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다 카포(da capo) 21

Kai x D.o.

[카디] 다 카포(da capo) 21

W. 율이



백현은 학교 책상에 멀뚱히 걸터앉아 휑하게 비어있는 미나의 자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미나가 학교에 나오지 않은 게 이틀째였다. 백현의 초짜 담임 선생님은 평소 흔히 볼 수 없었던 미나의 무단결석을 크게 걱정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녀를 걱정한 것은 담임 선생뿐만은 아니었다. 미나의 연이은 무단결석으로 반은 꽤 술렁이고 있었다. 평소 그럴 애가 아니었는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 아니야? 담임 선생이 학교 전화와 개인 휴대폰으로 미나의 부모에게 여러 번 연락해 봤지만, 그들은 단 한 번도 받지 않았다. 그쯤 되니 미나가 의도적으로 그 전화를 모두 차단해 놓은 것이라고 추측하게 되었다. 그래서 찾아가 볼 생각이었다. 김미나 지금 뭐 하고 있는지. 연락을 해도 받지도 않고, 카톡은 보지도 않고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함께 지내왔던 도경수는 말할 것도 없고, 열 살쯔음 부터 투덕거리긴 했어도 크게 싸우지 않고 잘 지내왔던 미나 또한 소중한 친구였다. 지금 제 옆에서 야한 사이트 이야기나, 엊그제 모였던 민증 검사를 하지 않는 술집 이야기나 하는 이 친구들보다, 제가 유급당할 걸 걱정하던 김미나가 훨씬 더 소중한 친구라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서로 단 한 번도 이성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이렇게 오랫동안 미나와 친구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저를 좋아해 이것저것 다 퍼부어주는 남자애들이 아닌, 오롯이 친구를 갈구하던 미나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그것을 쉽사리 충족시켜 줄 수 있었던 사람이 변백현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친구. 그것은 이들의 관계를 표현하기에 아주 적절한 단어였다. 


그리고 백현이 정말로 미나를 찾은 것은 그가 무단으로 학교를 빠져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각이었다. 백현이 가장 최근에 휴대폰 시계를 들여다봤을 땐, 오전 열한 시를 막 지나고 있었다. 그리고 미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정말로 아무것도.

"김미나, 너 여기서 뭐 해?"

그녀는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멘 채로 공원 쓰레기통 옆 벤치에 앉아있었다. 표정에는 아무런 빛도 서려 있지 않았으며, 아무런 웃음기도 남아 있지 않았다. 백현의 기척에 미나가 아무런 표정도 남아 있지 않은 얼굴로 백현을 바라봤다. 

"여기서 뭐 하냐고."

"··· 아무것도 안 해."

"학교 안 가?"

"가기 싫어."

"너 나한테 유급당하고 싶냐고 열심히 수업 들으라며. 너도 유급당하고 싶어?"

"상관없어."

평소와는 다르게 낮게 깔린 미나의 목소리는 약간 쉬어있었다. 비쩍 하고 갈라지던 미나의 목소리는 알맹이가 차 있지 않은 빈 돌멩이처럼 영양가 없이 새어 나왔다. 미나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백현이 밥 먹듯 수업을 빠지던 사이, 그리고 더운 봄날에 들어서던 사이. 

"너 무슨 일 있어?"

"··· 없어. 백현아, 나 아무 일도 없었어."

"······."

"그러니까 제발 묻지 마··· 제발 나를 괴롭히지 마···."




*




"이거 영어 기호 뭐야?"

경수가 자리에 앉아 악보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종인이 불쑥 물었다. 

"다 카포."

"그게 뭔데?"

"처음부터 다시."

경수가 여전히 악보에 눈을 고정한 채 중얼거리자 종인이 흐응··· 하고 소리 내며 경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왔다. 보는 눈이 많은 학교여서 제지할 법도 했지만, 경수는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러고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 종인이 나른하게 중얼거렸다.

"왠지 슬프네, 그거."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기에 경수가 뭐가? 하고 되물었다. 

"쌓아 놓은 걸 처음부터 다시 한다는 거. 슬프다고."

