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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 또는 비극 02

Kai x D.o.

[카디] 애증, 또는 비극 02


W. 율이





그러니까, 분명 도경수는 죽으려고 했었다. 제 앞에 망나니처럼 서 있던 김종인의 집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경수가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짜증스럽게 피 섞인 침을 아스팔트 바닥에 뱉자 종인이 경수의 앞으로 한 걸음 더 다가오며 말했다. 그 표정은 아주 사나운 것이었지만 경수로서는 잔뜩 으르렁대는 이 김종인이란 놈을 이제껏 단 한 번도 두려워한 적이 없다는 것이 약간의 특별한 점이었다. 



"안 쪽팔려? 남의 집 기어들어 와서 빌빌거리고 붙어사는 게?"



부모 잃고 남의 집에 빌붙어 사는 게 안 쪽팔리냐고? 경수가 잠깐 웃었다. 입가에는 핏자국이 짙게 남아 있었지만 그딴 건 중요하지 않다. 이 정도는 아프지도 않았다. 세상 살아오면서 저를 지켜줄 보호막 없이 더럽게도 가난하게만 살아왔던 세월이 몇십 년인데 한낱 부잣집 도련님한테 얻어맞는 것 정도야 경수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었다. 



"야, 웃냐?"

"네가 한 번 그 바닥에서 뒹굴었어 봐. 고작 그런 게 창피한가."

"뭐?"

"내가 말했지. 내 불행을 너 같은 놈들은 평생을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모를 거라고."



불행, 불행이라. 도경수의 인생이 불행이라는 단어만으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나. 아니었다. 적어도 경수가 생각하는 제 인생은 그보다 더 지옥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죽으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낙망 적인 환경에서 자라 낙망 적인 성격이 되었다. 웃을 일이 없어 웃지 않았고, 웃지 않으니 이제 진정으로 웃으려고 해도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 도경수의 웃음은 언제나 거짓이었고, 가식적인 것이었으며 억지스러움을 담아내 마침내 자연스럽게 포장한 그런 것이었다. 



경수는 어머니가 아직 어렸던 시절 사창가에서 일하다 가진 아이였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한참 망해가던 술집에서 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쫓겨나 낳고 싶지 않았던 아이를 낳았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경수는 제 발목을 붙잡는 족쇄였으며, 걸림돌이었다. 그렇게 낳은 아이를 사랑할 수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제 아이를 미워하고, 욕했으며, 학대했다. 작은 지하 단칸방 하나 구해 아이와 함께 사는 것도 지긋지긋해서 견딜 수가 없는데, 그럼에도 죽지 못했던 이유는 단 하나, 이번에도 제 발목을 잡던 어린 경수였던 것이다. 미워하고, 욕하고, 때렸던 제 아이가 큰 두 눈에 눈물방울 매달아 저를 바라볼 때면 그 죽고 싶었던 마음조차 순식간에 죄악이 되어 번져갔다. 너는 내 걸림돌이야. 너만 아니었어도 이토록 낭떠러지로 떨어지진 않았을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이를 두고 홀로 죽을 수가 없어서 그녀는 살았다. 경수가 열일곱 살이 될 때까지는. 경수가 열일곱이던 해에 그녀는 세상을 떠났는데, 그녀가 죽을 때까지도 자신의 병명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여간 비극적인 일이 아닐 것이다. 


어쨌든 그러한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경수 또한 더욱 살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저를 낳고 싶어 낳은 것이 아니었듯이, 경수도 나고 싶어 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삶을 살 바엔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정도였다고 한다면, 경수의 삶이 얼마나 비참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렸던 때에도 죽지 못해 살았던 경수였는데, 사랑받지 못했음에도, 모질게 학대받았음에도 결국 저의 얕은 보호막이라도 되어줬던 어머니마저 없으니 자연스레 제 발로 걸어 죽음의 길로 들어섰던 것이었다. 어쩐지 정말로 죽을 것이라고 마음먹었을 때, 눈물이 쏟아졌던 것을 경수는 아직도 기억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나지 않았던 눈물인데, 생기 없는 두 눈으로 그저 깜빡이기만 할 뿐 장례도 치러주지 못해 그 죽은 모습을 쓸쓸히 바라보고만 있을 때에도 눈물이 나지 않았는데, 저 또한 그 길을 따라가겠다 마음먹으니 울컥 눈물이 쏟아졌던 것은 왜인지 모른다. 사실은 살고 싶지 않았던 만큼 죽고 싶지도 않았던 걸까. 하지만 어쩌겠냐는 거다. 더이상 경수에게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조금은 빌어 보았다. 이제껏 지옥을 살아왔으니, 정말로 신이 있다면 죽은 나를 지옥 불구덩이로 쳐넣지만 말아 달라며. 하지만 경수는 저의 죽음마저 제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그렇게 죽으려던 찰나에 회장님의 손에 구해져 이 집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경수에게 있어 마지막 희망이자 빛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붙잡았다. 제게 내려진 이 줄이 썩은 동아줄일지, 금 동아줄일지 모르겠으나 무엇이든 전보단 나으리라고 생각하며 잡았다.  


그리고 지금, 도경수는 언제나처럼 김종인과 대치하고 있는 중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도경수가 김종인에게 일방적으로 괴롭힘당하는 거라 보아도 무방하지만 말이다.



"재수 없는 새끼."



