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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카포(da capo) 33

Kai x D.o.

[카디] 다 카포(da capo) 33

W. 율이



그날은 그러니까, 아주아주 맑은 날이었다. 방학이 시작된 첫날이었고, 경수와 종인이 여행을 떠났던 날. 백현은 어제 비를 맞으며 울었던 자신을 기억하고 있었다. 오늘은 그냥 갈게. 내일 다시 올게. 아무것도 한 것 없이, 망가져버린 친구를 위로할 새도 없이 그렇게 돌아서 버린 자신을 기억하고 있었다. 백현이 집을 나서니 어제와는 달리 쨍한 햇볕이 백현을 반겼다. 날은 이렇게나 좋았다. 그러니까 미나도 다시 개운해졌을 거야.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던 것 같다. 

친구들과 즐겨 가는 분식집에서 떡볶이와 튀김을 샀다. 오뎅을 더 많이 주세요. 백현은 어릴 적 미나가 떡볶이의 떡보다 오뎅을 더 많이 건져 먹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손에 비닐봉다리 하나 들고 달랑거리며 미나의 집 앞에 도착했으나, 백현을 반기는 것은 민석이었다. 미나 없는데? 오전부터 나갔어. 친구들 만난대. 민석이 말했다. 그래서 조금 안심했었던 것 같다. 그날은 그냥 그렇게 보냈다. 친구를 위로하러 왔지만, 막상 그 친구는 곁에 없는 채로 그렇게. 오랜만에 놀러 온 백현을 보며 민석이 물었다. 너 요즘 학교는 잘 다녀? 그는 단정한 젓가락질로 새빨간 국물의 떡을 집어 먹고 있었다. 떡보다 어묵이 더 많네. 미나가 좋아하겠다. 그렇게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백현이 또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한 것은, 밤이 늦었음에도 귀가하지 않는 미나 때문이었다. 어느덧 시계의 시침은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민석이 침대에 드러누워 로맨스 영화를 보며 태연하게 말했다. 때가 되면 들어오겠지. 그렇게 늦지도 않았잖아. 하지만 그건 미나가 건강할 때의 이야기다. 백현이 미나의 휴대폰으로 여러 통 전화를 걸어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부재중이라는 음성 메시지일 뿐이었다. 경수에게도 전화를 걸어봤다. 김미나 연락을 안 받는데 혹시 너 걔 어디 갔는지 알아? 하지만 그 역시 받지 않았다. 백현이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고 있을 사이, 미나의 부모님이 퇴근해 집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백현을 보며 말했다. 어머, 웬일이니? 오랜만이다 얘. 좀 자주 놀러와. 미나랑 학교에서 잘 지내지? 백현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때까지도 미나는 돌아오지 않았다.

미나의 부모님이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한 건, 최근 들어 미나가 조금 이상했다는 백현의 말을 다 듣고 난 이후였다. 그리고 미나를 다시 마주한 것은, 허름한 모텔에서 신고가 들어와 출동했다는 경찰의 전화를 받은 후였다. 




*




민석은 바닥에 주저앉아 아직까지도 엉엉 울고 있는 백현을 바라보았다. 장례식은 막 진행되고 있었다. 민석의 좌측 팔에 달려있는 노란 완장은, 민석이 상주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미나의 장례는 민석이 슬퍼할 새도 없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미나가 왜 죽었는지는 모른다. 당연한 것이었다. 경찰은 살인 사건이라고 했다. 모텔 바닥에 떨어져 있던 부엌칼은, 집에서 몇 번 보았던 과도였다. 언젠가 어머니가 과일을 깎아주실 때, 그 과도를 썼었다는 것을 민석은 기억하고 있었다. 과도에선 미나의 지문이 수두룩하게 찍혀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미나가 죽은 거냐고. 민석은 그렇게 묻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묻고 싶었던 사람은, 민석 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미나를 제일 처음 발견한 사람은 방을 정리하러 들어간 모텔 주인이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젊은 남자가 키를 반납하며 급하게 건물을 빠져나가고, 그 방을 정리하러 들어갔을 때 피를 흥건하게 흘리며 죽어있던 미나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고 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난 이후, 미나를 살해한 범인이 잡혔다. 그는 여러 차례 미나를 성폭행했고, 그날도 협박을 통해 미나를 저녁 중에 모텔로 불러냈다고 했다. 하지만 미나는, 반격하기 위해 그에게 칼을 들고 달려들었고, 몸싸움을 벌이던 와중에 역으로 미나를 죽이게 되었다고 했다. 놀라고 무서운 마음에 그 자리에서 급히 도망쳤지만, 증거는 여실히 남아있었다. 

경수는 빈소 구석에 앉아 멍하니 바닥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아직까지도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이따금 미나의 영정사진만을 뚫어져라 쳐다볼 뿐이었다. 

민석은 백현이 했던 말을 기억해냈다. 최근 들어 미나가 이상하다고 했던 말. 하지만 민석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어쩌면 며칠 전, 경수가 미나의 안부를 물은 것도 무언가의 낌새를 눈치채고 물어왔던 걸까. 하지만 민석은 왼팔에 둘러진 완장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그녀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미나가 여러 차례 성폭행을 당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그로 인해 처참히 부서진 모습도, 그 어떤 것도. 하지만 그것 때문에 미나가 죽은 거라면,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민석은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저 또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연애에 과하게 집착했던 것은 부서져 버린 여동생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방치하게 만든 원인이었을까. 여전히 사랑할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여동생을 잃으면서까지 집착했던 연애는 성공하지 못했고,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기에 결론도 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서야 깨달은 것이다. 

