원 로비에 무료하게 앉아있자 작은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볼 수 있었다. 세상일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주는 뉴스 따윈 눈곱만큼도 관심 없었지만, 아무것도 할 게 없었던 탓에 그저 쳐다보고만 있었다. 마침 나오던 것은 한 여성이 성폭행당한 후 잔인하게 살해당했다는 범죄 뉴스였다. 로비에 앉아있던 모두가 그것을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변사체가 모자이크 처리되어 어렴풋이 등장했을 땐, 뉴스를 보고 있던 전원이 피해자를 향해 아쉬운 소리로 안타까움을 표했다. 아니, 전원은 아니다. 경수는 그러지 않았으니까. 

안됐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제가 얼굴도 모르는 저 여자가 죽은 것에 대체 어떤 감정이 더 들어야 하는가. 얼굴도, 이름도 모를 피해자의 죽음에 대한 애도보단, 범죄를 저질러놓고 도망간 살인마가 잡혔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컸다. 요즘은 씨씨티비도 다 있을 텐데, 금방 잡힐 범죄를 왜 저질렀을까? 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그냥 싸이코패스의 묻지마 범죄일 뿐일까? 사실 그조차도 깊게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경수가 그 뉴스를 보고 느낀 것은 그게 다였다. 

그 이후로도 그랬다. 여자가 죽어 나가든, 남자가 죽어 나가든, 그것도 아니면 고양이가 죽어 나가든. 아니, 사실 동물이 죽었을 땐 조금 불쌍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적어도 저와 안면도 없는 사람들보단 귀여운 생명체니까. 

이게 도경수였다. 그리고 지금의 도경수이자, 다가올 미래의 변함없는 도경수일 것이다. 누군가 너는 지나치게 비인간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소년. 도경수.




*




종인이 미나를 다시 만난 것은 일요일 오후, 경수를 만나러 그의 집으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항상 이 동네만 오면 김미나를 만나는 것 같음은 기분 탓이 아닐 것이다. 이번에도 먼저 아는 채를 한 것은 미나였다.

"도경수 만나러 가냐?"

평소와는 다르게 머리를 양 갈래로 단정히 땋아 내린 미나가 재킷 주머니에 두 손을 꼽고 종인을 쳐다보며 물었다. 

"어, 아 그리고 내 연애 이제 안 도와줘도 돼."

"왜? 너 포기했어?"

"아니!"

"그럼?"

"나··· 경수랑 사귀게 됐거든."

종인이 수줍게 말하자 미나가 토끼 눈을 뜨고 되물었다. 뭐어? 하고. 그래서 종인이 다시 한번 '그렇게 됐어.'하고 답했다. 그에 미나는 의외인 듯, 그리고 즐거운 듯 웃었다. 그 웃음이 시원해 보여서 종인은 멀뚱히 그녀를 응시했다. 

"그래도 내가 친구 하자고 한 건 무르는 거 아니지?"

미나가 종인의 어깨를 장난스럽게 한 대 치며 말했다.

"어··· 그래, 뭐···."

종인이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아, 그리고 나도 데이트하러 간다! 도경수도 연애한다는데 내가 안 하면 이상하지. 안 그러냐?"

"경수가 뭐가 어때서!"

"지 남친이라고 편 드는 것 봐."

"그럼 내가 네 편을 들겠냐?"

"됐어, 싸가지. 나 간다. 다음에 보자!"

그에 종인이 '싸가지는 너잖아!' 하고 투정 부렸지만 미나는 아랑곳 않고 양손을 흔들며 멀어져갔다. 




*




미나가 새 남자친구를 사귄 것은 최근이었다. 그는 미나에게 퍽 잘해주는 대학생 오빠였는데, 웬일로 책을 보겠다며 갔던 도서관에서 만났다. 먼저 번호를 따인 쪽은 미나였다. 평소에도 마주할 수 있는 숱한 일이어서 처음에는 그냥 지나치려고 했으나, 얼굴이 꽤 반반하고 키도 큰 게 사귀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받아들였던 것이다. 만나다 보니 사람도 좋고 유머 감각도 있어서 호감을 주게 되었지만.

아무튼 미나는 오늘도 그를 만나는 데 신경을 꽤 썼다. 치마도 입고 평소엔 하지도 않는 양 갈래머리도 했다. 덕분에 만나자마자 귀엽다는 말을 들어서 기분이 더 좋아졌다. 앞으로도 자주 해야지. 그리고 평소와 다름없는 데이트를 시작했다.




*




그 시각 종인이 경수의 집에 발을 들인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경수의 부모님은 매주 주말마다 골프를 치러 나갔다가 늦은 저녁이 다 되어서야 돌아오신다고 했다. 그때까지 집에 놀러 와 있어도 된다는 경수의 말에 마침 아버지도 퇴원하셔서 집에 모셔다드리고 옳다구나 하고 온 것이었다. 

종인은 문득 피아노를 치는 경수의 모습이 보고 싶었다. 피아노 전공을 한다고 들었는데 이제까지 단 한 번도 그가 피아노 치는 것을 보지 못했던 탓이었다.

"도경수, 나 피아노 쳐 줘."

"갑자기?"

"한 번도 못 봤잖아."

그리고 어렵지 않게 종인의 소박했던 꿈은 이루어졌다. 


즉흥 환상곡. 클래식과 친하지 않은 종인도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것이었다. 섬세하면서도 강렬하게 건반을 누를 때마다 적막을 가득 메우는 전율은 아름답다고 표현하기도 부족할 정도로 황홀했다. 멋있다. 경수에게 멋있다는 형용사를 쓴 적이 있었던가. 지금 이 순간의 도경수는 귀엽다도 아니고 예쁘다도 아니고 사랑스럽다도 아닌, 멋있다라는 형용사만이 그를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짧게 끊은 연주가 끝나자 종인이 박수갈채를 보내왔다. 경수가 머쓱하게 피아노 의자에서 내려왔을 때, 종인이 경수의 얼굴에 뽀뽀를 퍼부었다. 경수가 잠깐 인상을 찌푸리며 얼굴을 뺐지만 종인은 막무가내였다. 그러고선,

"진짜 멋있다, 진짜."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종인은 이 순간이 아주 행복하다고 느꼈다. 먼저 제집에 와도 된다고 말했던 도경수, 종인의 요구에 선뜻 피아노 앞에 앉아줬던 도경수와 함께하는 이 순간이, 그 어떤 애인들과 함께했을 때보다. 








본가에 가 있었던 바람에 15편이 늦어졌습니다. 

화요일에서 수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에 올라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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