종인의 말에 경수가 그의 머리를 밀어내며 피식 웃었다. 덕분에 경수의 어깨에서 떨어져 나가게 된 종인이었지만, 뭐가 좋은지 헤실헤실 웃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경수가 종인의 얼굴을 쳐다보며 한마디 했다.

"너 진짜 안 어울리게 감성적이다."

"그럼 내가 어떨 것 같았는데?!"

경수의 말에 종인이 약간 흥분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감성적이지 않아 보였으면, 막 냉철해 보이고 막? 이성적으로 보이고 그랬나? 그러면 내 첫인상은 어땠는데? 솔직히 나 꽤 멋있다고 생각했지? 종인의 말에 경수가 정말로 어이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냥 나보다 학교 빨리 오는 애."

"어?"

"그러고 잠이나 자는 애."

멋있었긴 개뿔. 그 말을 듣고 있다 보니 도경수의 눈엔 이성적이긴 무슨 아주 최고 잠탱이로 보였을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종인이 입술을 대발 내밀며 말했다. 나는 너 꽤 귀엽다고 생각했는데. 하고.

"그거 생각났어. 학기 초였나? 네가 나 계속 쳐다봤잖아."

"그래서 네가 '뭘 봐?' 이랬잖아."

경수가 종인의 말투를 은근히 따라 하며 대답했다.

"응. 그때 난 네가 귀엽다고 생각했었어. 동글동글해서. 근데 넌 그때 나 왜 계속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냥. 신기해서."

"뭐가?"

"어떻게 그렇게 많이 잘 수 있는지가."

"······."

정말 도경수에겐 제가 한심해 보였겠구나. 종인은 더 이상 도경수와 대화하다간 자존감이 추락할 것 같다고 생각하여 이야기하기를 관뒀다. 도경수는 정말 너무할 정도로 솔직하다. 이럴 땐 좀 포장해서 말해주면 뭐 어때. 하지만 아무래도 김종인은 도경수의 그런 면을 좋아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어도 종인은 여전히 좋아했을 것이다. 도경수는 도경수여서 좋은 거지, 이러해서 좋고 저러해서 좋은 게 아니다. 종인은 문득 그의 볼에 뽀뽀를 퍼붓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나, 학교였기 때문에 그것도 관뒀다. 쉬는 시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




미나는 조금 외진 골목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며칠 전 미나에게 도착한 협박 문자는 손을 덜덜 떨며 삭제했지만, 여전히 머릿속에선 지워지지 않은 채 더러운 흉터을 남기고 있었다. 미나는 당시 제가 어떻게 처참하게 꺾인 풀처럼 흔들리고 있었는지도, 그 와중에 어떠한 흔적이 남겨지고 있었는지도 알지 못했다. 기절했었으니까. 그랬을 정도로 무서웠으니까. 하지만 그 흔적은 괴물의 손에 만들어져 미나에게 전달되었다. 나체 사진, 그리고 재생하기도 싫었을 동영상들. 번호는 모르는 번호로 왔다. 하지만 그것이 저를 강간한 괴물일 거라는 사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것들을 증거로 다 가져가서 경찰서에 신고해 버리면? 그 골목에 씨씨티비 한 대쯤은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것들이 무슨 소용인가. 이미 나는 처참하게 꺾여버렸는데. 

알려지는 것이 무서웠다. 부모님이 이 비극을 아는 것이 싫었고, 오빠가 아는 것이 싫었고, 도경수가, 변백현이 아는 것이 싫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는 것이 싫었다. 그들이 나를 불쌍히 여기며 바라볼 것도 싫었고, 제삼자에게 성폭행 피해자로 낙인찍히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제 나체 사진과 함께 협박문자가 왔을 때도 주저하지 않고 그것을 삭제했다. 무서웠다. 

동영상과 사진이 유포되는 것이 싫으면 특정 장소로 나오라는 문자에 무슨 일이 더 벌어질지 예상하면서도 그것에 응하는 것보다, 그 모든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더 무서웠다. 그렇다면 이것은 미나의 잘못일까. 이곳에 나가면 또 어떤 비참한 일을 당할지 알면서도 알려질 게 무서워 응한 것은, 미나의 잘못일까. 그것은 오롯이 미나가 선택한 비극일까. 그랬을까.


