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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카포(da capo) 24

Kai x D.o.

[카디] 다 카포(da capo) 24

W. 율이



아무 일도 없었어. 웃으며 말하는 미나의 표정이 예전과는 어딘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고? 제발 나를 괴롭히지 말아 달라며 모습을 감추었던 너에게 아무런 일도 없었다고? 백현은 미나에게 필시 사건이 있었다고 추측했다. 어떠한 사건이든, 미나를 그토록 방황하게 만들. 아무것도 묻지 말아 달라고 했었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 것조차 저를 괴롭히는 거라며 그렇게 울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백현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말로 아무것도 묻지 않고 전처럼 지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어떻게든 알아내서 사건이 해결되지 않았다면 그녀를 돕고, 해결되었다면 다행이라며 미처 아물지 못했을 상처를 보듬어줘야 하는 걸까. 친구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하는가. 무엇이 맞는 선택인가. 하지만 백현은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껏 단 한 번도 그때처럼 울던 미나를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만큼 방황하던 미나를 본 게 그때가 처음이었으니까. 그래서 물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너 정말 무슨 일 있지."

백현의 물음에 미나가 백현을 지긋이 응시했다. 처음엔 아무것도 없는 표정으로, 이내 예쁘게 웃으며 아니. 하지만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쯤은 이제 깊게 분별하지 않아도 알 것이었다.

"나 너 우는 거 그때 처음 봤어. 무슨 일 있었으면 말 해도 돼."

"백현아."

"어."

"나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다니까?"

"김미나!!!"

하지만 백현은, 그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알지 못했던 것이다. 백현이 소리치는 순간 미나가 귀를 틀어막았다. 하지 마, 하지 마. 소리 지르지 마. 아이들이 없는 빈 교실의 적막은 가냘프게 떨리던 미나의 목소리로 매워졌다. 제발, 소리 지르지 마. 화내지 마.

"너 왜, 왜 그래."

백현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미나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이러지 마···.

무엇이 잘못된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마치 괴물이라도 본 것처럼 저를 보며 이리도 벌벌 떠는 미나의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었겠냐는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더 이상 묻지 않은 것은 맞는 선택이었을까. 백현은 지금으로부터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도, 이 선택을 확신할 수 없게 된다. 다른 선택을 했다면, 그 선택으로 결과가 바뀌었을까. 미나의 비극을 끝낼 수 있었을까. 아니, 어쩌면 말이다. 정말로 어쩌면 바뀌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럼 그건 여전히 내 잘못일까. 

그리고 그 나중의 상황은 뒤로하고, 지금의 백현은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놀라 뒷걸음치다 바닥에 주저앉아버린 미나를 일으켜 세우려 손을 뻗는 것으로 상황을 마무리하게 된다.




*




경수는 월요일의 무료한 체육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제 막 더워지는 시기에 운동장에서 땀 뻘뻘 흘려가며 축구 하는 것도 달갑지 않고, 그냥 강당에서 배드민턴이나 치면 좋겠다는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였다. 종인이 스탠드에 앉아있던 경수의 옆에 다가와 앉았다. 찬열 덕분에 벌써 축구 한판을 뛰고 온 탓에 축축이 젖어있던 종인은 땀을 흘리지 않아 보송보송한 경수의 팔뚝을 쓰다듬고 있었다. 

"그만 만져. 너 끈적거려서 싫어."

"그럼 시원한 데로 가자."

"수업 시간인데 어딜 가."

"어차피 선생은 몰라. 저 선생님 너 맨날 이렇게 수업 빼먹고 여기 앉아있는데 신경도 안 쓰잖아."

그건 그렇지···. 경수가 약간 수긍하자 종인이 대뜸 일어나 경수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디 가는데! 경수가 종인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지만 종인은 이미 시작된 일탈에 신난 듯 경수를 이끌고 학교 건물 안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종인의 손에 이끌려 온 곳이 이제는 수업을 진행하지 않는 오래된 음악실이었다. 예전에는 '음악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1, 2학년들이 음악 수업을 받던 곳이었으나, 경수와 종인이 입학하기 전 이루어졌던 대규모 공사 이후로 쓰지 않고 몇몇 물건들이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창고가 되어버린 곳이었다. 그럼에도 음악실 특유의 기다란 책상들이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어서 가끔 학생들은 수업을 빼먹고 농땡이 칠 때마다 이곳에 오곤 했다. 선생들이 잘 들락거리지 않는 곳이라는 것도 장점이었지만, 또 다른 장점은 이 교실의 에어컨이 중앙제어를 받지 않는다는 점에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아직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되는 날씨여서 거의 이용되지 않고 있었지만. 

