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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카포(da capo) 32

Kai x D.o.

[카디] 다 카포(da capo) 32

W. 율이



종인이 경수의 입술을 잡아먹을 듯 거세게 파고들었다. 경수가 종인의 힘에 밀려나 구석에 몰린 채 아- 소리를 내자 종인이 경수의 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 그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서려 있었다. 

"소리 내지 마. 밖에 다 들려."




*




꿈, 최근 들어 꿈을 자주 꿨다. 기분 좋은 꿈이었다면 모르겠지만 그것이 지긋지긋한 악몽이었다는 점은 언제나 경수를 질리도록 만들었다. 누군가 다가와 경수의 귓가에 속삭였다. 저 암흑이 무섭니?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었다. 그러니까, 저번에 꿨던 것이랑 같은 것. 경수의 발밑엔 무한한 암흑이 자리 잡고 있었다. 깊은 어둠 속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던 것 같기도 했고, 제 또래 남자아이의 목소리인 것 같기도 했다. 사실은, 잘 모르겠다. 그냥 그곳이 한없이 고통스럽다는 것 이외에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 비극도, 암흑도 내 손으로, 내가 직접 선택한 것이라고? 이곳까지 다다른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내가 한 일이라고. 이번에도 그렇게 말할 거지? 경수가 중얼거렸다. 그러자 누군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 소리는 신의 웃음소리일까, 혹은 악마일까, 그것도 아니면 경수의 내면일까. 이윽고 누군가 경수를 그 암흑 속으로 밀어 넣었다. 휘청거리다 그곳에 쓰러졌을 때, 잠에서 깨어났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아직 잠에 빠진 종인의 얼굴이 보였다. 경수가 그 얼굴을 쓰다듬자 종인이 옅게 눈을 떴다.

"도경수."

"응."

창밖에선 여전히 따갑게 울어대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이로 아침 일찍 깨어나 지저귀는 새의 울음소리도 들려왔다. 바람에 나뭇잎이 살랑거리면, 솨아아- 하며 싱그럽게 부딪히는 소리도 났다. 종인이 배시시 웃으며 경수의 팔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왜 벌써 일어났어."

"··· 그냥. 악몽을 좀 꿨는데, 깨어나고 보니 생각이 잘 안 나."

"··· 더 자자."

"그래···."

경수가 종인의 품에 안겨 눈을 감았다. 아직 새벽 6시였다. 

 



*




오전 9시쯤 되었을 때, 종인이 먼저 눈을 떴다. 삐걱거리는 냉장고에 주인아주머니가 새로 채워 넣어 준 물을 종이컵에 따라 마시고, 잠든 경수의 머리맡을 지나 창문을 열자 더운 공기가 방 안쪽으로 흘러들어왔다. 매미 소리가 더 크게 들려오자 경수가 눈가를 비비며 잠에서 깨어났다. 이번에는 악몽을 꾸지 않은 모양이었다. 경수가 흐린 눈으로 종인을 쳐다봤다. 종인이 웃었다.


아침은 근처 냉면집에서 시원하게 한 그릇 먹고, 숙소에서 짐을 챙겨 한 번 더 바다에 들렀다. 어제보다 사람이 더 많아진 것 같았기에 가까이는 가지 않고 빼곡한 해수욕장을 저 멀리 두고 경치만 조금 구경했다. 바다 위에서 파도를 타고 있는 사람들이 마치 개미 떼처럼 보였다. 그렇게 조금 걷다 보니 앉아서 바다를 구경할 수 있는 벤치가 나와 조금은 그곳에 앉아 있었다. 매섭게 내리쬐는 햇볕 때문에 더워져서 종인이 근처 편의점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사 왔다. 경수는 커피 아이스크림을, 종인은 소다 맛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몸은 더우면서도 입안은 점차 시원해지는 게 기분이 좋았다. 

"바다는 좋은데, 별 것 없네."

종인이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물며 말했다. 경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너랑 있으면 어디든 좋을 것 같아."

"그래?"

경수가 종인을 쳐다보며 물었다. 응. 종인이 대답했다. 


오후가 되기 전에 다시 터미널로 돌아왔다. 표를 끊고, 버스에 올라타자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종인의 머리 위로 살랑였다. 그때부터는 또 자기 시작했다. 밤새 자고 일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간이었지만, 왠지 나른해져서 둘 다 머리를 맞대고 잠에 빠져들었다. 깨어나 보니 어느새 서울이었다. 짧고도 짧았던 여행은 벌써 끝이었다. 그럼에도 아직 햇볕이 쨍쨍한데, 헤어지긴 너무 이르다고 생각해서 조금 더 놀다 들어가는 것을 택했다. 거리에는 더운 낮임에도 불구하고 버스킹 무리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둘은 거기 서서 버스킹 구경도 조금 했다. 

"잘한다."

경수가 공연을 보며 말했다. 네가 훨씬 훨씬 잘해! 종인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공연을 구경하는 경수의 표정이 조금은 황홀해 보여서 방해하지 않았다. 이후엔 마저 거리를 걸었다. 날이 더워서 금방 지쳐버려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딱히 아무것도 하진 않았지만, 그냥 경수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꽤나 즐겁다고 느끼고 있었다. 경수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부실한 나뭇가지를 발로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전에 물어봤었지. 피아노를 왜 좋아하게 되었느냐고."

"응."

"좋아했어, 피아노. 그랬으니까 지금까지 계속해 온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었어."

"응?"

"근데 아니었나 봐."

"······."

