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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카포(da capo) 22

Kai x D.o.

[카디] 다 카포(da capo) 22

W. 율이



봄날처럼 맑았던 하늘에 회색빛 구름이 뒤덮이고, 조금씩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은, 민석이 집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오늘 비 온다고 했었던가. 우산 안 가져 왔는데.

민석이 후배를 만나기로 약속을 잡은 건 엊그제였다. 제안은 후배가 먼저 했다. '오빠 저랑 모레 영화 보러 갈래요?' 이렇게 온 메시지의 발신자가 '혜주'라고 떠 있었지만, 민석은 이 '혜주'라는 아이가 누구였는지 잠시 생각할 시간을 거쳐야 했다. 그렇다고 오래 생각한 건 아니지만, 바로 떠오르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달력을 보자 후배가 말한 날은 빨간 날이었다. 5월 5일. 그러니까, 어린이날. 이날은 영화관에 사람이 많을 텐데. 민석은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지. 어쨌든 민석은 알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민석이 시계를 확인하니 1시 15분을 조금 넘기고 있었다. 영화는 2시 10분. 영화관까지는 여기서 20분이면 가니 아직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 빗방울은 점차 세게 곤두박질치려 하고 있고, 시간도 남은 마당에 요 앞 편의점에서 우산이라도 하나 사가자고 생각하며 편의점에 들어섰을 땐, 낯설면서도 어딘가 강렬하게 남아있는 인상의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 애, 김종인이라고 했었나?

"안녕?"

민석이 먼저 아는 채를 하자 그제서야 김종인이 민석을 바라봤다. 그는 담배를 구입하려고 하는 듯 보였다. 쟤 고등학생인데 여긴 민증 검사도 안 하나. 솔직히 저 애 고등학생처럼 안 보이긴 한다. 경수와 함께 있던 걸 목격했을 때도 사실 경수보다 연상인 줄 알았으니까. 

"안녕하세요."

김종인 또한 민석을 기억하는 듯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막 계산하려던 알바생의 손에 들린 담배를 민석에게 내보였다는 것에 잠시 당황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이미 들킨 걸 어떡하나 싶었는지 금방 당황하는 것도 포기한 듯 보였다. 종인이 알바생에게 카드 한 장을 내밀려고 하는 찰나, 민석이 종인을 제지했다.

"이걸로 계산해 주세요. 그리고 이거, 비닐우산도 하나 살게요. 그거랑 같이 계산해 주세요."

그리고 종인은 민석이 모든 계산을 끝마치고 편의점 밖으로 나올 때까지, 아무런 말도 않고 있었다. 그저 조용히 민석을 따를 뿐이었다. 그 시각 종인은 민석이 담배에 대해 한 소리 하려나 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딱히 틀린 생각도 아니었다.

"담배는 몸에 안 좋아."

민석이 말했다.

"··· 그런 걸 모르는 사람은 없어요."

종인도 대답했다.

민석은 종인에게 구입한 담배를 내밀었다. 종인이 방금 안 좋다고 말했으면서 왜 돌려주냐는 표정으로 민석을 쳐다봤지만, 민석은 빙긋 웃고 있는 것 외에는 아무런 제스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종인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담배를 받아들자 민석이 물었다.

"나 알아?"

"네. 도경수 사촌 형이요."

"잘 아네."

"그리고 김미나 오빠라는 것도 들었어요."

"미나도 알아?"

"네."

민석은 약간 의외라고 생각했다. 미나에게 이런 친구가 있었던가. 하긴 최근에 동생에게 별로 신경을 안 썼던 건 사실이니 모를 만도 했다. 민석은 새로 산 비닐우산을 펴며 종인에게 물었다.

"비 오는데 우산 없어?"

"맞고 가도 상관없어요. 어차피 곧 도착하는데···."

"어디 가는데? 혹시 경수 집?"

"네."

종인의 대답에 민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민석이 담뱃값을 대신 계산한 건 딱히 별 의미는 없었다. 그냥 경수 친구··· 는 아니지만, 친구 같은 애인이라고도 하고, 저보다 어린 동생이라는데 만났으면 뭐 하나 사주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던 것뿐이다. 그게 담배였다는 점에서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아무튼 민석의 입장에서는 그랬다. 종인이 민석에게 다시 한번 꾸벅 인사를 한 후 후드를 뒤집어쓰고 뛰어가기 시작했을 때에도, 민석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민석의 휴대폰에서 잔잔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혜주. 민석이 전화를 받아들자 건너편에선 조금 급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비가 와서 버스가 조금 막혀요. 영화 시작하기 전까진 갈 수 있을 거예요. 죄송해요. 민석은 대답했다.

"늦어도 괜찮아."




*




종인이 경수의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경수는 거실 소파에 앉아 모바일 게임을 하고 있던 걸로 보였다. 도경수는 은근 게임을 자주 한다. 그렇다고 피씨 게임은 안 하는 것 같았지만, 가끔 보면 휴대폰을 들고 무언가 뿅뿅 누르고 있다. 도경수가 하는 휴대폰 게임의 종류는 은근 여럿 되는 것 같았다. 같은 색 점끼리 길을 찾아 잇는 게임이라든지, 음악에 맞춰 공이 움직이는 걸 액정을 터치해서 벽과 부딪히지 않게 잘 조종하는 거라든지, 애니팡처럼 같은 모양 세 개를 모아 터뜨려서 점수를 얻는 게임이라든지의 간단한 조작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켜 놓은 티비에는 그것이 알고 싶다 재방송이 방영되고 있었다. 도경수는 게임에 집중하느라 관심 없는 듯 보였지만. 종인은 경수의 무릎을 베고 누워 과자를 깨작거리며 티비 프로그램을 보는 것에 온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마침 프로그램에서 다루던 사건은 아직 범인이 잡히지 않은 몇십 년 전 미제 살인 사건이었다.


