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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카포(da capo) 29

Kai x D.o.

[카디] 다 카포(da capo) 29

W. 율이



종인이 민석을 또다시 마주한 곳은, 저번과 같은 그 편의점이었다. 종인이 인사하는 것을 머뭇거리던 사이, 민석이 종인을 알아보고 먼저 반응해왔다.

"안녕? 또 보네."

"안녕하세요."

"오늘도 경수네 집?"

"네."

종인의 대답에 한동안 저편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커피 음료를 들고 와 계산 중이던 민석의 손목에서 꽤 값진 브랜드의 시계가 반짝였다. 손목시계와 더불어 깔끔하게 차려입은 셔츠는 그의 키가 그렇게 크지 않았음에도 퍽 잘 어울렸다. 민석은 언제나 단정한 옷차림을 선호하는 듯 보였는데, 그 모습에 종인은 경수를 떠올렸다. 피를 나눈 사이라더니 취향도 비슷한 것 같네. 

"종인아."

커피 음료를 두 개나 사 들고 편의점을 나온 민석이 종인에게 음료 하나를 건넸다.

"··· 잘 먹을게요."

이 사람은 만날 때마다 뭐 하나씩 손에 들려 보내는 게 취미인 걸까. 커피 같은 건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굳이 이 친절한 사람의 성의 앞에서 필요 없는 투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종인은 음료를 받아들었다. 그러자 민석이 입을 열었다.

"너는 네가 경수를 좋아한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

"네?"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 말이야. 도무지 그게 무슨 느낌인지 감이 안 와서."

"그냥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지 어떻게 알고 말고가 뭐 있어요."

"그래?"

"연애해 본 적 없어요? 뭘 그런 걸 물어요."

"그거 해보고 싶은데 잘 안 돼서."

"왜요?"

"응?"

"형 정도면 좋다고 따라다니는 사람도 많을 것 같은데. 물론 저는 아니지만."

종인의 말에 민석이 한참을 하하 웃었다. 그렇게 봐줘서 고맙네. 하며. 하지만 그렇게 호탕하게 말하면서도 민석의 손끝은 어딘가 불안한 듯 커피 음료의 뚜껑을 연신 두들기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나 좋다는 사람들 만나봐도, 이상하게 못 하겠더라고. 연애."

"······."

"내 마음이 잘 안 따라준다고 해야 하나?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한다는 마음이 안 들더라고. 그래서 내가 좋아한다는 감정을 잘 모르는 건가 하고··· 살면서 한 번도 연애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 사실 예전엔 연애하는 거엔 관심도 안 생겼었는데, 어쩐지 요즘은 좀 궁금해졌거든. 그래서 노력 중이야. 사람도 많이 만나보고, 누군가 사랑하려고 노력도 해보고."

"지금은 어디 가는데요?"

"어? 데이트 약속."

"좋아하지도 않는다면서 뭘 만나요. 그런 노력 같은 거 안 해도 돼요. 필연이면 어떻게든 다 만나게 되어 있어요. 형도 언젠가 생기겠죠. 그런 사람이."

종인은 이 사람과 알면 얼마나 안다고 같잖은 조언이나 하고 있는 걸까 싶기도 했지만, 왠지 이 순간 민석에게 이러한 말들을 해주고 싶다고 느꼈다. 언제나 사랑을 갈구해왔으면서도, 제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은 없었던 김종인이, 도경수를 만나게 된 것은 누군가를 좋아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 아니었다는 걸. 정작 마음은 움직이지도 않는 노력 따위 하지 않아도 필연이면 반드시 사랑하게 되리라는 걸 알려주기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그런가."

"네."

"궁금하네. 언젠가 내가 좋아하게 될 사람이 누굴지."

민석이 옅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오늘은 이미 약속 잡은 거니까 가봐야 돼. 나 그럼 먼저 갈게. 오래 붙잡아서 미안. 경수랑 데이트 잘해. 싸우지 말고."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야··· 종인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민석은 손을 흔들며 저 멀리 멀어져갔다. 

··· 커피 음료는 도경수 줘야지. 




*




6월 말이 되자 장마가 시작되었다. 일기예보에서는 이러한 말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장마전선의 영향을 받아 전국적으로 장맛비가 내리겠으며, 7월 초순인 다음 주간은 비가 오는 날이 많고 많은 비로 인해 피해가 발생할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경수는 아침밥을 먹으며 멍하니 티비를 바라보았다. 웬일로 경수보다 일찍 깨어난 아버지가 경수와 함께 밥상에 앉아있다가 켜놓은 뉴스였다. 평소에도 부자간의 대화가 많진 않았는데, 아버지가 티비를 켠 이후로 둘 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아무것도 없었다. 조금 뒤, 경수가 먼저 식탁에서 일어나 다 먹은 식기를 싱크대에 가져다 놓자, 그제서야 아버지가 경수를 향해 입을 열었다.

"공부는 잘하고 있니?"

"네. 성적 올랐어요."

"조금 올랐다고 만족하지 마라. 작은 거에 만족했다간 더 큰 사람이 못 된다."

"··· 알고 있어요."