아직까지 사랑할 사람이 나타나지 않은 걸 수도 있고, 어쩌면 나는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맞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야. 나는 나대로, 흘러가는 대로 살면 된다는 것을. 지금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것들을 더 사랑하면 되는 거라고. 이제서야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미안해. 지금 내가 사랑할 수 있었던 너를 더 사랑해주지 못한 게 미안해.

내 사랑스러운 여동생 미나야.




*




백현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할 만큼 했다고. 이렇게 울며 자책하는 그 순간까지도, 나는 할 만큼 했으니 더 이상 나를 죄책감의 굴레에 빠져들게 하지 말라고. 미나야, 그렇게 말하면 너는 나에게 화내며 소리칠까? 내가 여기서 더 어떻게 해야 했냐며, 그렇게 말하면 너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화내고, 소리치며 나와 절교한다고 말해도 좋으니 그래도 살아있는 얼굴을 보고 싶다며, 백현은 울었다. 소리 내어 울었다. 백현은 미나의 영정사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눈물이 앞을 가려 그녀의 얼굴이 또렷이 보이지 않았다. 씨발 새끼,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어. 어떻게 여자애를 성폭행 하고, 죽이기까지 할 수 있어. 씨발, 용서하지 않을 거야. 내가 용서하지 않을 거야. 백현이 으아악 소리를 지르자, 누군가 곁으로 다가왔다.

"변백현. 나가서 좀 진정하자."

아직까지도 덤덤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경수가 백현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들어 올리자, 경수가 백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도경수, 너 때문이야."

백현이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넌 김미나가 죽었는데 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아 보여?"

"뭐?"

"내가 김미나 이상하다고 했잖아, 했는데··· 왜 넌 걔한테 신경도 안 썼냐고."

백현이 말하자 도경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놓고 전화는 안 받고, 미나가 죽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늦게서야 찾아오고··· 네 사촌이라면서, 친구라면서···"

그 분노는, 저의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어놓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정말로 도경수를 원망해서 새어 나온 것이었을까. 어쩌면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 분노의 화살이 지금 막 잡힌 범인에게로, 그리고 언질을 주었음에도 그녀의 불행에 신경 쓰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은 도경수에게로 박힌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까. 

"씨발, 이게 다 너 때문이라고···."

모르겠다. 이제는 아무것도 모르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




꿈을 꿨다. 발밑의 암흑 속에서 소리치는 사람은 미나였던 것 같다. 내가 걸은 길이 너를 그곳으로 밀어 넣은 걸까. 장례식장에서 백현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 너는 김미나가 죽었는데 왜 아무렇지도 않아?

아무렇지도 않지 않아.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나도 슬퍼. 그 애가 왜 그렇게 부서져야만 했는지, 자존감과 자신감으로 무장했던 미나가 왜 그리도 처참히 망가져야만 했는지, 나도 슬프다고. 그리고 백현이 이어서 말했다.

- 왜 넌 걔한테 신경도 안 썼냐고. 

- 이게 다 너 때문이야.

경수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너 때문이야. 도경수, 너 때문이야. 사방에서 소리쳤다. 너 때문이라고. 미나가 죽은 건 도경수가 그녀의 불행을 신경조차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김종인과 웃고 떠들던 시간에, 네 소중한 친구를 눈여겨봤으면, 어쩌면 그녀의 비극을 막을 수도 있었을 거라고. 소리쳤다. 


김미나도 제가 얼굴도 잘 모른다고 연민을 느껴야 할 필요가 있냐며 비웃었던 그들과 같은 존재였을까. 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피해자들과 같은 존재일까. 과연 김미나를 살해한 놈도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르지 않냐며,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언젠가 김종인도 그랬다. 김미나 뭐 달라진 것 같지 않냐고. 김종인도 아는 걸 도경수는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경수가 비인간적이지 않다고 여전히 말할 수 있는가. 그제서야 이제껏 나오지 않았던 모든 눈물이 터져 나오는 듯, 통곡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방안에 갇혀, 수십 번이고, 수백 번이고 죽은 그녀의 이름을 되뇌었다. 미나야, 미나야- 사실은 나도 슬펐어. 나도 울고 싶었어. 


그래, 도경수는 지나칠 정도로 비인간적이야. 

하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도경수는 인간이었다. 너를 잃었음에 오롯이 슬퍼할 수 있는 인간다운 눈물이었으며, 서서히 죽어가는 너를 눈치채지 못했던 것을 자책하는 죄책감이었으며, 비로소 너를 잃고 난 후에 그것들을 모두 깨닫고 하는 후회였다. 도경수는 그런 인간이었다. 도경수조차 인간이었다. 








최대한 덤덤히 풀어내고 싶었어요. 


+ 개인사정으로 다음회차가 조금 늦어질 것 같습니다. 

일주일만 기다려주세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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