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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카포(da capo) 47

Kai x D.o.

[카디] 다 카포(da capo) 47

W. 율이



종인이 아침에 눈을 뜨니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제 곁에서 잠들어 있는 도경수였다. 순간 그 상황이 너무나도 이질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넉 달 동안 떨어져 있어서 그런가, 다시 예전처럼 돌아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던 건지. 아니, 사실은 예전처럼은 아닐지도 모른다. 예전엔 이렇게 좋은 집에서, 부족하지 않은 용돈을 받으며 햇살이 가득 들어서는 아침을 맞이한 적이 없었으니까. 종인에겐 많은 것이 바뀌었다. 사는 곳도, 휴대폰 번호도, 학교도, 생활 패턴도. 너무나도 많은 것이 바뀌었고, 비로소 그것들에 모두 적응했는데 제 곁에는 다시 도경수가 있다. 언젠가, 순수히도 사랑했던 그 소년이. 그리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을 그 소년이. 종인이 팔을 들어 경수의 어깨를 감싸 안자 인기척에 깬 경수가 어렴풋이 두 눈을 깜빡였다. 종인의 얼굴을 마주한 경수가 입술을 조금씩 달싹이기 시작했다. 

"김종인."

"응."

"··· 보고 싶었어." 

아침의 햇살이 커튼 사이로 새어들어 두 사람의 머리 위를 강하게 비추고 있었다. 비로소 도경수와 새로운 아침을 맞았다는 것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제 곁에 있는 도경수는 이질적인 것도 아니었고, 환상도 아니었다. 다시 시작된 인연이자, 새로운 관계였다. 종인이 말했다.

"응, 나도."




*




경수와 종인이 나란히 종인의 오피스텔을 나선 것은 오전 11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 집에 굴러다니던 시리얼과 계란프라이로 아침을 간단하게 때우고 외출 준비를 한 후 집을 나섰다.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버스 하나를 잡아타고, 경유지에서 내린 후 또 다른 버스 하나를 잡아타고, 마지막 경유지에서 내린 후 또 한 번 환승을 하고 나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마침 쌓이기 시작한 눈이 새하얗게 머리 위에 안착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종인의 아버지와, 공교롭게도 같은 곳에 안치된 미나의 봉안함이 자리한 납골당이었다. 서로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어젯밤의 대화 때문이었다.


"인사해, 우리 아빠야."

종인의 아버지가 잠들어계신 재단 앞에 서자 종인이 말했다. 액자에는 실물로는 한 번도 뵌 적 없는 종인의 아버지가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로 자리하고 있었다. 경수는 문득 종인이 아버지를 많이 닮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녕하세요. 도경수라고 합니다."

이어서는 종인이 그곳에 서서 조용한 목소리로 몇 마디 하기 시작했다.

"아빠, 우리 살던 집은 재건축한다고 해서 팔았어요. 좀 서운하죠? 근데 어쩔 수 없었어. 그리고 나는 고모네에서 지내다가 며칠 전부터 고모가 구해준 오피스텔에서 혼자 살기 시작했어요. 난 잘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종인은 웃고 있었지만, 울고 있었다. 하지만 경수는 그의 눈물을 아는 체하지 않았다. 지금으로써는 그게 최선의 배려일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음에 또 올게요."


다음에 들른 곳은 미나가 잠들어있는 재단 앞이었다. 액자 속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미나를 보니 문득 눈물이 쏟아져 나오려 했다. 옆에서 지켜보기만 한 도경수도 그러한데, 원치 않는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어린 피해자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수십 번, 그리고 수백 번 떠올려 봤지만, 도경수는 여전히 그것을 알지 못한다. 다만 짐작할 뿐이었다. 끔찍하도록 고통스러웠겠구나, 믿기지 않았겠구나, 그리고 살고 싶었겠구나- 하고 말이다. 

미나의 재단 앞에 선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속으로 어떠한 인사를 건네고 있을지, 그리고 어떠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서 있을지는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알 것이었다. 그것은 대충 이런 것들이었다.

- 미나야 잘 있어? 거기는 어때? 아, 그리고 말이야. 너에게 해주지 못한 말이 있어. 미나야, 이 모든 건 너의 잘못이 아니야. 너는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어. 그러니까 부디 그곳에서는 온전히 행복하길 바라.