"운동장보단 여기가 낫지?"

"넌 학교에서 매일 잠만 자면서 이런 델 어떻게 아냐?"

"애들이 알려줬어. 박찬열은 뭐 알아낸 거 있으면 맨날 와서 말해. 걘 그러다가 이런 거 선생님한테도 다 말할지도."


경수가 책상에 걸터앉자 종인이 경수의 옆에 꼭 붙어 앉았다. 시원한 데 오자고 했으면서 이러면 무슨 소용이냐고 경수가 약간 타박했지만 종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윽고 종인이 경수의 목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여기 학교야."

"아직 아무것도 안 했거든?"

"학교에선 스킨쉽 금지야."

"싫은데."

종인이 경수의 목에 제 입술을 가져다 댔다. 경수가 힘껏 종인을 밀어내려 애썼지만 종인은 쉽게 밀려나지 않았다. 종인이 목덜미에서 질척였던 입술을 들어 경수의 입술까지 파고들자, 그의 키스엔 언제나처럼 밀려오던 흥분 덕분에 이제는 밀어내는 것조차 잊어버린 경수가 종인의 손위에 제 손을 얹자 종인이 더욱 거세게 입속을 헤집었다. 결국 경수가 종인의 힘에 의해 책상 위에 누워버린 자세가 되자 종인은 다시 한번 목덜미를 잘게 깨물기 시작했다.

"아!"

경수가 여린 살점이 물려 아픈 소리를 내자 그제서야 종인이 입술을 떼어내고 경수의 귓가에 속삭였다.

"봐, 너도 좋으면서."

그러고 종인이 반쯤 발기한 듯한 경수의 교복 바지 가운데 손을 지긋이 얹자 경수가 붉어진 얼굴로 소리쳤다.

"야! 어딜 만져···."

경수의 반응에 종인이 킥킥 웃어댔다. 경수는 그에 약간 자존심이 상했지만, 이젠 제가 왜 김종인과의 키스 따위에 흥분하는지 이유를 찾는 것도 관둔 지 오래였다. 이제 그런 것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게 되어버렸으니까. 

그리고 그때 음악실의 굳게 닫힌 문이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교실 앞에 서 있던 것은, 찬열이었다. 




*




"여기서 뭐 해?"

찬열이 책상에 드러누워 있는 경수를 한 번 쳐다보고 물었다. 찬열이 이곳까지 오게 된 이유는 별거 없었다. 그냥 열심히 축구 한판 뛰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김종인을 찾기 위함이었고, 그 순간 언젠가 빈 음악실 이야기를 종인에게 했던 것이 떠올라 이곳에까지 다다르게 된 것이었다. 

찬열의 등장에 경수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약간 당황한 듯해 보이는 그의 표정을 보았지만, 티 내고 싶어 하는 것 같진 않았다. 

"그냥 더워서 피난 왔다, 왜."

종인이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종인의 말투에선 조금 틱틱거리는 것이 느껴졌는데, 딱 그 꼴이 뭔가 하다가 방해받은 듯한 말투였다. 김종인, 언제부터 도경수랑 친해지더니 이젠 둘이 함께 있을 때 제가 끼어들기만 하면 저런다. 솔직히 그렇게 티 내는데 찬열이 둘의 사이가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면 그건 정말 노진구일 거다. 그러면서도 괜히 끼어들고 싶은 이 청개구리 같은 마음은 함께 있는 종인과 경수를 볼 때마다 피어올랐다. 그래서 찬열이 괜히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나도 껴야지."

찬열이 그렇게 말했을 때, 종인은 여전히 투덜거리고 있었고, 도경수는 이 상황이 재미있는 듯 웃고 있었다. 쟤 웃을 때 입 모양 되게 특이하다. 평소엔 잘 안 웃어서 몰랐는데, 저렇게 환하게 웃을 줄도 아네. 김종인 때문인가? 찬열이 그렇게 경수에 대한 하릴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쯤 수업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딩동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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