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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카포(da capo) 37

Kai x D.o.

[카디] 다 카포(da capo) 37

W. 율이



찬열의 집에서 나오니 한여름의 아찔한 햇볕이 아침부터 경수와 찬열을 나란히 내리쬐었다. 8월 중순, 무더운 여름 날씨에 매미들은 밤낮 상관없이 나무에 붙어 제각각 울어댄다. 맴맴- 매미가 저렇게 우는 것은 제 짝을 찾기 위해 그러는 거라며. 언젠가 매미를 보고 종인을 떠올린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김종인, 김종인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가. 왜 말도 없이 경수의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는가. 저도 나무에 붙어 주야장천 울어대는 매미들처럼 김종인을 찾기 위해 밤낮 소리쳐야 하는가. 하지만 돌이켜본다면 말이야, 도경수도 그러했다. 미나가 죽고, 우울과 죄책감의 굴레에 빠져있었던 어느 날, 김종인에겐 연락 하나 없이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던 그때. 그때 김종인은 도경수를 이토록 헤맸을 것이다. 지금의 도경수가 그러하고 있는 것처럼. 그러나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때의 도경수가 그러했던 것처럼. 언젠가 슬픔을 털고 일어나 저에게로 달려오겠지. 경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




학교는 무척 더웠다. 하필 에어컨이 고장 나는 바람에 교사와 학생 구분 없이 땀을 뻘뻘 흘려가며 수업을 마쳤다. 경수의 옆자리엔 언젠가부터 찬열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자연스러운 것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이 이상하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그것이 이상하든, 이상하지 않든 그런 것들은 지금의 도경수에게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는 게 조금 더 맞는 표현이겠지만- 아무튼 도경수는 김미나의 죽음과 김종인의 부재라는 것에 더 큰 틈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미나가 없으니 이상했다. 주말만 되면 아침부터 찾아와 시끄럽게 빽빽대며 도경수를 놀려먹던 김미나가, 가끔 동네를 오가다 보면 이래저래 마주칠 수 있었던 김미나가, 그리고 셋이서, 넷이서 함께 떠들며 이야기했던 김미나가, 하다못해 경수는 읽기 싫다던 브로맨스 장르의 소설까지 도경수 눈앞에 떠밀던 김미나가 도경수의 인생에 없다는 것은, 정말로 이상한 것이었다. 경수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그리고 종인을 만난 후로는 미나와의 접점이 확연히 줄어들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도경수의 인생에서 가장 오랜 부분을 차지했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이 사라졌다는 것은 경수에게 있어 큰 충격이자, 그것으로 인해 생성된 공백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도경수에게 있어 미나의 죽음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장례식장에서 마주했던 이후로 경수는 백현과도 연락이 끊겼다. 어쨌든 도경수가 거기까지 신경 쓰기엔 조금 더뎠던 것도 있고, 도경수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떠나버린 백현에게, 그렇게 했을 정도로 도경수를 원망하고 있을 백현에게, 그리고 도경수가 미나의 죽음에 어느 정도 일조한 게 맞다고 생각했기에 그러할 수밖에 없었을 백현에게 먼저 연락할 자신 또한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가 먼저 연락해오지도 않았다. 어찌 됐든 경수는 그 이후로 한 번도 미나가 안치된 곳에 방문했던 적이 없으니, 우연으로라도 만나지 못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현재로서는 그랬다. 이후에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될지, 또는 친구로 지냈을 11년을 허망하게 떠나보낼지- 그것은 그때의 일일 것이고, 지금의 도경수는 해결하기엔 너무나도 지쳤기 때문이다. 


"뭐 먹을래?"

에어컨도 틀지 못해 더운 기운이 가득한 교실 안에서 경수가 느릿하게 가방을 챙기고 있자 찬열이 경수를 향해 물었다. 

"오늘 진짜 덥다. 빙수 먹으러 갈래?"

그리고 경수가 대답하기도 전에 찬열이 먼저 말했다. 

"아무거나 상관없어."

"그럼 빙수 먹자. 딸기 좋아해?"

"싫어하진 않아."

"딸기 빙수 먹자. 나 진짜 좋아하거든."

햇볕이 창문 틈으로 새어들어 경수가 서 있는 교실 바닥을 쏘아댔다. 급작스레 더해진 열기에 경수가 눈살을 살짝 찌푸렸지만, 찬열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빙글빙글 웃으며 계속해서 먹고 싶었던 빙수 얘기만 줄줄이 늘어놓을 뿐이었다. 어느덧 경수는 잊고 있었던 찬열의 별명을 기억해냈다. 촐싹이라고 그랬지. 경수는 한 번도 그 별명을 불러본 적이 없었지만, 누가 지었는지 참 잘 어울리는 별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어느 순간, 경수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우는 걸 느꼈다. 키가 큰 찬열이 햇빛을 등지고 섬으로써 경수의 자리에 그림자가 생긴 것이었다. 찬열은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빨리 가자, 배고프다."

