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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카포(da capo) 15

Kai x D.o.

[카디] 다 카포(da capo) 15

W. 율이



변백현.

평범한 평일, 백현과 그의 무리는 사람이 자주 드나들지 않는 학교의 외진 주차장 구석에 쭈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햇볕이 쨍쨍하게 내리쬐는 한낮이었다. 곧 점심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타종이 울릴 것이 분명했지만, 이대로라면 5교시 수업은 들어가지 않을 것도 분명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4월에 들어선 지 일주일 정도 되는 지금, 아마 백현의 초짜 담임 선생은 그를 제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포기했을 것이다.

백현은 구석에 주저앉아 담배를 물고 휴대폰을 하는 것에 집중했지만, 그가 속한 무리의 다른 친구들은 휴대폰 이외의 다른 즐길만한 것들을 찾고 있었다. 예를 들면 지나가는 1학년 괴롭히기 등의 하찮은 일들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백현은 친구들과 달리 그런 것엔 흥미가 없었다. 무리 중 한 명이 이번 양아치 짓의 불쌍한 희생자로 결정된 신입생을 거만하게 부르자, 백현은 여느 때처럼 그들에게 유치한 짓 언제쯤 관둘 거냐며 한마디 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그 자리를 떴다. 아무리 제 친구들이라지만 한심하기 짝이 없다.


백현이 유유하게 학교 운동장 구석에 있는 그늘진 벤치에 걸터앉자 마침 점심시간을 끝내는 종이 울렸다. 그러고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아까 제 무리에게 불려갔던 운 없는 신입생이 터덜터덜 주차장을 빠져나오는 것을 목격했다. 아마 그들은 저 신입생의 코 묻은 돈이나 빼앗았을 것이다. 그리고 백현이 낙심한 듯 건물 안으로 향하는 신입생을 제 쪽으로 부른 것은, 그 신입생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얼마 뜯겼냐?"

백현이 여전히 벤치에 걸터앉은 채 묻자, 신입생은 조금 긴장한 듯 보였다. 조금 전에 삥 뜯긴 걸로도 모자라 또다시 갈취당할 거라 생각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는 조금 떨면서 대답했다. 이··· 이만 원이요···.

신입생이 벌벌 떨며 제 발밑을 보고 있던 사이, 백현은 만 원짜리 지폐를 두 장 꺼내어 그에게 쥐여줬다. 그러면서도 제 행동이 우스워 아무 말 하지 않고 떨떠름하게 서 있던 신입생을 고갯짓으로 돌려보냈다. 이건 뭘까. 정의?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면 안 된다는 그런 히어로물에나 나오는 정의 말인가? 정의를 행할 거라면 애초에 그 신입생이 제 무리에게 불려오는 것을 제지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 백현이 했던 행동은 무엇인가. 약자를 향한 연민? 동정? 그것도 아니면 돈이 남아돌아서?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별 이유 없이 희생당했던 피해자에 대한 연민이자 동정이고, 제가 행할 수 있었던 최선의 정의였을 것이다. 

백현이 제 친구들이 무서워서 그들을 처음부터 제재하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 저를 비웃던 무리에게 모래 한 움큼을 용감하게 집어 던졌던 소년이자, 앞으로도 저를 괴롭히는 것이 있다면 강하게 맞설 수 있는 소년일 것이다. 백현은 벤치에 드러누워 눈을 감았다. 살랑이며 부는 봄바람이 머리칼을 스쳐 얼굴을 간지럽혔지만 일어나진 않았다.




*




언젠가 으슥한 골목길에서 집단 폭행을 당하고 있던 중학생을 구해준 적이 있었다. 그의 부모님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백현에게 말했다.

- 고마워요.


후에 경수는 백현에게 너도 맞으면 어쩌려고 무모한 짓을 했냐고 했다. 그리고 그는 뒤에 한마디 더 덧붙였다.

- 때린 놈들도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르지.

백현은 그때 처음으로 도경수가 지나치게 비인간적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도경수는 잔인한 살인 현장을 목격하고도 피해자의 입장이 아닌 가해자의 입장을 대변할지도 모르겠는 놈이라고. 도경수가 왜 저렇게 말했는지 묻는다면, 아마 그는 이렇게 대답할지도 모른다. 어렸을 적, 변백현이 저에게 모래를 집어 던진 것도 무언가 이유가 있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었냐고. 하지만 그것과 지금 이 상황이 과연 같은 것일까. 적어도 백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백현이 생각했던 것은 후에 경수와 싸우게 되었을 때 그대로 내뱉게 된다. 도경수 넌 정말 지나치게 비인간적이야! 하고.

그럼에도 백현이 경수와 계속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경수의 단점이자 장점인 폭넓은 이해심에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타인에 대한 무관심일지도 모르겠지만. 뭐, 그것도 그러했고 도경수가 평소 예의 바르게 행동한다는 것은 그의 곁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다 알법한 것이었다. 누군가 멀리서 이들을 지켜본다면, 어딘가 정의감 넘칠지 몰라도 학생이 준수해야 할 교사의 말에 불응하고 무단결석이나 일삼는 변백현보단 냉정한 면은 있어도 매사 성실하고 예의 바른 도경수를 더 우수하게 볼 것이다.




*




백현은 제 얼굴 위로 드리우는 그림자에 어렴풋이 눈을 떴다. 미나가 있었다. 몇 교시쯤 되었을까 하는 잡생각에 빠져있는데 미나가 불쑥 말했다. 

"너 유급 당하고 싶냐?"