"저거 봐. 11년이나 지났는데 범인 못 잡았대. 진짜 가슴 찢어지겠다··· 만약 내 자식이 저렇게 죽었으면 진짜 나도 같이 죽었을 거야."

한참을 티비에 집중하던 종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종인은 제가 사건 피해자의 유족이 된 것 마냥 프로그램에 몰입한 듯 보였다. 여전히 모바일 게임을 하고 있던 경수가 종인을 힐끗 바라봤지만, 종인은 경수가 저를 쳐다보고 있는 줄도 모르는 듯했다. 처음엔 누워있었는데 어느새 앉아 곧 티비 속에 빨려 들어갈 것처럼 보이던 종인은 몇 마디 덧붙였다. 

"저런 새끼들은 꼭 벌 받아야 되는데. 꼭 잡았으면 좋겠다. 나쁜 새끼. 저 사람은 얼마나 아프게 갔을까··· 그치 경수야."

"··· 그러게."

그에 경수는 영혼 없는 대답을 내놓았지만.





"맞다, 나 아까 너네 사촌 형 만났다."

보던 프로그램이 다 끝나 할 것이 없어진 종인이 부엌에 앉아 방울토마토를 집어먹으며 말했다. 경수는 조금 출출해졌다고 생각했기에 라면을 끓이는 것에 열중하고 있었다. 경수가 계란을 들고 종인을 쳐다보자 종인이 넣어도 좋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민석이 형?"

"어. 근데 그 형 조금 이상한 것 같아."

"왜?"

"그 형이 내 담뱃값 대신 계산해줬어. 그러면서 뭐라는 줄 알아? 담배는 몸에 안 좋대."

종인은 정말 민석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보통 나이 많은 사람들은 미성년자가 담배 사는 걸 보면 혼내거나 말리는 게 정상 아니야? 아니면 한 대 피워볼래? 하고 권할 수는 있어도 그러면 몸에 안 좋으니까 피우지 말란 뉘앙스의 말은 하지 않지 않나? 떡하니 담배 한 갑을 사주면서 담배는 몸에 안 좋다니. 많이 피워서 빨리 죽으라는 의미일까? 설마 그렇지는 않겠지만. 하긴 김미나랑 남매면 좀 이상할 수도 있겠다. 종인은 미나를 떠올리고 나서야 혼자 납득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도경수는 킥킥 웃으며 '민석이 형이면 그랬을수도 있겠네.'하고 말했다.


경수가 끓인 라면은 정말로 미친듯이 맛있었다. 어떻게 같은 회사에서 나온 같은 라면인데도 제가 끓인 거랑은 이리도 다를 수 있지? 하고 생각하기까지 이르렀다. 라면이 이렇게 맛있을 수도 있나? 이건 정말 도경수 이름 걸고 팔아도 성공하겠다! 너 라면 전문 요리사 해라. 진짜 대박난다니까? 종인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서 경수에게 말했지만, 경수는 오버하지 말라며 종인을 타박했다. 오버 아닌데··· 진짠데···.




*




민석과 후배가 함께 본 영화는 나름 재미있었다. 흔한 로맨스 장르의 영화였는데, 적절한 코미디 요소도 섞으면서 전반적인 내용 자체를 지루하지 않게 이끌어갔다. 사실 영화는 민석이 정한 것이었다. 최근 연애에 관심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고, 로맨스 장르의 영화를 보면 무언가 영감을 얻는 데 좀 더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고른 것이었다. 

후배는 영화를 보던 중간에 은근슬쩍 민석의 손을 잡았다. 민석이 손을 빼지 않자 후배는 깍지를 끼는 것까지 도전했다. 손에 땀이 차는 게 불편했던 민석이 도중에 팝콘을 먹는다는 핑계로 슬쩍 놓아버렸지만. 후배는 그것에 약간 실망하고 있는 듯했다. 어쨌든 그런 것까지 민석이 눈치채진 못했다. 

그리고 민석은 슬슬 이 후배와 만나는 것에 약간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다. 영화 자체야 재미있었지만, 그렇다고 이 데이트 자체가 재미있다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후배는 예쁘고 성격도 이만하면 꽤 좋은 편에 속했으나 여전히 그녀를 좋아한다고 느끼지 못했고, 이제는 즐겁다고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으니, 민석은 슬슬 다른 사람을 찾아봐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나쁜 놈인가. 하지만 노력해도 마음이 따라주지 못하는 걸 어떡하냐는 말이다. 민석은 후배에게 말했다.

"주혜야 오늘은 그만 들어가자. 시간이 늦어서 부모님 걱정하시겠다."

하지만 민석은 말을 내뱉자마자 제가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혜주야."

하지만 후배는 민석이 금방 호칭을 고쳤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표정이 좋지 않았다. 사실 그건 당연한 걸 거다. 후배로서는 민석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을 테니까. 민석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 바람을 이루어주진 못할 것 같다.



그리고 결국 민석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던 이혜주 양은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 오후 5시도 안 됐는데 뭐가 시간이 늦었다는 거야. 나쁜 새끼. 핑계가 아무리 없어도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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