하지만 그 순간, 경수는 이 자리에 있지 않은 한 사람을 떠올렸다. 김종인. 너처럼 하얀 애들은 피부 벗겨지니까 이거라도 쓰고 있으라며 제 모자를 경수의 머리에 씌워주던 김종인을. 하지만 지금, 경수를 응시하며 웃고 있던 사람은 김종인이 아니었다. 누구든 상관없을지언정, 어쨌든 김종인은 아니었다. 




*




사실 경수가 김종인을 언제부터 그렇게 좋아하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어느 순간부터 종인의 바람을 들어주고 싶다고 생각했고, 종인의 미소를 지켜주고 싶다고 생각했고, 언젠가부터 종인의 미소에 따라 웃게 되었고, 그에게 너를 좋아한다고 말하게 되었고, 마침내 그가 없는 삶이 허전하다고 생각했다. 보고 싶었다. 김종인은 도경수에게 말했다. 보고 싶었다고. 보고 싶어, 도경수 보고 싶어. 그리고 보고 싶었어. 도경수는 김종인에게서 수없이 그런 말들을 들었다. 하지만 도경수가 먼저 그렇게 말해준 적 있었던가. 그러니까, 없었던 것 같아- 단 한 번도.

하지만 보고 싶어. 김종인, 나는 지금 네가 보고 싶어.




*




"맛있지? 난 여기 오면 무조건 이거 먹어."

찬열이 열심히 빙수를 퍼먹으며 말했다. 찬열이 좋아한다던 딸기 빙수엔 작은 치즈 케잌 조각들이 올려져 있었다. 처음, 경수와 찬열이 이 카페에 들어서자 이곳을 지키고 있던 단 한 명의 알바생이 어서 오세요- 하고 인사했다. 그 인사에 경수는 아무런 말도 없었지만, 찬열은 쾌활하게 답했다. 안녕하세요. 찬열은 카운터에서 빙수를 주문하고, 경수는 먼저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아무런 생각이 없던 경수와는 달리, 찬열은 이 자리의 테이블이 소파에 비해 조금 낮다며 다른 자리로 옮기기를 권했다. 덕분에 경수와 찬열은 의자와 테이블 높이가 조금 높은 바 형식의 테이블에 나란히 앉게 된다. 후에 생각해보니 저보다 키도 크고 다리가 긴 찬열이 앉기에는 조금 낮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근데 카페는 잘 안 오게 되더라. 맨날 가봤자 피시방, 노래방. 근데 난 카페 좋아해. 이렇게 수다 떠는 것도 좋아하거든."

"그럴 것 같네."

"그거 내가 말 많다는 말이지?"

"그럴지도."

경수의 대답에 찬열이 하하 웃었다. 

찬열의 말대로 딸기 빙수는 맛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딸기 치즈 케잌 빙수였지만. 어쨌든 둘의 대화는 찬열이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 이상은 길게 이어지진 않았다. 사실 언제나 그러했던 것이지만, 도경수는 말이 많은 편은 아니다. 술에 취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그래서 찬열은 조금 더 말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 본래부터 찬열이 말하기를 좋아해서 그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는 점도 있었지만, 애초에 도경수 앞에서 이것저것 말을 꺼내는 것이 막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다. 그래서 둘의 대화 주제는 언제나 짧았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오늘도 독서실 갈 거야?"

이번에도 찬열이 먼저 물었다.

"응, 왜?"

"오늘은 땡땡이치면 안 돼? 이번에 개봉한 영화 진짜 재밌대. 그거 보러 가자."

"너 친구 많잖아. 걔네랑 보러 가지."

"너도 내 친구잖아."

경수가 다 먹은 빙수 그릇을 숟가락으로 깨작깨작 핥고 있던 찬열을 바라봤다. 그는 웃고 있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찬열의 큰 두 눈은 순한 대형견 같이 느껴진다. 

"그럼 그러자."

경수가 대답했다. 


경수는 제가 종인을 보며 이렇게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정말 제가 하고 싶은 것을 찾겠다고, 그렇게 제 꿈을 찾을 거라며. 하지만 지금의 경수는 아니었다. 그렇게 다짐했던 것이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었는데, 미나가 죽은 이후론, 또 김종인과 만나지 못한 이후로의 도경수는 또다시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것이 없는, 누군가 하자면 하고, 말자면 마는, 제 의지는 정말로 개나 줘버린 것인지 아무런 바람이 없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지금의 도경수는 바람에 아무렇게나 흔들리는 강아지풀 같은 것이었다. 

도경수가 딱 하나 정말로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김종인을 다시 만나게 되는 일일 것이다. 이미 죽은 미나가 살아 돌아온다거나, 시간을 되돌려 미나의 죽음을 막는다거나 하는 초현실적인 바람을 제외하고는,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도경수도, 하다못해 박찬열도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의 도경수는 온통 조각 난 파편이 금방이라도 흐트러질 것을 버티어 서서 힘겹게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불완전한 퍼즐 조각 같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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