너의 잘못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하는 말들 말이다. 




*




납골당에서 나온 후에는 근처 공원에서 조금 걸었다. 그들은 서로의 공백이 있었던 시기의 몇 가지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웬만한 것들은 이미 어제저녁에 다 한 이야기였기에 새로이 나눠진 대화의 주제는 대략 이런 것들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행방 같은 것 말이다. 

첫 번째로, 민석은 여전히 애인이 없다. 종인은 언젠가 민석이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다. 

-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 말이야. 도무지 그게 무슨 느낌인지 감이 안 와서.

예전이었다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라고 여겼겠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원래 사람 마음이란 게 그런 거다. 여전히 사랑하면서도 그 마음을 제대로 알 수 없고, 다 잊었다고 생각했으면서도 다시 마주하면 잊었던 기억 조각들이 완성된 퍼즐 마냥 끼워 맞춰져 버리는 것. 원래 사랑이란 게 그런 거고, 기억이란 게 그런 거니까. 또한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이상한 게 아니라는 것을.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것들을 더 사랑하면 되는 거라고. 종인은 이제 민석을 이해한다. 아니, 그와 같은 모든 사람들을 이해한다. 

민석은 학기가 시작되기 전 학교에 휴학 신청서를 냈다. 대신 그는 학문을 배우고 연애를 하는 것보단 미나의 납골당에 자주 들려 그녀가 머문 재단을 깔끔히 관리하는 것에 더욱 공을 들이곤 했다. 그리고 하나뿐인 딸의 죽음에 풍비박산 난 가정을 돌보는 것 또한. 그렇다고 해서 그가 완전히 학업에 손을 뗀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민석은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그것은 민석에게 공부이자 여가였다. 하지만 민석은 이제 한때 제가 그토록 빠져 읽었었던 스릴러 장르의 소설은 잘 읽지 못한다. 소설 속의 연쇄 살인범에게 죽어 나가는 피해자들의 모습이 묘사될 때마다 여동생의 마지막 모습이 생각나서 괴로웠다. 대신 민석은 미나의 방에 가득했던 만화책을 몇 권 읽어보기 시작했다. 가끔은 미나가 좋아하던 연예인의 뮤직비디오를 보기도 했다. 이제라도 알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여동생의 취미는 무엇이었는지, 여동생이 좋아하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생전 누구보다 친한 사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여동생과 이렇게나 먼 사이였음을 왜 이제서야 알았는지, 왜 조금 더 신경 쓰지 않았는지 후회될 뿐이었다. 


두 번째로, 찬열은 여전히 도경수와 친구 사이로 지내고 있다. 의외로 종인이 먼저 찬열의 안부를 궁금해했기에 경수가 입을 열었던 것이었다. 소식을 들은 종인의 표정은 좋아 보이지도, 나빠 보이지도 않았다. 다만 어딘가 조금은 착잡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찬열은 자신의 잘못으로 가장 친한 친구였던 종인과 멀어진 것에 있어 큰 후회를 하고 있는 듯했다. 도경수가 찬열의 속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못했지만, 찬열이 그로 인해 후회하고 있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박찬열은 언제나 김종인에게 사과하고 싶어 한다는 것. 하지만 그조차 미안해서 할 수 없어 한다는 것도.

다만 이제 종인은 찬열을 용서한다. 사실 애초에 찬열에게 들었던 감정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화가 나기도 했고, 사무치게 밉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고, 배신감이 들기도 하였으나, 무언가 착잡했던 그 감정은 박찬열에게 들었던 것인지, 아니면 도경수에게 들었던 것인지 이제는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둘 다였을 것이다. 그로 인해 도경수를 용서함으로써 사라져버린 그 감정들이 박찬열에게조차 적용된 것일까. 다른 사람이었다면 휘몰아치던 그 감정들이 쉽게 사그라들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도경수니까, 그리고 박찬열이니까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 누구보다 소중한 친구니까.

머지않아 다시 친구의 얼굴을 볼 날이 올 것이었다. 







이젠 정말로 이야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함께해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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