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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카포(da capo) 30

Kai x D.o.

[카디] 다 카포(da capo) 30

W. 율이



경수와 종인의 연애는 아주 특별할 것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평온하게, 그러면서도 이 연애가 너무나도 달아서 경수조차도 그 하루하루가 기다려질 만큼, 그렇게. 

이번 주부터는 다시 시험도 시작되었다. 중간고사를 끝낸 지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기말고사를 치르고 있었다. 이틀 전에는 3일간 입원 신세를 지게 되었던 종인의 아버지도 다시 퇴원하셨다. 종인은 아버지가 당분간 절대 금주를 해야 한다던 의사의 말에 아버지를 매번 감시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비교적 아버지의 술자리가 예전보단 많이 준 것은 사실이었지만, 가끔씩 친구들 만나러 가신다며 끝끝내 집을 나가실 때마다 종인이 이따금 투덜댔다. 하나뿐인 아들이 걱정하는 것도 모르고 자꾸 제멋대로라면서. 


그리고 최근, 민석은 문득 경수에게 전화해 이런 말을 했다. 

- 네 애인 괜찮은 애더라. 너 보면 나도 연애하고 싶어지고 그런다. 

"형이 연애에 관심이 있을 줄은 몰랐네."

- 나도 너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었어, 인마.

경수가 하하 웃었다. 저 너머에서는 이따금 시끄러운 잡음이 들려오곤 했다. 방학이라며 이리저리 쏘다니며 노는 것에 한창인 모양이었다.

"요즘 미나는 어때? 통 만나지를 못해서."

- 뭐 별일이야 있겠어? 평소랑 다른 거 없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알았어, 다음에 봐. 경수가 대답하자 민석도 알았다, 조만간 보자. 라고 했다. 




*




"엄마, 저 피아노 조금만 쉬고 싶어요."

경수가 그 말을 꺼낸 것은, 기말고사가 다 끝난 후의 주말이었다. 곧 있으면 여름 방학이었고, 그것은 경수가 누구보다 성실히 제 진로를 위해 달려나가야 할 시기란 뜻이었다. 하지만 경수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피아노를 쉰다고 해서 또 다른 꿈이 생겼다거나, 다른 쪽의 방향을 생각해 본 것은 아니었지만, 경수는 제가 피아노에 더 이상 감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 제의를 부모가 쉽사리 받아들이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예상대로 였다.

결국 협상에 실패한 경수가 처절하게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드러누웠다. 분명 이런 가정환경에서 자라서 도경수가 제 의사는 모르는 청소년이 된 걸 거다. 경수는 제 상황을 그렇게 비아냥대며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종인에게서 온 문자가 잠금화면에 떠 있었다.

[우리 여행 어디로 갈까?]

여행, 여행이라. 아무래도 바다가 좋겠다. 경수가 답하자 종인에게서 한껏 들뜬 답신이 왔다. 바다에 가보지 않은 지 아주 오래되었다며. 사실 그렇지 않아도 종인은 경수가 가자는 곳 어디든 좋다며 따라올 것이었다. 


맴- 맴- 경수가 창문을 열자 무더운 여름임을 알리는 매미가 주야장천 울어댔다. 도시의 매미들은 밤에도 네온사인 등의 불빛에 낮이라고 착각해서 운다던데, 지금 딱 그 꼴인 모양이다. 가끔 폭주족 오토바이들이 시끄럽게 도로를 달림에도 불구하고, 열성적인 매미의 울음소리가 더 커서 그 소음조차 묻히기도 했다. 제 짝을 찾기 위해 그렇게 번뇨히 부르짖는단 말이지. 어찌 보면 매미는 참으로 끈기 있는 종족이다. 마치 끝없이 저를 쫓았던 김종인처럼 말이야.

경수는 문득, 부모를 더 설득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번 만에 안 된다면, 천천히, 그러면서도 강단 있게. 원래 제 영역은 그렇게 되찾아가는 것이다. 




*




아침부터 비가 왔다. 기분 좋은 날일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날씨부터 제 맘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경수가 신발을 고쳐 신고 때마침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여느 때처럼 종인이 웃으며 경수를 맞이했다. 비가 오는 건 달갑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웃는 얼굴은 언제 봐도 행복한 일상이었다. 내일, 내일이다. 그러니까, 여행을 떠나는 건 내일. 내일은 비 안 온대. 신이 가호한 것처럼 화창했으면 좋겠다. 종인이 웃으며 말했다.

학교는 아주 어수선했다. 소란스럽게 들뜬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방학 계획을 떠들고 있었다. 아무리 방학이어도 일주일 쉬고 보충은 나와야 한다고 했지만, 이미 놀 생각에 들뜬 아이들이 그 말을 기꺼이 따를 리가 없었다. 아무래도 몇 명 없는 방학 보충 반에 김빠진 교사와 성실한 몇몇 우등생들이나 그 수업을 들을 것이다. 그 우등생 반열에 들었던 경수조차 작년엔 피아노 때문에 듣지 않았지만. 하지만 올해에는 성실히 그 보충에 참여하리라고 부모와 약속했다. 그러니까, 경수는 지난 일주일 동안 부모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피아노를 쉬는 대신 공부에 더 전념하는 것으로 타협 보긴 했지만, 어차피 공부야 늘상 해오던 것이라 어려울 것이 없었으므로 그러겠다고 했다. 오히려 아버지는 공부에 더 전념하겠다고 한 것에 만족스러워하는 듯했다.


- 방학식이 시작될 예정이오니 지금 당장 강당으로 모여주시길 바랍니다.

그때, 스피커에서 방송이 울려 퍼졌다.


