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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카포(da capo) 38

Kai x D.o.

[카디] 다 카포(da capo) 38

W. 율이



경수와 찬열이 빙수를 먹었던 카페에서 나와 큰 길가로 들어서면 높게 지어진 영화관이 중심가에 자리하고 있다. 그곳은 언제나 많은 인파로 북적거린다. 특히나 지금처럼 방학 시즌에는 더더욱. 날은 마치 오븐에 들어가 노릇노릇 구워지는 쿠키가 된 기분으로 더운데, 이곳에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지치지도 않는 모양이지. 어쨌든 햇볕 아래 더 서 있다가는 오징어구이든, 노릇하게 구워진 쿠키든 뭐든 될 것 같았기에 그들은 서둘러 영화관 안으로 들어섰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더워서 대화를 거의 하지 않았다면, 여기서부턴 아니다.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시원하게 몸을 휘감는 에어컨 바람은 살인적인 대한민국의 여름에 있어 오아시스 같은 존재일 것이다. 

"아, 이제 살 것 같다."

찬열이 티셔츠의 목 부분을 엄지와 검지로 들었다 놓았다 부채질하며 말했다. 영화관 건물은 쇼핑몰과 영화관이 결합된 형태의 건물이었는데, 영화관은 맨 위 층이었기에 엘리베이터를 타야만 했다. 엘리베이터가 한 곳에 4대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층수가 높아 경수와 찬열이 엘리베이터 안에 타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그동안 그들은 이러한 얘기들을 나눴다 : 서울은 땅값이 비싸서 층 하나는 그리 넓지 않은데 높이가 높다. 라든지 여기 엘리베이터는 사방이 유리로 되어있어서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타지 못한다- 라든지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말이다. 다시 한번 더 말하지만 주로 대화의 주제는 찬열이 꺼내는 것이었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면서 찬열은 한마디 더 덧붙였다.

"사실 내가 고소공포증 있어서 이거 탈 때마다 눈 감고 타거든."

"헐."

"약간 지금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어."

찬열이 경수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하자 경수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선 말했다. 덩치 큰 애들이 꼭 안 어울리게 그런 거 무서워하고 그러더라. 물론 김종인은 고소공포증 같은 거 없었지만··· 그렇게 문득 떠올려진 김종인은 이제 경수의 일상 같은 것이었다. 경수는 어디서나, 그리고 누구에게서나 종인의 기억을 떠올리곤 했다. 일부러 종인을 기억하려고 그랬다기보단, 추억은 원래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문득 떠오르는 것이다.

"도착했어?"

"아니. 사람 탄다. 옆으로 비켜 서."

경수가 찬열을 조금 밀어내며 말했다. 여전히 두 눈을 꼭 감은 채 경수의 어깨에 붙들려 있던 찬열이 엉거주춤 옆으로 밀려났다. 

"대체 왜 엘리베이터를 투명으로 만드는 거야. 고소공포증 있는 사람은 어떻게 타라고. 안 그래?"

"그냥 에스컬레이터 탈 걸 그랬나?"

"그러기엔 층수가 너무 높아서 더 오래 걸렸을걸."

"그럼 잠자코 있어."

옆에 탄 몇몇 사람들이 찬열과 경수를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막 영화관에 도착하니 찬열이 알아서 눈을 떴다. 언제 무서워서 벌벌 떨었냐는 듯, 찬열은 팝콘 냄새가 좋다며 신난 채로 경수보다 먼저 영화관 로비로 들어섰다. 팝콘과 탄산음료는 두 개씩 샀다. 하나는 경수가 고른 어니언 맛 팝콘, 찬열은 카라멜 맛 팝콘을 골랐다. 그리고 경수는 환타 오렌지, 찬열은 콜라를 시켰다. 나란히 팝콘과 음료를 손에 가득히 들고 방금 예매한 영화표의 시간을 보자 입장까지 10분 정도 남아 있었기에 둘은 로비의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경수는 문득 종인과는 단 한 번도 함께 영화를 보러 온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경수가 김종인의 취향을 아는 것이 몇 개나 될지 정리해본다면, 커피보단 초코같은 달달한 것을 더 좋아한다는 점, 그리고 경수와 달리 편식은 잘 하지 않는다는 점, 즐겨하는 스포츠는 축구, 그것마저도 학교에서 친구들과 조금 뛰는 게 다지만. 그리고··· 그리고 뭐가 있지. 그러고 보니 김종인의 생일은 언제지? 생각해보면 도경수는 김종인에 대해서 아는 게 이렇게나 없다. 도경수는 이렇게도 무신경한데, 김종인은 도대체 도경수의 어디가 좋다고 그렇게 사랑을 퍼부어 준 건지, 언젠가부터 도경수는 그 사랑을 당연한 것인 듯 받아내며 언제까지고 김종인은 도경수를 찾을 것이라며, 토라졌어도 제가 부르면 달려올 것이라고 자신했던 건지. 왜 그 무한한 사랑도 당연한 것이 아님을 이제서야 깨달은 건지. 경수가 씁쓸하게 웃자 찬열이 물었다.

"왜?"

"아무것도 아니야."

"시간 다 됐다. 들어가자."

"응."

경수의 대답에 찬열이 웃었다. 입 옆으로 들어가는 보조개가 눈에 띄었다. 웃으면 예쁘게 들어가는 보조개. 김종인도 있었는데. 그것을 보면서도 도경수는 이러한 생각들을 했지만.