이후, 경수가 가방을 메고 현관을 나설 때까지도 아버지는 뉴스에 눈을 고정하고 있었다. 경수가 인사 없이 현관을 나서자 시계는 여느 때와 같이 오전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경수는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가 시작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종인에게 이러한 문자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아빠가 또 쓰러지셔서 병원갔다가갈게. 먼저가]

저번에 다 회복하신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경수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도착하자, 문자의 내용대로 언제나처럼 먼저 와서 경수를 기다리던 종인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두 번이나 쓰러질 정도로 많이 안 좋으신 건가. 김종인은 괜찮을까. 경수는 그렇게 생각하며 검은색 우산을 펼쳐 들었다. 비가 많이 쏟아져 신발이 땅을 밟을 때마다 질퍽거려서 느낌이 좋지 않았다. 이대로 학교에 도착하면 온 교복이 다 젖어있을 것이 분명했지만 별수가 없었기에 그냥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3교시 수업이 끝나갈 때까지도, 종인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경수에게 안부 문자는 꾸준히 보내왔다. 지금은 보호자가 병원에 계속 있어야 할 것 같아서 학교엔 못 간다고 선생님께 연락드렸다든지, 너는 지금 수업 잘 듣고 있냐는지의 자잘한 안부.

그리고 100일. 연인들 사이에서 꼭 챙긴다는 그 기념일 말이다. 경수와 종인의 연애는 이제 막 100일을 조금 넘긴 시점이었다. 막상 경수는 모르고 있었지만, 종인은 그 기념일을 그냥 넘긴 것에 대해 꽤나 실망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며칠 전 종인은 경수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 곧 여름 방학이니까 방학하면 바로 여행 가자.

너도, 나도 돈도 없는데 무슨 여행이냐며 경수가 약간 타박했지만, 종인은 이렇게 소리쳤다. 

- 100일도 제대로 못 챙겼는데 없는 용돈이라도 모아서 가야지!

그런 종인의 모습을 다시금 떠올리며 경수가 슬쩍 웃자, 종인이 없는 틈을 타 제 옆자리에서 수업을 듣던 찬열이 경수를 빤히 쳐다봤다. 찬열은 교과서 모퉁이에 무언가 적어 경수에게 내밀어 보였다.

[좋은 일 있어?]

그에 경수가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찬열은 최근 들어 부쩍 예전보다 경수에게 말을 자주 걸어왔다. 너랑 더 친해지고 싶다는 둥, 나와 진정한 친구가 되자는 둥 옆에서 계속 종알대는 바람에 종인이 왜 자꾸 경수에게 친한 척 하냐고 짜증을 부리긴 했지만. 그리고 경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찬열이 경수에게 처음, 김종인과 도경수의 관계를 눈치챘다고 말했었던 그날을. 직구로 던졌으면서도, 악의라곤 전혀 보이지 않았던 그 눈빛은 경수에게 꽤나 순하게 다가왔다. 어쨌든 그때도 생각했던 것이었지만, 경수는 찬열이 꽤 마음에 들었다. 종인은 별로 달가워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친구 하긴 좋은 애야. 그러면서도 종인은 그렇게 말했다. 그런 종인의 모습이 귀여워서 경수가 푸흣 웃자, 얼굴이 붉어진 종인이 길길이 날뛰었다. 그래도 박찬열이랑 너무 친하게 지내지는 마! 하고. 


김종인. 종인과 함께한 지도 벌써 3개월이 넘게 지났다. 도경수가 이렇게 오랫동안 사람을 사귈 수 있는 사람이었던가. 이제껏 그렇게 좋아해 본 사람도 없었는데. 김종인과 늦은 백일 여행은 어디로 갈까. 드넓은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아니면 시원한 계곡이 있는 곳으로? 아무래도 여름이니까 물이 있는 곳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언제나 도경수는 특별한 의사 없이 살아왔던 것 같다. 딱히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도, 크게 하기 싫다고도 한 적 없이, 부모님이, 교사가 시키면 하고, 종인이 하자면 하고, 가자면 가는 그런 우유부단함을 가지고. 경수가 먼저 무언갈 하고 싶다고 말했던 적은 정말로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제가 일탈을 즐겼던 것도, 누군가 시키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는 무의식중에서 드러난 것이었을까. 지금은 그것마저 하지 않게 되었지만. 

제가 하고 싶은 건 하고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소년이었다는 걸 왜 이제서야 알게 되었을까.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일까. 피아노, 사실은 피아노를 좋아한다는 것마저 착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여전히 피아노? 노래. 그래, 노래 부르는 건 좋다. 그리고 또, 김종인. 도경수는 김종인을 좋아한다. 그리고 여행. 김종인과 함께 떠날 여행. 바다로, 산으로, 강가로 그 어디든 떠날 수 있을 여행, 좋다. 주변을 둘러보면, 좋아하는 게 이렇게나 떠오르는데 왜 이제껏 떠올리려고 생각조차 하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하루빨리 가고 싶었다. 종인이 제안한 그 여행을.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던 도경수가, 이토록 고대하는 것이 생겼다면, 그것은 여행, 그러니까, 김종인과 함께할 여행. 

떠오르는 햇살보다 찬란한 웃음을 가진 김종인, 종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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