방학식이었다. 7월 말의, 싱그러운.




*




백현은 홀로 교실에 덩그러니 엎드려 있었다. 이미 짧은 방학식을 끝내고 모든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갔는데, 김미나는 오지 않았다. 최근 들어 미나는 아주 활기 있어 보였다. 무슨 일이 있었음은 분명했지만, 그게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다 회복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녀는 생동감 있었다. 그랬다고 생각해서 더 이상 묻지도 않았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기다리던 여름방학이 시작될 오늘, 또다시 미나가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담임 선생의 말로는 휴대폰도 꺼져 있고 이번에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고 했다. 또 어디서 뭐 하는 거야. 늦잠을 잔 게 아닐까, 오늘이 방학식인 걸 잊어서 종례를 일찍 한 것도 모르고 이제서야 급히 달려오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조금 기다려 봤다. 하지만 그럼에도, 미나는 오지 않았다. 백현이 가방을 들쳐메고 교실을 나서자, 휑하니 빈 복도가 어딘가 소름 끼치게 느껴졌다. 

백현의 주머니에서 웅- 하고 진동이 울렸다. 미나일까 싶어서 급히 확인했지만, 불쌍한 후배들의 돈이나 빼앗는 한심한 친구 놈이었다. 답장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정류장 앞으로 가 버스를 잡아탔다. 버스 안은 축축한 습기와 함께 오늘 방학한 고등학생들의 수다스러움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런 것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다만 무언가 이상할 정도로 온몸을 뒤덮는 기시감은, 백현을 이토록 떨게 만들고 있었다. 미나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마침내 도착한 아파트의 앞은 무던히도 자주 와 익숙한 곳이었지만, 어딘가 불쾌한 기운이 백현을 싸고돌았다. 미나의 집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자 안에선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초인종을 다섯 번째 눌렀을 때야, 누군가 현관문을 열었다. 그때 백현은, 한껏 죽어버린 미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머리는 손질되지 않아 산발한 모습으로, 볼엔 다 닦이지 않은 눈물 자욱으로 번져 처참히 망가진 미나의 모습으로.




*




모르는 번호로 온 전화를 받았다. 어쩌면 받지 말았어야 할 전화를. 조금 잊었다고 생각해서, 이제는 저를 괴롭히는 환청 따윈 들리지 않게 되었을 정도로 회복했다고 생각해서, 안일하게 여겼다면 그것은 미나의 잘못인 걸까. 전화 너머의 남자는 웃고 있었다. 끼익, 끼익- 마치 녹슬어버린 쇠사슬이 서로 뒤틀려 조여지는 소리 마냥 그렇게 웃어댔다. 조금은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고작 웃음소리 하나 들었다고 이토록 떨리는 온몸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까지 뭘 하고 있었더라? 내일 방학하니까 친구들이랑 저번에 가지 못한 고깃집이나 가보자며 카카오톡으로 수다를 떨고 있었던가? 이 뒤에 벌어질 일은 생각지도 못한 채 안일하게 웃고 있었던가? 하지만 그것은 다 무엇이었나. 이제껏 회복해왔다고 생각했던 시간은 허상이었다는 듯, 미나의 상처는 조금도 여물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 또 곧 보게 될 거야. 괴물은 그렇게 말했다.

두려움, 겁, 공포감, 이 모든 것은 지금 당장의 미나를 서술하기에 충분했다. 두 번이나 저를 죽였으면서, 아직도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듯, 언제까지고 너를 짓밟아야 조금은 개운해지겠다는 듯, 괴물은 그렇게 또다시 미나를 찾아왔다. 무서웠다. 목소리만 들어도 온몸에 힘이 풀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나는 언제까지 이 비극을 견뎌야 하는가. 나의 종말이 올 때까지? 내가 죽어야,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에게 도와달라며 내 비극을 내 입으로 낱낱이 알려야 이 모든 게 끝나는가. 

미나를 또 한 번 방구석에 가둔 것은, 예상하였던, 그럼에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공포감에 있었다.




*




"너 왜 그래···."

백현이 물었지만, 굳게 닫힌 미나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은 눈동자로 백현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것은 마치 초라하게 말라 비틀어진 나뭇가지의 모습으로 보였다. 왜 그래, 미나야. 백현이 한 번 더 물었다.

"제발 그냥 가 줘, 백현아···."

"······."

"오늘은 제발 그냥 가 줘··· 나 혼자서도 너무 힘들단 말이야. 아무것도 보기 싫어··· 그러니까 제발, 제발 오늘은 가 달라고···."

네가 이러고 있는데 어떻게 그냥 가.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내 현관 앞에 주저앉아 표정을 감춰버린 미나의 앞에서, 위로의 말을 어떻게 건네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는 이번에도 그냥 돌아서야 할까. 그래야 할까 미나야? 하지만 여전히 그 어떤 것도, 물을 수가 없었다. 결국 백현은 또다시 미련하게 돌아서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그냥 갈게. 내일 다시 올게. 이렇게 무너져버린 네가 내일은 무사할지 모르겠으나, 그럼에도 오늘은 그냥 갈게. 그냥 갈게, 그냥. 


하늘은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새까맣게 칠해놓은 듯, 먹구름으로 뒤덮여 울고 있었다. 우산도 펼치지 않은 채 아파트 화단을 가로지르자,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가 백현의 머리칼에, 그리고 볼에 힘겹게 떨어졌다. 이내 볼을 타고 흐르던 그 빗방울은 더 이상 빗방울인지, 아니면 눈물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왜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처참히 꺾여버린 친구를 위로할 수조차 없는 거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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