"좋아했던 게 아니라, 그냥 나한테 잘 맞고, 부모님이 시키니까 막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해왔던 거였어. 그걸 나는 내가 피아노 치는 걸 좋아하는 거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거야."

"······."

"진짜 멍청하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뭘 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시키는 거 하는 게."

더운 바람이 불어와 경수와 종인의 뺨을 스쳐 지나갔다. 경수의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려 눈썹이 드러났다. 굵고 듬직해 보이는 눈썹 밑에 자리한 경수의 속눈썹이 옅게 떨리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좀 찾아보려고."

"뭘?"

"내가 진짜로 뭘 좋아하는지.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그렇게 찾을 내 꿈이 무엇인지."

그렇게 말한 경수가 종인의 눈을 마주 보며 예쁘게 웃었다. 그때 종인은 제 심장이 크게 곤두박질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경수의 미소가 좋아서, 그리고 제 진짜 꿈을 찾아가려는 경수가 눈부시게 아름다워서. 

도경수. 공부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고 피아노도 잘 치는 우리 경수. 조금 무뚝뚝한 면은 있지만, 예의도 발라서 남녀노소 인기도 많다. 할 줄 아는 것도 많고 뭐 하나 빠지지 않는 도경수가, 제가 진짜로 좋아하는 것을 찾을 거라며 종인에게 말했다. 이렇게나 찬란한 도경수도 제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데 지금 김종인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공부도 못하고, 그렇다고 도경수처럼 음악에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만약 있다고 해도 그것을 배울 가정형편이 되지 않는 김종인은, 이제껏 한가하게 무엇을 하며 살아왔던 건지.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애정만 충족할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의 행복일 것이라며 살아왔던 김종인의 삶이 이대로 흘러가도 괜찮은 건지. 문득 종인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도경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아버지처럼 막노동을 해서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해도 좋다. 매일매일 아르바이트를 뛰며 지금처럼 전전긍긍해도 좋을 것이다. 도경수와 함께할 수만 있다면. 도경수는 김종인의 꿈이었다. 지금 이 순간이 종인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고,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도경수와 함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아직 어려 철없는 10대 소년은, 그저 막연히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도경수, 너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뭐든 좋다고.




*




경수는 문득 전원을 꺼 놓은 휴대폰이 떠올라 가방 구석에 처박아 뒀었던 걸 꺼내 들었다. 전원을 꾹 누르자 화면에 띄워지는 통신사 로고와 함께 다시 휴대폰이 켜졌다. 시간이 조금 지나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 온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들기 시작했다. 웅웅- 세게 울리는 진동에 종인이 경수 쪽을 힐끗 쳐다봤다. 뭐가 그렇게 많이 와? 글쎄···.

부재중 전화는 대체로 백현에게서 온 것이었다, 간간이 민석이나 부모에게서 온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백현이었다. 경수가 액정을 바라보며 잠시 얼굴을 찌푸렸다. 전화 안 받는다고 이렇게 계속 전화할 애가 아닌데. 그리고 의심쩍은 마음으로 메시지 함에 들어갔을 때, 그제야 상황을 조금 파악하게 된 것이다. 

[미나가 없어졌어.]

경수가 급히 통화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너머로 들려오는 것은, 평소 백현의 밝은 목소리가 아니었다. 살기, 독기, 모든 세상의 원혼은 다 끌어온 듯한 눈물겨운 목소리.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 너 뭔데 지금에야··· 씨발, 도경수 너 뭐냐고···.

"미나가 없어진 게 무슨 말이야?"

- 씨발··· 진짜··· 진짜 이걸··· 김미나··· 얘··· 이, 이렇게 될··· 어? 겨, 경수야, 야, 도경수··· 넌 뭔데 지금에서야 나타나··· 어? 야!!!!!!

전화 너머로 울려 퍼진 백현의 목소리는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있었다. 진정해. 너 지금 무슨 얘길 하는 거야. 경수가 차분히 물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통곡하다 못해 고통 섞인 비명과 고함뿐이었다. 그는 울고 있었다. 




*




죽음, 그것이 무엇인지 한 번이라도 깊게 들여다본 적이 있었던가. 범죄 피해자의 정신적, 신체적 고통에 대해 한 번이라도 골똘히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그들이 입었을 피해에 감정이입 해 봤던 적이 있었던가. 

어릴 때는 그랬어. 피해자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보단, 또래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시소를 타는 게 더 중요했고, 조금 컸을 때는 가해자에 대한 분노를 함께 느끼는 것보단 조금이라도 공부를 더 하는 데에 집중을 했고, 그보다 더 컸을 때는 여기저기서 사람이 죽어 나가는 뉴스를 보는 것보단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일탈을 즐기는 것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였어. 하지만 그런 내가 잘못된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어. 조금 연민을 덜 느끼는 게,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남들보단 조금 덜한 게, 감수성이 조금 부족한 게, 그게 나의 문제라곤 생각하지 않았어. 누군가 그랬지. 아니, 누구보다 소중한 친구가 그랬지. 너는 지나치게 비인간적이야. 그랬던 걸까? 나는 이제껏 그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가 말했던 게 맞았던 걸까. 

내가 걸어왔던 길이, 잘못된 길이었나 봐. 이제야 나는 알았으니, 다시 되돌아갈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대답해 봐.




*




그리고, 사라졌던 미나가 돌아왔다고 했다. 낯선 모습으로. 도경수가, 변백현이, 그리고 그 누구도 한 번도 보아온 적 없던 모습으로.

차갑게 말라버린 시체의 모습으로.


미나가 죽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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