*




영화를 다 보고 나와서는 밑층의 푸드코트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무척 배가 고팠고, 생각해 보니 둘은 아침도 먹지 않은 상태에다가, 점심은 딸기 빙수로 때웠었다는 게 떠올라서 온 것이었다. 그렇게 온 푸드코트에서 경수는 스테이크 덮밥, 찬열은 치즈 돈가스를 시켜 먹었다. 경수가 먹은 스테이크 덮밥은 생각한 것보다 별로였다. 원래의 스테이크 덮밥을 떠올린다면, 약간 노르스름하게 양념 된 밥 위에 스테이크가 얹혀져 소량의 와사비를 올려 먹는 것이겠지만, 이곳의 스테이크 덮밥은 모양새는 꼭 그럴듯했으나, 밥이 지나치게 아무런 간도 되어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별로라고 느꼈던 것이다. 

"영화 보면서 내내 짜증 났어."

찬열이 돈가스를 오물거리며 말했다.

"왜?"

"그 나쁜 놈 말이야. 안 죽고 계속 따라와서 결국 주인공이랑 다 죽고··· 욕하고 싶었는데 참았잖아."

"맞아, 그랬지."

"갑툭튀도 많고, 답답해서 보는 내내 언제 끝나지, 언제 끝나지 이것만 반복했다?"

"근데 나름 재미있던데, 왜 흥행하는지 알겠더라. 마지막엔 좀 슬프기도 하고."

"난 마지막에 울었어."

찬열의 말에 경수가 조금 웃었다. 그 반응에 찬열이 무언가 더 신나서 말하기 시작했다. 주인공이 자기 희생하는데, 그게 너무 슬퍼서. 도경수 너는 안 울었어? 솔직히 좀 창피하긴 한데, 내 옆 사람도 울어서 같이 울었다. 찬열이 그렇게 말해서 경수가 조금 더 크게 웃었다. 

그때, 찬열은 경수의 웃음을 다시 보게 된 것에 크게 만족하고 있었다. 이제껏 도경수가 웃질 않아서 속으론 얼마나 초조했는지 경수는 모를 것이다. 그럼에도 그 노력이 통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땐, 기분이 꽤 좋았다. 도경수의 웃음은 활기 있다. 그러면서 천진하기도 하고, 하트 모양으로 벌어지는 입술이 귀엽기도 하다. 그래서 찬열은 도경수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이 웃음이 보기 좋아서, 그래서 도경수를 향해 가슴이 뛰었던 것일까. 종인도 도경수의 이 웃음을 좋아하는 걸까.

도경수의 외양은 귀엽다. 작은 키에 동글동글한 인상을 보면, 절대적으로 그의 첫인상을 경계하거나, 두려워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귀여운 외모와 반대로 어딘가 차갑게 서려 있는 그의 표정은, 도경수를 처음 보는 누군가가 그를 경계하게 된다면 왜 경계하게 되었는지의 원인이 될 것이다. 도경수는 무뚝뚝하다. 어딘가 냉소적인 표정을 지니고 있고, 말수도 별로 없다. 그러면서도 도경수는 이토록 천진하게 웃는다. 외면, 내면, 그리고 그보다 더 깊은 내면, 모든 것이 일치하지 않으면서도, 그 일치하지 않는 모든 조각을 끼워 맞추면 완전한 도경수의 모습이 된다. 그것은 결국 그만큼 다양하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도경수라는 소년이 가지고 있을 매력이. 

찬열이 경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데, 경수가 그 시선을 느꼈는지 왜? 하고 묻는 바람에 찬열의 시선은 그쯤에서 거두어졌다. 찬열도 다 먹었고, 별로라던 경수도 배가 고팠는지 그릇을 싹싹 비웠던 덕에 찬열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나 여기 온 김에 신발 사려고 하는데 같이 골라주라."

"신발?"

"응, 밑에 매장 많잖아. 인터넷에서 사려고 했는데, 신발은 신어보고 사는 게 젤 좋대서."

"그래, 그럼."

근데 나 잘 볼 줄 몰라. 경수가 덧붙였다. 괜찮아. 그래서 찬열도 답했다. 



이번에는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했다. 굳이 1층까지 내려가지 않아도 돼서 에스컬레이터를 타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던 게 그 이유였고, 두 번째로는 찬열의 고소공포증이 그 이유였다. 신발 쇼핑이 시작되자 찬열은 지치지도 않는지 매장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신난 찬열이 경수의 옆에서 이것저것 떠들었다. 연인에게 신발 선물하면 떠난다는 말이 있잖아, 그게 어디서 나온 말일까? 그래서 우리 누나가 그랬는데, 커플 신발은 맞추지 말래. 어? 경수야 여기 신발 예쁘다. 이걸로 살까? 그러자 경수가 말했다.

"그건 너한테 안 어울린다."

"너 되게 솔직하구나? 하긴 이런 건 김종인같이 옷발 잘 받는 애한테나 잘 어울리겠다."

"그치, 김종인··· 잘 어울리겠네."

찬열은 경수가 조그맣게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종인이."

"어?"

"보고 싶어?"

찬열이 물었다. 경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찬열을 바라봤다. 그는 이제껏 웃고 있던 것과는 달리, 무표정을 유지한 채로 경수를 마주 보았다.

"갑자기 연락도 안 받고, 전화해봐도 없는 번호라고 그러고··· 학교엔 나오지도 않고, 어디서 뭘 하는지, 아버지 돌아가신 것 때문에 지금 괜찮은지 걱정도 많이 되는데 볼 수는 없고."

"······." 

"지금 그런 상황이잖아. 맞지?"

"··· 응."

"장례식장에서 종인이가 그랬어. 연락이 안 된다고. 그땐 무슨 소린지 몰랐는데, 나중에서야 생각해보니까 그게 널 말하는 것 같더라고."

"······."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한테 말해주면 안 돼?"

찬열이 흔들림 없이 말했다. 그리고 그의 두 눈동자는 이렇게 말하는 듯 보였다. 알고 싶다고. 그래서 조금 더 너를 위로해 주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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