종인이 말했다. 그는 항상 경수에게 그렇게 말하곤 했다. 종인이 저를 싫어하는 이유는 대충 이러한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첫 번째로는 종인이 경수에게 제 자리를 빼앗겼으리라는 것이었다. 사실상 회장님의 외동아들은 종인 뿐이었으니 기업의 후계자로 종인을 염두에 두고 있으리란 건 당연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집에서 약 7개월간 지내 경수 나름대로 알아낸 것은 본래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회장님은 종인을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 그 점은 김종인의 별명이 '개차반'이라는 것과 큰 관련이 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종인이 경수에게 후계자의 자리가 아닌, 이 집안의 아들 자리를 빼앗겼다는 것이다. 사실상 20년 가까이 외동아들로 온갖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라왔을 소년이 어디서 굴러먹다 들어온지도 모를 이방인에게 그 자리를 위협받아야 한다는 것 자체가 김종인이 도경수를 싫어하게 된 충분한 이유일 것이었다. 


그랬지만 경수는 저를 싫어한다는 김종인의 비위에 알아서 기며 맞춰줄 생각이 없었다. 김종인이 도경수를 싫어하는 것만큼이나 도경수도 김종인의 첫인상을 곱게 보진 않았던 것이 그 첫 번째 이유였다. 처음부터 잘난 부모 만나 부족할 것도 없이, 아무런 노력도 없이 자란 그를 경수가 어떻게 곱게 볼 수 있겠는가. 그것이 경수가 종인의 면전에 대고 처음부터 시비조의 언행을 내뱉었던 이유였다. 두 번째로는 첫 만남 이후, 경수를 짜증 날 정도로 괴롭히기 시작하던 종인을 되려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는 건 경수의 성격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오늘처럼 맞은 일도 다반사이다. 심한 욕설을 들은 적도 수두룩하다. 언제는 종인이 경수를 불러 면전에 수표를 던진 후 이렇게 말했던 적도 있다. 



- 너 돈이면 다 되는 거 아니야? 이거면 됐냐? 더 필요해? 필요하면 말해. 더 줄 테니까 이 집에서 네 발로 알아서 나가라고.



그때,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던 종인의 앞에 경수가 쌍엿을 날리며 말했다.



- 드라마 너무 많이 본 거 아니냐? 유치하게. 



그의 어조에는 약간의 비웃음도 첨가되어 있었는데, 아마도 종인은 경수의 그 '비웃음'을 가장 싫어하는 듯했다. 그럴 때마다 꼭 경수의 몸에 멍 자국이 시퍼렇게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때면 경수 또한 몇 마디 잊지 않고 더 내뱉곤 했다.



- 네가 가진 돈 몇 푼 받고 떨어지는 것보다 이 집에서 버티는 게 더 이득이란 거 모르면 병신이지. 안 그래? 그렇게 내가 보기 싫으면 한 번 니네 아버지 회사라도 가져와 보던가. 그깟 수표 몇 장 말고. 그럼 그거 먹고 떨어질지 어떻게 알아?



그렇게 경수가 몸에 생기는 멍 자국을 인내해 가면서도 도망치지 않고 이 집안에서 버틸 수 있었던 건, 저 밑바닥에서 뒹굴며 사는 게 이 집의 한심한 외동아들 김종인에게 괴롭힘당하면서 사는 것보다 더 싫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경수는 7개월을 이 집에서 버텼다. 김종인이 행사하는 실질적인 폭력도, 정신적인 고통도 돈과 권력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란 듯 무너져 내렸다.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다. 도경수에게는. 하긴 도경수에게 이 정도 독기도 없으면 어떻게 그런 환경에서 17년을 살아왔겠냐는 거다. 



경수가 저를 내려다보던 종인에게 말했다. 



"더 할 말 없으면 꺼져."



그렇게 말하고는 먼저 등을 돌려 제 갈 길 가는 경수를 붙잡지 않은 것은 의외로 김종인이었다. 경수는 터진 입가를 쓱쓱 문지르며 걸을 뿐이었다. 조금 멀어진 등 뒤에서 종인이 욕설을 내뱉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씨발 새끼."



언제나 상황은 이런 식으로 끝났다. 경수가 먼저 집에 돌아가 있으면, 한참을 친구들과 떠들고 놀다 온 김종인이 밤늦게야 돌아올 것이었다. 다만 도경수 때문에 기분을 한껏 잡쳤다고 생각한 김종인이 또 어떠한 사고를 치고 돌아올지는 모르는 것이다. 그가 이제껏 친 사고는 대부분 폭행 정도의 경범죄였는데 그가 경찰서에 끌려갈 때마다 아무 일 없이 돌아오는 것은 든든한 뒷 배경이 있기 때문이었다. 정직하고 사람 좋기로 소문난 회장 내외도 아들이 구치소에 끌려가는 것은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런 것만 생각하면 도경수는 여태껏 살아왔던 세월이 조금 억울해지는 것을 참아내야만 했다. 우습게도 제가 살고 있는 세상은 그런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경수로서도 이젠 상관없었다. 지금, 누가 약자냐 묻는다면 지난 17년간의 도경수는 모를지언정, 지금의 도경수는 아닐 것이라고. 제가 붙잡은 동아줄이 금 동아줄이었던 이상, 도경수는 더이상 가여운 소년이 아닐 것이라고. 


경수가 크고 동그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걸을 때면 주위의 시선이 조금 경수에게로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건 아마도 경수의 반반한 외모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소문난 명문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좋은 가방, 좋은 신발을 신었다. 하나도 명품이 아닌 것이 없다. 이게 지금의 도경수의 삶이자 앞으로 나아갈 삶일 것이었다. 













새로운 이야기를 너무 급하게 시작을 했어서인지 글을 쓰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ㅠㅠ


3편 이후로는 조금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진 후 돌아오겠습니다.


기다려주시는 분들께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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