미나가 물었지만 백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하품을 쩌억 했다. 그러자 미나가 조금 더 크게 얘기했다.

"어? 나랑 도경수는 고등학교 졸업하는데 너는 1년 더 다니고 싶냐고!"

이 잔소리 이젠 안 할 때 안 되었나··· 미나가 지겹도록 백현에게 잔소리를 해대기 시작한 건 그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안 하던 지각이나 무단결석을 하는 둥, 조금씩 엇나가기 시작했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백현이 지각하는 것에 별 신경 안 쓰는가 싶어서 포기한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그것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벌써 스무 번은 듣는 듯한 그놈의 유급 소리에 백현이 한 번 더 쩌억 하품을 했다. 그러자 미나가 백현의 입을 손바닥으로 툭툭 치며 그를 노려보았다.

"아, 야!!"

"그러니까 학교 좀 제대로 쳐 다니라고!"

그러고는 저 혼자 반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백현은 정말이지 김미나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도 저 발랄한 성질머리 한 번 바뀐 적 없다고 생각하며 그녀를 따라 뭉그적뭉그적 교실로 돌아갔다. 




*




"너 아직도 그 질 나쁜 애들이랑 만나는 거 아니지?"

종인이 대뜸 경수에게 물었다. 덕분에 경수가 문제집에 박고 있던 고개를 들어 종인을 쳐다봤다. 경수는 급식을 다 먹고 남은 점심시간엔 알아서 자습을 했다. 몇 날 며칠을 그래왔지만 종인은 여전히 이 시간이 지루한 모양이었다. 평소 같으면 점심 빨리 먹고 박찬열이랑 애들이랑 축구 한 판 뛰는 건데···. 종인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역시 그것보단 지루해도 도경수 얼굴이나 쳐다보고 있는 게 더 좋았다. 그래서 오늘도 별다를 것 없이 경수의 동글동글한 얼굴이나 쳐다보며 시간을 때우고 있는데 문득 생각난 것이다. 그때 목격했던 불량학생 파티 현장이!

"이제 안 만나."

그리고 종인이 걱정한 것과는 다르게 경수가 단호하게 답했다. 정확히 왜 안 만나는지는 모르지만, 접때 종인이 만나지 말라고 한 것 때문에 정말로 만나지 않는 걸까 하며 혼자 김칫국이나 마시고 있자, 경수가 종인을 빤히 응시했다.

"왜, 왜 쳐다봐? 부끄럽게···."

"아니··· 그냥."

경수는 다시 문제집으로 눈길을 돌렸다. 경수는 저번에 종인이 물었던 것을 떠올렸다. 너도 나를 좋아하냐고. 나는 너를 이렇게 좋아하게 되었는데, 너는 여전히 그렇지 않냐고. 하지만 경수는 그때조차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김종인과의 섹스가 싫었냐고? 그렇지 않았다. 그러면 좋았냐고? 여전히 그것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쯤 되면 그냥 좋아하는 거라고 하는 게 덜 복잡하지 않을까. 경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




그리고 그사이 민석의 안부.

민석이 범죄 스릴러 장르의 소설을 읽는 것에 재미를 들인 것은 최근이었다. 민석은 무언가 몰입을 하면 쉽게 헤어나오지 못할 정도로 깊게 빠져드는 타입이었다. 살인마의 심리 묘사라든가, 범인과 형사 간의 대립, 그리고 흥미를 돋우는 각종 범죄 현장의 자세한 묘사는 민석이 이 장르 소설에 빠지게 된 이유였다. 그렇다고 실제 범죄 현장을 보고 흥미를 느낀다거나, 희열을 느낀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소설은 말 그대로 소설일 뿐이다. 범죄 스릴러 애호가들이 모두 싸이코패스가 아닌 것처럼, 민석도 그들과 같은, 한 픽션 장르를 즐기는 일반적인 부류 중 하나일 뿐이었다.

가끔 동생은 제 방에 들어와 책 몇 권을 뒤적거리고 나가곤 했다. 어차피 읽지도 않겠지만 괜히 심심해서 그러는 거라는 걸 민석은 잘 알고 있었다. 어쨌거나 최근엔 그러지 않았다. 동생에게 남자친구라도 생긴 모양이었다. 미나는 매주 주말이면 한껏 꾸며서 집을 나섰다. 부모님이 잠깐 걱정하시긴 했지만 어련히 알아서 잘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그것도 곧 그만두셨다.



- 선배님, 저··· 번호 주실 수 있으세요?

그것은 민석이 동아리방에 나른하게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던 때였다. 동아리에 갓 가입한 신입생이 민석을 향해 수줍게 물어왔다. 그녀는 민석을 따라 이 동아리에 가입한 듯했다.

- 왜?

연유야 짐작하고 있었지만 민석은 모르겠다는 듯 희게 웃으며 물었다. 

- 여··· 여자친구 없으시면···.

- 여자친구는 없는데 만들 생각도 없어.

민석이 여전히 미소를 띤 채로 대답하자 여학생은 약간 당황한 듯 동아리실을 빠져나갔다. 그 이후로 민석은 동아리실에서 그 여학생을 볼 수 없었다. 

민석이 그녀의 고백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첫째, 그 여학생을 좋아하지 않는다. 둘째, 정말로 여자친구 따윈 만들 생각이 없다. 그렇다면 남자친구는? 하고 묻는다면 민석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여자든 남자든 애인 따윈 만들 생각 없다고. 

그런 민석이 경수의 소식을 알게 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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