그리고 예상했던 일은 예상했던 것처럼 또다시 일어났다. 괴물은 더욱 대범해졌다. 이제는 미성년자를 데리고 모텔에 들어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괴물은 징글징글한 구덩이에 미나를 끌고 들어가기 바로 전까지도 협박투로 미나를 조롱했다. 

- 너도 좋아서 나온 거지? 왜? 내 게 잊히지가 않았니? 어? 걸레년. 맞잖아. 창년. 어디 입 놀리고 다니기만 해. 나만 안 죽어. 너도 죽어.




*




피아노 강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어두컴컴한 밤이었다. 경수는 종인의 집이 위치한 험한 골목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예전엔 여기 되게 무서웠는데, 이제는 이 주변을 다 아니 별로 무섭지도 않게 느껴졌다. 불이 꺼질 듯 말 듯 한 가로등을 지나자, 종인의 형상을 한 사람이 손을 흔들며 이곳으로 뛰어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도경수!"

"응."

헤어진 지 얼마나 되었다고 반갑다며 와락 경수를 끌어안는 종인의 가슴팍에선 담배 냄새가 옅게 남아있었다. 

"앞으로도 너 학원 마치면 이쪽으로 오면 되겠다. 나는 너 봐서 좋고, 너는 밤길 무서울 텐데 든든한 보디가드가 데려다줘서 좋고."

종인이 뿌듯한 듯 웃으며 말했다. 든든한 보디가드··· 솔직히 도경수보다 김종인이 더 겁 많을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그런 건 상관없었다. 괜히 김종인이 할 말 없으니까 덧붙인 걸 테니까.

"그래, 그럼."

경수가 별말 없이 대답하자, 종인은 실실 웃으며 경수의 머리통에 뽀뽀를 퍼부었다. 경수는 언제나 그의 웃는 모습을 보곤 생각했다. 김종인, 정말이지 애 같다고. 이렇게 어린아이 같은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것도 김종인이 유일할 거다. 마치 때 타지 않은 듯한 그런 웃음. 언제나 나도 함께 웃게 만드는 그런 웃음.




"경수야 내가 생각해 봤는데."

종인이 나른하게 걸으며 말했다.

"응."

"내가 너를 처음부터 다시 만난다면, 너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또 무슨 감성적인 말을 하려고."

"야 도경수, 넌 진짜 분위기 깬다."

종인의 말에 경수가 킥킥 웃었다. 왜, 맞잖아. 너 또 오글거리는 말 하려고 그러지. 경수가 종인의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말하자 종인이 경수를 잠시 째려보며 소리쳤다. 그런 거 아니야!! 그러고선 다시 진지해져 말을 잇는 것이었다. 

"근데 난 그래도 너를 좋아하게 되었을 거야."

"그런 거 아니긴 뭐가 아니야. 맞구만."

"아 도경수 좀!!"

종인이 진지하게 소리치자 경수가 또다시 큭큭 웃었다. 얼굴이 붉어진 채 길길이 날뛰는 김종인이 귀엽게 보였다. 키도 크고 덩치도 경수보다 큰데 하는 짓은 도경수랑 정 반대다. 

"그래서 도경수 너는?"

이번엔 종인이 경수의 눈을 마주하며 물었다. 경수는 종인의 눈빛이 꽤 진지하다는 것을 느꼈다.

"··· 글쎄."

그래서 이번에는 경수도 웃음기를 비운 채 답했다. 글쎄. 종인은 그 대답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경수가 직감한 대로 종인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을까."

"······."

"나도 너랑 같지 않았을까."

경수는 종인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지만, 종인이 경수의 얼굴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다는 것은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시선은 아주 뜨겁게 경수에게 전달되어져 왔다.


"나는 지금도 너를 이렇게 좋아하게 되었으니까."

마침내 경수가 마지막 말을 덧붙이자, 종인이 그 자리에서 경수의 입술을 세게 물어왔다.


도경수, 너를 정말이지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어. 하고.












율이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